저는 부치인가요, ftm 트랜스젠더/트랜스남성인가요?

저는 부치인가요, ftm 트랜스젠더/트랜스남성인가요?
 
태어났을 때 여성이라는 성별을 부여 받고 딸로 길러졌는데 여성성보다는 남성성이 더 익숙하고 편안합니다. 항상 남자같이 하고 다닙니다. 게다가 끌리는 상대는 여성입니다. 나는 부치인가 트랜스젠더인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깊은 고민에 빠지는 이들이 공유하는 경험입니다. 남자 같은 여자로서 여자를 좋아하는지 남자로서 여자를 좋아하는지 혼란스럽습니다. 태어났을 때 여성이라는 성별을 부여 받고 스스로도 여성이라고 생각하며 특별히 안 여성스럽지도 않은데 자기가 끌리는 상대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기 성별을 고민하는 이들 역시 많습니다. 여자가 여자를 좋아한다니 말이 안 되지 않나, 여자를 좋아하는 나는 남자여야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여잔데 무슨 수로 남자가 된단 말인가, 대체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괴로워합니다.

이게 다 여자를 좋아하는 건 남자여야 마땅하고, 남자를 좋아하는 건 여자여야 마땅하며, 사랑과 교제와 성관계와 혼인이란 이성간에 이루어질 때에만 자연스럽고 정상적이라는 규범이 한국 사회에 너무도 단단히 자리잡고 있어서 생기는 일입니다. 여성성은 여자한테만 어울리고 남성성은 남자한테만 어울린다는 이분법적 성별규범 때문이기도 하고요. 이 많고도 다양한 사람을 여자 남자 단 두 가지 성별로 구분하고 그 무수한 개성을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단 두 가지 틀 안에 가두는 것 자체가 애초에 갑갑한 노릇입니다. 누구나 자기가 인식하는 성별대로 자유롭게 살고, 원하는 방식대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며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그 상대와 내 성별이 같다는 사실에 죄책감 느끼는 일이 없으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성정체성과 성별정체성 사이에서 혹은 그 둘을 아울러 고민하며 자기 자신을 제대로 설명할 말을 찾아 헤매는 당신에게 두 가지 사항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바를 되풀이해서 들려드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거듭 강조해도 괜찮을 만큼 매우 중요한 내용이니까요. 다시 한 번 마음 속에 새긴다 생각하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여자로서 여자를 좋아해도 괜찮습니다. 동성 간에도 서로 끌리고 사랑에 빠지고 성적인 욕망을 가집니다. 이상하지 않습니다. 비정상 아닙니다. 잘못도 아닙니다. 남자만 여자를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남자만 여자를 좋아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여자도 여자를 좋아합니다. 여자와 여자도 서로 사랑합니다. 내가 여자를 좋아한다고 그게 곧 내가 남자라거나 남자여야만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반드시 나를 남자로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인 것도 아닙니다.

둘째, 여자도 남성적일 수 있고 남자도 여성스러울 수 있습니다. 남성성이라 흔히 여겨지는 특징들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고, 남자 같다고 쉽게 생각되는 행동을 하는 게 편안하다고 해서 그게 곧 내가 남자라거나 남자여야만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여자건 남자건 누구나 여성스럽거나 남자 같거나 중성적일 수 있습니다. 상상력을 뛰어넘는 또 다른 모습도 무수히 존재할 겁니다. 어떻더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트랜스젠더 여성이나 트랜스젠더 남성도 트랜스젠더가 아닌 여성이나 트랜스젠더가 아닌 남성처럼 누구든 여성스럽거나 남자 같거나 중성적일 수 있습니다. 여성, 남성, 중성 같은 범주에 구속되지 않는 새로운 특징도 아마 무척 많겠지요. 역시 어떻더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부치와 트랜스젠더 사이에서 자기한테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을 찾아 스스로를 탐색하는 가운데 당신에게 특별히 어렵게 다가오는 고민은 정확히 무엇인가요? 당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고민의 지점이 무엇이든 앞서 강조해 드린 두 가지 사실을 단단히 마음 속에 간직한 채 탐색 작업을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부치든 트랜스젠더든 당신이 스스로 인식하는 정체성 그대로 존중 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한 번 어느 한 쪽으로 스스로를 이름 붙였다 해서 그 정체성에만 영원히 고정된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부치로 살아가다 ftm 트랜스젠더/트랜스남성이 되는 이들이나 ftm 트랜스젠더/트랜스남성으로 살아가다 부치로 자기 자신을 다시 명명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치와 트랜스젠더가 꼭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식으로 분리되는 정체성 범주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ftm 트랜스젠더/트랜스남성만 생각하면 부치와 ftm 트랜스젠더/트랜스남성은 어떻게 다르고 닮았나를 생각하면서 부치 정체성과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구분해서 보기 십상이지만 mtf 트랜스젠더/트랜스여성을 생각하면 사정은 조금 달라집니다. mtf 트랜스젠더/트랜스여성이 레즈비언이면서 남성적이기도 한 경우가 분명 존재하니까요. 트랜스젠더 부치인 셈이지요. 아무쪼록 자기가 느끼는 바들을 두루 살펴 본인한테 잘 어울리는 정체성을 찾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