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이면서 남성스러운, 남자이면서 여성스러운 특성을 가졌다면 저는 트랜스젠더인가요?

여자이면서 남성스러운, 남자이면서 여성스러운 특성을 가졌다면 저는 트랜스젠더인가요?
 
누군가가 여자인데 남자 같다거나 남자인데 여자 같다는 사실이 그 사람이 트랜스젠더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기준이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는 성별을 여성과 남성 단 두 가지로만 이해하고 각 성별에 특정한 성역할과 성별표현을 기대합니다. 시대와 사회에 따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여성성이라 하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남성성이라 할 지 그 기준은 끊임없이 변해 왔고, 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지만 여성성과 남성성의 구분 자체는 상당히 오래도록 지속돼 오고 있습니다. 규범에 어긋나는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하거나 부과된 성역할을 수행하기를 거부하는 이들은 비정상으로 낙인 찍히거나 불이익을 받는 등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르게 되니 성별규범은 기대된다기보다는 강제된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릅니다.

이때 기대에 맞추어 성역할을 실천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강제되는 바에 성별표현을 맞추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쉽게 성별 규범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한편 뭘 해도 번번이 자기한테 기대되는 성별 규범을 거스르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인식하는 성별로서 살아가는데 그 성별에 기대되는 규범을 최대한 충실히 실천하는 게 중요한 사람이 있는 한편 자기가 인식하는 성별로 살아가는데 그 성별에 흔히 기대되고 강제되는 규범을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자기가 인식하는 성별에 기대되는 성역할과 성별표현을 완벽하게 이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봐도 틀리지 않습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기대되는 성별규범과 어느 정도는 다 밀고 당기기를 하며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규범의 어떤 부분에 대해 언제 어떻게 밀고 당기는가는 저마다 살아가고 있는 삶의 맥락에 따라 다양하겠지요. 이는 트랜스젠더이거나 트랜스젠더가 아니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트랜스젠더도 여자이면서 남자 같을 수 있고 남자이면서 여자 같을 수 있습니다. 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이 여자이면서 남자 같을 수 있고 남자이면서 여자 같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트랜스젠더 중에도 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 중에도 중성적인 사람 역시 있기 마련입니다.

여자라 지정 받았고 스스로도 여자라고 인식하는데 이른바 남자 같은 특징을 가진 사람은 남자 같은 여자이지 남자가 아닙니다. 남자라 지정 받았고 스스로도 남자라고 인식하는데 소위 여성스럽다는 특징을 지닌 사람은 여성스러운 남자이지 여자가 아니고요. 여자라 지정 받았으나 스스로는 남자라고 인식하는 ftm 트랜스젠더/트랜스남성으로 이른바 남자 같은 특징을 가졌다면 이 사람은 남성적인 남자입니다. 남자 같은 여자가 아닙니다. 한편, 남자라 지정 받았으나 스스로는 여자라 인식하는 mtf 트랜스젠더/트랜스여성으로 상당히 보이시하고 남자 같다면 이 사람은 남성적인 여자입니다. 남자 같은 남자가 아닙니다.

본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자기가 트랜스젠더인가 아닌가를 고민한다면, 본인이 여성스러운 사람인가 남성스러운 사람인가 하는 문제 자체보다도 본인이 자기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하는가 남자라고 생각하는가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보기를 권해드립니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자기 자신의 성별을 인식하는지, 왜 스스로를 특정한 성별이라 인식하고 다른 성별은 아니라고 인식하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자기를 여자라고 믿게 된 계기나 근거가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그런 계기나 근거로 작용하지 않을 수 있어요. 여성성에 대해 느끼는 극도의 친밀감이나 여성성을 취했을 때 느끼는 지극한 편안함을 근거로 자기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 이른바 여성성이라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게 단순히 직관적으로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가에 집중해 보세요. 나는 누구인가 끈질기게 물어 보는 겁니다. 내 성별은 무엇인가 솔직하게 답하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가 인식하는 성별이 태어났을 때 부여 받은 성별과 같은지 다른지를 살펴보세요. 두 가지가 일치하지 않으면, 본인을 트랜스젠더라고 이름 붙일지 본인이 인식하는 성별로만 규정할지에 대해서도 보다 본격적으로 고민해 보고요. 자기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이름을 찾아 스스로에게 붙여주기를 바랍니다. 여성적인 모습이든 남성적인 모습이든 중성적인 모습이든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이든 본인에게 제일 편안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