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29일 스테이션 사람홀에서 진행된 <한국 퀴어 아카이빙 실천과 기록 생태계 전망: 라운드테이블>에 참여했습니다. 이날 상담소는 “‘또다른세상’을 향한 32년의 기록: 회원과 함께 이어가는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의 아카이빙 실천”을 주제로 채원이 발제와 토론을 맡아 뜻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래는 발표 자료 요약 및 후기입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1994년 ‘끼리끼리’로 시작한 활동의 기록부터 1996년 창간된 여성 이반 소식지 『또 다른 세상』, 상담 사례집과 교육자료, 문화행사 자료, 회원 기록, 사진과 포스터, VHS와 카세트 같은 시청각자료까지 다양한 기록이 쌓여 있습니다. 상담소의 기록뿐 아니라 다른 여성·퀴어 단체와의 연대 활동, 해외 교류 자료 등 한국 여성퀴어 운동의 흐름을 함께 보여주는 기록들도 남아 있습니다.
상담소의 아카이빙은 2024년 30주년 기념 전시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전시를 준비하며 자료를 처음으로 전수 조사하고 분류하면서 상담소가 보유한 기록의 범위를 확인했고, 전시가 끝난 뒤에는 자료를 보다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기록관리 경험을 가진 상근활동가와 자원활동가 회원들이 함께 자료를 정리하며 상담소에 맞는 분류체계와 기술 지침을 구축했습니다. 기존 기록관리기관과 퀴어 아카이브의 사례를 참고하되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상담소의 자료 특성과 활동의 맥락, 실제 운영 환경을 반영해 재구성했습니다. 자료의 성격에 따라 대분류를 구성하고, 중분류와 소분류로 내려가며 자료의 특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계층형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분류와 메타데이터 작성 기준을 매뉴얼화하고, 새로운 자료가 추가되어도 기존 체계를 유지하며 확장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메타데이터에는 기록의 내용과 범위, 생산자와 관련자, 주제어, 생산일, 물리적 규모, 언어와 장소, 공개 범위 등 자료를 다시 찾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내용과 범위에는 목차와 주요 개요 등을 상세하게 기술해 원문을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자료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현재는 1990년대 자료를 중심으로 디지털화를 진행하고 있으며, 오래된 하드디스크의 자료를 다시 읽어내는 작업과 VHS·카세트 등 노후화된 시청각자료의 디지털화도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는 2000년대 자료까지 순차적으로 디지털화하고, 훼손된 종이자료의 복원과 장기적인 2중 백업 체계도 마련할 예정입니다. 정리된 자료와 메타데이터는 향후 홈페이지와 연계해 온라인에서 검색하고 열람할 수 있는 환경으로 확장하고자 합니다.
이번 아카이빙을 통해 확인한 것은, 아카이브가 단순히 자료를 모으고 분류하는 작업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같은 자료라도 그것이 만들어진 당시의 활동과 관계, 조직의 역사와 맥락을 이해해야 제대로 기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담소의 아카이빙에는 기록관리의 전문성뿐 아니라 활동가들의 경험과 회원들의 기억이 함께 필요합니다.
기록은 보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시 읽히고, 다시 활용되고, 다음 세대의 활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살아 있는 기록이 됩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앞으로도 회원들과 함께 기록을 쌓고, 정리하고, 다시 꺼내볼 수 있는 아카이브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후기]우리는 여전히 목이 마르다
자료집 제작과 아카이브팀 활동을 병행해 온 덕분일까.
이번 발제를 준비하며 나 스스로도 그간의 과정들이 명확하게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각 단체가 어떻게 아카이빙을 해나가고 있는지 그 과정을 공유하는 자리가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런 자리는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계속 이어져야만 한다.
이번 포럼은 아키비스트로서 또 사서로서 살아온 나의 경험을 마음껏 펼쳐낼 수 있어 개인적으로도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다.
토론 중 친구사이의 터울 님이 “이 단체는 내가 있어서 땡잡은 거다”라고 농담하셨을 때 사실 깊이 공감했다.
내가 상담소에서 활동하는 기간 동안, 단체의 아카이브 체계와 형태만큼은 제대로 구축해 놓겠다는 다짐.
이 목표를 반드시 완수해야겠다는 강한 책임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카이빙 작업을 하다 보면 종종 선배 활동가들의 얼굴이 동동 떠오른다.
각자의 시기에 주어졌던 많은 일들을 감당하고, 그 시절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길을 터준 선배들.
그들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나 또한 이것을 기꺼이 해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마저 느낀다.
이날 현장에서 많은 분들이 상담소 아카이브 팀에 무려 19명의 회원분이 함께하고 계시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셨다.
그 놀라움과 반응들을 마주하며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우리에게 이런 자리가 정말 필요했구나’ 그리고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참 고군분투하며 해나가고 있었구나.’
우리는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고 연결되어야 한다.
더 많은 정보가 공유되어야 한다.


발제 자료 제작 및 발표·토론 참여 | 채원
자료 검토 |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사무국
사진 | 무지개책갈피 지효 활동가님, 상담소 소연·안온
참여 | luz, 수쿤, 미미, 소연, 안온, 현토, 어지영
※ 자료집 열람은 사무국으로 문의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