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바이 가시화의 날 온라인 집담회

들어가며

9월 23일 ‘바이 가시화의 날’을 맞아, 올해도 바이 가시화 집담회를 열었습니다. 올해는 두두와 채원, 두 사람이 온라인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1. 왜 바이 가시화를 하고 싶은가

두두 자꾸 바이 가시화를 하고 싶은 이유는, 사람들이 한 사람이 두 가지 성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편견이 너무 많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심지어 바이 당사자들도 뭐가 되고 뭐가 안 되는지를 스스로 생각하다 보니, 뭔가 안 된다는 느낌을 갖고 있는 것 같고요.

채원 사실 헤테로 친구한테는 “나 바이야”라고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있잖아요.

두두 근데 저는 그게 너무 싫어요. 내 삶에서 여성과 함께한 시간은 숨기고, 남성과의 시간만 어디 가서 자신 있게 얘기하게 되는 게 너무 싫거든요.

바이라는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밀고 싶은 마음은 나도 그렇고 우리 다 그렇잖아요.(?) 순수하게 정체성이라기보다는, 필요하다고 느끼는 거죠. 근데 그 필요한 지점이 정확히 뭔지를 더 구체화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얘기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시선도, 다른 사람들의 사례도 많이 들어봐야 하고요.

두두 이번에 연수를 갔는데 50대 여성분과 룸메가 됐어요. 그분이 마지막으로 남자를 언제 사귀었냐고 물으셔서 20살이 마지막이었다고 했더니, 제가 20대 내내 연애를 안 한 줄 아시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요, 여자는 계속 만났어요”라고 했죠. 그랬더니 눈앞에 (퀴어인) 사람이 있으니까, 평소에 궁금했던 것들을 다 물어보시는 거예요, 저한테.

채원 너무 좋은 룸메를 만나셨다, 그 선생님.

두두 일단 저는 피곤했는데 그분이 안 주무시고 계셔서, 제가 레즈비언, 클럽 문화까지 전수해 드렸어요.(ㅋㅋㅋㅋㅋㅋㅋ) 그분은 제가 여자를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게 됐는지, 어떤 마음인지 궁금해하셨어요. 그래서 “쌤이 남자를 좋아하시는 마음처럼 여자를 좋아하는 거예요.”라고 했고, 저는 남자도 너무 좋아했다고 말씀드렸는데, 이해가 안 가시는 거죠. “여자들이 도대체 뭐가 좋지?” 하시는데,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여자들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당신이 너무 속상하다, 싶고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2. 팬이냐 바이냐, 정체성은 누가 정하는가

※ 바이섹슈얼(bisexual): 둘 이상의 성별에 성적·로맨틱한 끌림을 경험할 수 있는 성적 지향

※ 팬섹슈얼(pansexual): 성별에 관계없이 성적·로맨틱한 끌림을 경험할 수 있는 성적 지향 

※ 에이섹슈얼(asexual): 성적 끌림을 거의 또는 전혀 경험하지 않는 성적 지향

채원 바이 집담회에서 저를 너무 까발리게 되는 것 같은데요. (갑자기) 전 트랜스맨이 너무 좋아요. 근데 만약 트랜스맨 분을 만난다면, 내가  팬섹슈얼(pansexual)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분은 본인을 남성으로 정체화하고 있는 건데, 그럼 난 바이인 거잖아요.

두두 제가 생각하기에 저의 정체성은 만나는 사람의 정체성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이 얘기를 작년에도 했거든요. 내가 만나는 사람이 여자면 레즈, 남자면 게이,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까, 원래 바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도 “나 이제 여자만 만나니까” 하면서 레즈비언으로 재정체화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근데 사람마다 사유가 다 다르죠.

실제로 여자한테만 매력을 느껴서 레즈비언이라고 하는 걸 수도 있고, 레즈 관계가 너무 확고해져서 레즈비언으로 정의하는 걸 수도 있고요. 의견 차이가 되게 분분한데, 중요한 건 내가 어떤 편견이나 생각을 갖고 있든 아니든 간에 나를 내가 어떻게 정체화하느냐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바이 같은 사람들은, 저도 말로 잘 담아지지는 않는데,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좀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정체성이라는 걸 두고요.

채원 당장 말해 봐. 너의 정체성 빨리 딱 말해.

두두 “여자 좋아해, 남자 좋아해, 딱 말해.” “논바 좋아하는데요” 이러면 “논바를 좋아하면 도대체 뭐지?” 하고요. 이렇게 자꾸 정의하려고 드는 게 바이라는 정체성과 특히 맞닿아 있는 지점처럼 느껴져요. 레즈 가시화, 게이 가시화, 에이엄 가시화 같은 것들도 정체성에 대한 편견이 있고, 정체화나 패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바이만큼 이 문제와 맞닿아 있는 정체성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바이는 맨날 “팬이냐 바이냐” 하고 사람들이 싸우는 주제이기도 하고요.

남자라고 생각하고 좋아하는 거, 여자라고 생각하고 좋아하는 거면 바이다. 근데 그 사람이 갑자기 성전환 수술을 해도 좋아하면 “너는 팬이야” 이렇게들 얘기하잖아요. 그게 맞나? 아닌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바보 멍청이는 아닌데(????), 스스로 “나 그럼 팬이야”라고 안 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모르겠어요. 이건 제 개인적으로도 더 고민해 봐야 하는 부분 같고, 전문가를 모시고 물어보고 싶기도 해요. 바이 전문가를 모시고.

채원 바이 전문가가 지금 상황에서는 두두밖에 없잖아.

두두 저는 진짜 팬이랑 바이를 나누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다 논모노로 퉁치고 싶어요.

채원 논모노요?

두두 논모노. 근데 논모노라고 하면 셋이 사귀는 것부터 생각해서.

채원 저도 아직 공부가 많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다들 구분 지으려고 하고 “딱 말해” 이러면…  그냥 좀 고민할 시간을 줬으면 좋겠어요. 서로를 너무 급하게 혐오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두두 그리고 제가 옛날에 정체성에 대해 잘 몰랐을 때, 퀴어 관련 강의를 듣고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어요. “그럼 이런 사람은 젠더퀴어고, 이런 사람은 논바이너리인 걸까요?” 그때 강사님이 “정체성은 내가 정의하는 거다, 당사자가 정의하는 거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더 설명이 필요 없겠다고 느꼈어요.

근데 저는 수많은 고민 끝에 팬으로 정체화할 수도 있었는데도, 팬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바이라고 말하고 다니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누가 제 정체성을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바이 교수님이 딱 나타나서 “두두 자네는 지금 이러이러한 상태네” 하고 정체성을 진단해 줬으면 좋겠는 거죠. 상담팀 게시판에도 정체성 관련 질문이 많이 올라오잖아요. 자기 정체성이 뭔지 궁금해서 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희는 항상 “정체성은 내담자분이 정하는 거다, 어디에 더 끌리는지 탐구해 보고 정체화를 해보시라”라고 얘기해요. 근데 저는 그냥 바이 요정이 나타나서 정체화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네요. 

채원 그러니까. 라이센스를 더 따야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누가 그러셨던 것 같은데, 5년 임기라고요. 5년 동안 여자만 만났으면 레즈비언, 5년 안에 남자 여자 골고루 만났으면 바이라고.

두두 그럼 나는 레즈여야 되는데, 근데 저는 레즈가 아니에요. 왜냐면 남자를 보면 꼴려요. 그 남자를 안 만날 뿐이지.

채원 남성성이 짙은 남자, 아니면 여성성이 있는 남자?

두두 저는 둘 다 좋아요. 세상은 맛보기 스푼으로 다 먹어봐야 돼요. 그 맛을 모르는 사람들이 전 불쌍해요(지극히 두두 개인의 의견입니다).


3. ‘바이’라는 단어의 한계

채원 바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이분법을 더 공고화하지 않아요?

두두 그러니까 저도 그 생각을 했어요. 처음에 바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성별이 남성과 여성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나온 말일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어원은 제가 모르지만.

채원 양성애자인 거지. 양성.

두두 양성을 어떤 사람은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성별이 남자·여자가 아니라 트젠 여자, 이럴 수도 있잖아요. “네가 두 가지 성만 좋아하면 된다”는 소리도 들어봤고요. 근데 이게 정리하기 나름이잖아요. 어원이라는 게 점점 의미가 없어지는 시대이기도 하고요.

채원 양성, 그 기준이 본인이 생각하는 양성마다 다르니까.

두두 그리고 바이 안에서도 사실은 성별이 애매하신 분들이 있잖아요. 젠더퀴어나 젠더 플루이드 분들은 바이라는 정체성보다는 더 넓은 정체성을 좋아하거나, 오히려 범성애를 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바이라고 하는 건 보통 시스들이 많이 한다고 느껴요.

채원 맞아요. 사실 어떻게 보면 되게 편협하다고 느껴지기도 하죠.

두두 바이라는 단어 자체가 편협한 부분을 가질 수밖에 없고, 실제로 시스들이 그렇기도 하고요.


4. 상담소 안에서 바이로 말하기

두두 특히 레즈비언 커뮤니티 안에서 누군가는 남성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 두려움, 끔찍함, 남성혐오가 총체적으로 있다 보니, 남자라는 키워드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분위기가 있어요. 같이 뭔가를 한다, 어떤 공간에 같이 있다, 어디 참여하는데 남자가 있다, 이런 걸 권유할 수 없는 분위기라서 좀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저도 퀴어 커뮤니티 안에서는 시스 남성을 만날 일이 별로 없었는데, 활동가로 종종 만나게 되더라고요. 가끔 어떤 사람들을 보면, 태어날 때 지정 성별이 남성이라는 것 말고는 그냥 레즈비언 같은 거예요. 성별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싶을 정도로 나랑 너무 같은 사람이라고 느껴져요.

물론 사회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가진 성별 정체성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그런 걸 벗어난 커뮤니티에서 놀자는 거잖아요. 이분법적이고 획일화된 것에서 벗어나자고 이런 커뮤니티를 찾고 만드는 건데, 오히려 그 안에 가두는 느낌이 가끔 나요.

채원 저는 이 레즈비언 커뮤니티 안에서 남성혐오가 너무 심한 걸, 사실 상담소 안에서도 느끼고 있어요. 너무 곤란할 때가 많고요.

두두 이해는 돼요. 여성으로서 남자가 싫은 건 이해할 수 있어요. 근데 그걸 일반화하면 안 되잖아요. 사회에서 배제할 수도 없는 거고,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는 거고요. 그런 논리면 살아남을 수 있는 정체성이 없어요.

채원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그런 것 때문에 더 바이라고 얘기를 못 하는 것 같아요. 엄청난 눈초리가 올 것 같거든요.

두두 그렇게 남성들을 배제하면, 남성 커뮤니티 안에 있을 수밖에 없는, 제가 말한 레즈 같은 사람들도 자기를 펼치고 살 수가 없어요. 그 안에 종속될 수밖에 없죠. 이렇게 말하는 것도 좀 웃기긴 한데, 어쨌든 그런 편견을 갖지 않아야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거고,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채원 사실 상담소에 처음 들어올 때도, 커뮤니티의 분위기 같은 걸 전혀 모르는 상태였어요. 저는 제가 바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어쨌든 일하려고 상담소에 들어왔잖아요. 근데 여기는 레즈비언 상담소니까, 내가 바이라는 걸 얘기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두두 저도 그 생각 진짜 많이 했어요.

채원 조금 무서웠어요. 저는 제 안에 남자 아이돌도 너무 사랑하고 남미새 같은 부분이 있는데, 사실 동생도 제가 레즈비언인 걸 알았을 때 깜짝 놀랐거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언니 같은 남미새가 무슨 여자를 만나, 어이없다”라고 했어요. 첫마디가 이거였어요.(ㅋㅋㅋㅋ)

두두 저도 여자 만난다고 하니까 “남자랑 그렇게 잘 만나놓고, 남자에 미쳐 있더니 여자를 만나?” 이런 반응이었어요.

채원 어느 회의 시간 끝나고 소연이 자기 팔뚝 바이 플래그를 보여주면서 바이 얘기로 꽃을 피운 적이 있어요. 그 때 레즈비언 상담소이지만 다양한 정체성이 있구나 하고 안심되고 마음이 편해진다라고 느꼈어요.

두두 지금은 “구 바이”라고 자꾸 그러는. 한때 바이였던 흔적이죠.


5. 바이 콘텐츠와 바이의 이미지 

채원 요즘은 바이 콘텐츠도 나오잖아요. 왜 나만 몰랐지? 그 연애 프로그램 있잖아요.

두두 (모두가 아는 그 바이 연프). 인간적으로 저는 바이 정치인으로서 봤어야 했는데, 죄송하지만 안 봤어요. 본 사람 없나? 근데 그게 어떤 느낌이냐면, 제가 생각하는 바이는 또 그 바이가 아니에요.

채원 그러니까. 이런 연프들은 항상 빗나가는 것 같아요. 내 스타일이 없어.

두두 제가 생각하는 바이는 거의 오타쿠 집단의 바이 같은 느낌이에요. “성별 따위 그게 무슨 상관이야. 먹어보면 다 맛있어.” 하는 느낌도 있고, 한편으로는 성별이 극도로 강조되기도 하는 창작물이 많은 서브컬쳐 문화 안에서 그런 걸 또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경계 없음과 있음을 넘나드는 게 좋은 거란 말이에요. 근데 우리가 본 바이 연프는 어땠느냐. 남자들은 머리가 다 짧고, 여자들은 다 아름답고, 너무나도 갑바이한 삶을 살아가는데, 그게 뭐가 바이 연프냐 싶은 거죠.

채원 근데 여자 바이는 좀 갓반인 느낌이 있지 않아요? 원래 있어요. 근데 너무 편견인가?

두두 저는 남자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여자든 남자든 바이는 갓반인인 것 같아요. 어디서든 잘 팔리니까.

채원 맞아요. 제일 걸커가 아닌 사람들인 것 같아요. 걸어 다니는 커밍아웃.

두두 근데 오타쿠판이나 서브컬처판에 가면 바이, 범성애가 진짜 많아요.

채원

두두 그런 사람들은 밖에 못 나가서 대중화가 안 되는 거지, 바이 연프에 나온 사람들이 바이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에요. 그 찐따들은 바깥에 못 나가니까 비춰질 수 없는 것뿐이지. 나도 바이 연프에 도전했는데 안 뽑아줬잖아요. 나를 뽑았으면 내가 이 티셔츠(대충 퀴어임을 당당히 증명하는) 입고 나가서 했을 텐데. *지극히 두두 개인의 의견입니다.

채원 아…


6. 바이는 어디에 있을까

채원 근데 왜 이렇게 안 보일까요? 커뮤니티에서는 정말 잘 안 보이는 것 같아요.

두두 찾기가 쉽진 않죠. 우리가 쓰는 레즈 앱은 안 쓰고 다 틴더 같은 걸 쓸 것 같아요.

채원 그리고 우리가 보는 커뮤니티 분들은 지금 여자분을 만나고 있으니까 상담소에 들어와 계시잖아요. 물론 여성 퀴어는 누구나 상담소 활동을 할 수 있지만, 보통 여성 파트너가 있는 분들이 상담소에 많다 보니까, 내가 바이여도 “나 바이야”라고 얘기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두두 말고는.

두두 그러니까 저는 바이섹슈얼이라는 정치에 미친 거고(ㅋㅋㅋㅋㅋㅋㅋ), 다른 분들은 “나는 내 사람이랑 살면 되는데 바이 가시화를 굳이?” 하는 건가. 그래서 이런 집담회에 안 나오시는 걸까, 아니면 없으신 걸까. 나오셔야 제가 물어보기라도 하는데 안 나오시네요. 바이들이 나한테 커밍아웃을 안하나?

채원 참, 퀴퍼 때 플래그를 팔아도 바이 플래그가 제일 먼저 마감되고, 막 바이만 찾으시고. 그 사람들이 다 어디 있다가 그렇게 나타나는지 모르겠어요. 바이 플래그가 정말 잘 팔렸잖아요.

두두 바이는 소외된다고 생각을 안 하니까, 정체성의 프라이드를 굳이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근데 저는 너무 가시화가 안 됐다고 생각하고요.

채원 그러니까요. 슬퍼요. 난 바이라는 단어와 그 플래그가 항상 마음에 남아 있어요.

두두 만약에 정말 바이 가시화가 잘 됐다면, 왜 내 눈에는 이렇게 안 보이지? 하는 생각이 있거든요.

채원 솔직히 까놓고 얘기하자면, 그냥 이렇게 살고 있으면 가시화라는 게 그렇게 와닿지 않잖아요. 내가 진짜 운동이나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면 그렇게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죠. 우리는 단체 활동을 하니까 가시화를 위해 운동을 해야 하는 건데, 정작 당사자들은 그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두두 바이들이 굳이 드러내지 않거나, 아니면 너무 갓반인이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어서 그럴 수도… 저한테는 그 중간이 없이 바이 연프 나가는 사람 아니면 서브컬처 하는 사람밖에 없는 느낌이 있거든요. 저는 오타쿠판에서 바이를 너무 많이 봤으니까요.

채원 그건 저도 지금 너무 놀라워요.

두두 그리고 그분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헤테로로 살아가고 있고요.

그래서 이런 걸 바이 당사자분들께 묻고 싶어요. 바이는 가시화할 필요가 없나요? 레즈비언 상담소 안에는 바이가 없나요?

채원 많잖아요.

두두 바이들은 소외당하지 않나요? 소외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이런 질문들을 하고 싶고, 바이의 삶은 어떤지도 들어보고 싶어요.


7. 소외되지 않는 소수자? 바이의 삶

두두 제가 아는 바이들은 보통 일단 자기가 헤테로인 줄 알고 살아요. 왜냐하면 여자든 남자든 다 가능한데, 남자를 사랑하는 게 정상인 사회에서 살면 저도 그랬고 일단 남자를 사랑해야 된다고 느껴서 그냥 헤테로라고 생각하며 사는 거죠. 그러다 살다 보니 동시에 남성과 여성을 다 좋아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이런 걸 접하면서, 혹은 여자가 좋아지면서 바이로 정체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껴요.

채원 저는 사실 바이라고 정체화할 수 있는 게 되게 멋지다고 생각해요. 바이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말 평소에 생각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더군다나 저처럼 지금 언니를 만나고 있는 사람은 “나 지금 완전 레즈비언” 했다가 “아니야, 나 저 남자 좀 끌리는 것 같아”라고 느낄 수도 있고요. 근데 어느 날은 또 트랜스맨이 너무 좋고, 어느 날은 또 트랜스우먼 언니들이 너무 좋은 거예요.

두두 그냥 논모노잖아요.

채원 그래서 항상 혼란 속에 사는 것 같아요. 저의 경우는 그래서 “나는 완전 바이야, 나는 바이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정말 멋져 보여요.

두두 채원은 원래 헤테로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채원 헤테로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죠.

두두 그렇죠. 굳이 이렇게 나누고 싶진 않은데, 뼈 레즈들은 태어날 때부터 여자밖에 안 보여서 남자를 좋아한다는 감각을 모르잖아요. 근데 저처럼 “다 좋아”인 사람은 남자를 좋아하라고 세상에서 지시를 받은거죠. 그래서 남자랑 사귀어 봤는데, “여자도 좋은데 여자랑도 사귀면 안 되나?” 하게 되는, 순서가 그런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바이인데 그걸 잘 모르는 헤테로도 많은 것 같다고 생각해요.

두두 그리고 바이들은 워낙 자유롭기도 하고, 어떤 성별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도 자유로우니까, 자기가 소수자라기보다 누군가는 오히려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좀 있는 것 같아요. 동성애자에게는 좀 억울한 마음 같은 게 있잖아요. 근데 바이들은 오히려 더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요. 여자 좋아하는 마음도 이해가 가고 남자 좋아하는 마음도 이해가 가니까, 열려 있고 사고가 유연하기도 하고요. 

저는 논모노들이 제일 맛도리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소외 집단이라고 생각이 안 들 수도 있다고 봐요. 다 먹으면서 다니는데 뭐가 소외돼 보이겠어요. 제가 속상한 건 그거예요. 남자랑 사귀어도 되는데 여자랑 사귀는 건 욕심 부리는 것처럼, “너는 어쩔 수 없이 여자를 만나는 사람이랑 다르게 그런 소수자는 아니잖아” 하는 느낌. 이거 완전 혐오죠.

채원 사실 보면 헤테로 커플이지만 헤테로 커플 같지 않은 커플이 많잖아요.

두두 걔네 다 바이잖아.

채원 누가 봐도 헤테로지만. “어, 저 사람들 되게 퀴어한 커플이다” 싶은 커플들…사실 그런 사람들이 제일 많은 것 같아요. 바이라고 굳이 정체화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고 사는 분들도 많겠죠.


8. 라벨링은 왜 필요한가

두두 라벨링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되려면,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든 상관없이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살아야 해요. 라벨링이 필요 없는 사회여야 하는 건데, 다른 삶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라벨링이 필요한 거잖아요.

정상성에서 벗어나는 삶을 명명하고 싶어 하니까요. 그래서 자꾸 그 룸메 쌤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네요. 룸메 쌤이 여성 동성애자 간에 남자 역할, 여자 역할 하는 것에 대해서도 되게 궁금해하셨거든요.

채원 생각보다 많이들 궁금해하시죠.

두두 지하철에서 팸부치를 보셨대요. 팸부치라는 단어는 모르시고, 한 명은 머리가 짧고 한 명은 그냥 여자 같은 여자인데 둘이 수상하다는 거예요.

채원 혐오 댓글에서 많이 보이는 얘기다. 그래서 어떻게 답변하셨어요?

두두 너무 납작한 단어이긴 하지만 “옛날로 따지면 바지 씨가 있고, 치마 씨가 있다”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어요. 라벨링이 필요한 게, 결국 그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거잖아요. 실제 그 문화나 삶과는 상관없이, 이해시키려고 필요한 거죠.


9. ‘남미새’라는 단어

두두 이 얘기를 하면서도 고민되고 걱정되는 게, 결국 남미새라는 타이틀을 얻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뭔지 알죠? 남자 좋아하는 여자가 되게 납작하게 표현되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여성의 삶을 그렇게 납작하게 표현하는 것만큼 여성혐오인 게 없다고 생각해요. 남미새라는 표현만큼요.

남자를 좋아하는 순간부터 이등 시민이 되는 거잖아요. 여자가 알아서 “나는 2등 시민이 될래” 하고 가는 바보가 돼버리는 거예요. 물론 남미새라는 말이 정말로 남자에 미친 것 같은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 단어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채원 오늘 단어에 대해서 얘기를 되게 많이 했네요. 남미새라는 단어는 저부터도 문제가 너무 많아요.

저도 쓰고, 그 단어를 너무 사랑하고, 디나이얼하고 항상 그래요. 근데 또 남미새를 혐오하면서 사랑해요. 아 복잡해

두두 원래 바이들이 정체성 고민을 많이 하고, 디나이얼까지는 아니어도 고민은 정말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나는 어쨌든 여지가 있는 사람들이 더 매력 있다고 생각해요. 아, 이렇게 말하면 또 안 되지, 단성애를 모욕하면 안 되지. 근데 레즈가 이성애자 욕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맞아, 남자 좋아하는 것들…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한 가지 성별만 좋아하는 것들은… 아 그만할게요.


10. 앞으로의 가시화의 날

채원 내년에는 집담회 말고 다른 형식으로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두두 이번에도 일정이 좀 빠듯하게 다가와서 작년과 비슷하게 해볼까 하고 집담회를 한 거긴 한데, 차라리 바이 콘테스트 같은 걸 해요. “바이를 찾습니다.”, 너무 제가 하고 싶은 것만 얘기하는 것 같긴 한데.

채원 바이를 찾아서 뭐 해요, 그러면?

두두 그러니까요. 소개팅? 그래서 저는 이 가시화의 날이 궁극적으로 무슨 목적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채원 맞아요. 근데 우린 진짜 해야 돼요. 너무 ‘레즈비언’ 상담소라서.

두두 남자를 좋아하는 욕망도 받아들여야 돼요. 레즈들은 아마 호르몬 냄새만 맡아도 싫겠지만.


나가며

이번 집담회에서는 ‘바이 가시화’라는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 그 말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찬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바이는 어디에 있는지, 왜 자신의 정체성을 말하기 어려운지, 바이와 팬섹슈얼을 구분하는 것이 정말 필요한지,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어떤 언어로 부르고 바라보고 있는지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무엇 하나의 답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었지만, 그래서 더 많은 질문을 남길 수 있었던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바이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커뮤니티 안에서 바이로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가시화’는 누구를 위해 필요한 것인지.

이번 집담회가 각자의 경험을 꺼내놓고, 서로의 생각을 듣고, 익숙하게 사용하던 말과 기준을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오늘 나눈 질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 더 오래 이어지기를 바라며, 우리 안의 다양한 바이 이야기도 계속해서 발견되고 말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계신 바이 회원분들께 묻습니다.

  • 바이는 더 이상 가시화할 필요가 없나요?
  • 레즈비언상담소 안에는 바이가 없나요?
  • 바이들은 소외당한다고 생각하나요, 그렇지 않나요?
  • 바이의 삶은 어떤가요?

여러분의 이야기는 어떤가요? 편하게 의견을 들려주세요. 다음 가시화의 날에는 더 많은 목소리가 함께하길 기대합니다. 바이섹슈얼 가시화의 날, 함께 축하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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