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이 걸렸던 거리에서

그 애가 자주 다니는 길목에 현수막이 걸렸다. 교육감이 되겠다고 후보로 나선 사람이 퀴어와 동성애를 혐오하는 현수막을 저기에 걸었다. 나는 인터넷 뉴스 창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이 소식을 알게 됐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몇 해 전, 그 애와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그 길을 걸어다녔다. 퇴근 후 만나서는 떡볶이나 통닭을 사 먹으러 다녔고, 목적지 없이 두세 시간 빙빙 걷기만 한 밤도 많았다. 그 길 건너편에 있는 재래시장과 오래된 목욕탕, 백반집은 우리가 사랑하던 주말 데이트 코스였다.

그 애는 가족들에게 무뚝뚝했지만, 어떤 토요일에는 식구들이 모두 나간 집에서 혼자 손주를 보고 있을 엄마를 마음에 걸려 했다. 그런 날에는 발길을 돌려 그 애네 집으로 같이 갔다. 어머니는 우리가 사 들고 온 먹을거리에 어울리는 반찬을 내주셨다. 딸에게는 못한 옛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시기도 했다. 어릴 적 농사짓던 힘겨움, 서울에 올라온 이유, 자식들이 어릴 때 고생했던 이야기.

그 애의 친구들은 어머니를 무서워한다는데, 나는 그 애 엄마가 참 좋았다. 차마 우리 둘 사이를 정확하게 말씀드리진 못했지만 알게 되신다고 해도 결국 그 분과 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였다. 교육감 후보의 행태를 고발하는 뉴스를 보며 분노만큼 슬픔이 덜커덕거렸다.

그 애도, 어머니도, 그 애 조카도 저 현수막을 보았을까.

외사랑 전문가, 발뺌기술자, 짝사랑협회 회장만 줄곧 해 오던 나는 연애도 늦깎이에 발을 들였다. 너도 이제 곧 중년이구나, 소리를 들을 즈음에야 누군가를 만났고 레즈비언이라고 자각했다. 덕분에 십 대와 이십 대, 그 후에 내게 일어난 여러 일들을 일정 부분 이해하게 된 것은 좋았지만 경험 미숙과 이상화, 동정과 연민 중독으로 혹독한 징벌이 찾아와서 호되게 앓았다. 그러던 즈음, 그 애를 만났다.

나는 그 애가 들려주는 여러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중에는 그 애가 예전에 사귀었던 애인들 이야기도 있었다. 내가 그들에 대해 물으면, 그 애는 내가 질투라도 하는 듯 여겼지만, 나는 순수하게 그 애의 애인들이 좋았다.

내가 모르던 시절, 그 애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을 통해 거울처럼 반사되어 보여지는 그 애가 좋았고, 그 애를 깊이 좋아하던 사람들이라면 나와 취향과 공감대가 비슷할 거라는 막연한 환상도 있었다.

그 애는 처음으로 엄마 몰래 오토바이를 사서, 뒷자리에 여자친구를 태우고 바닷가로 드라이브 갔던 날의 설렘과 두려움을 들려줬다. 십 대 시절에 학교에서 단체로 놀러 간 어느 날, 마음에 맞는 여자아이와 단둘이 이불 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알콩달콩거렸다는 얘기도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이야기들이 너무 예쁘고 고와서 질투가 나기 보다는 그 애를 꼭 안아주고 싶은 기분이 되곤 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질투라든지 욕심과 욕망 부문에서 뭐 하나 뒤질 게 없는 사람이지만, 그 애의 이야기에서는 어떤 거리 두기가 가능했던 것 같다.

그건 아마도 내가 그야말로 늘그막에 정체성을 자각한 배경도 컸다고 짐작한다. 나는 누가 나에 대해 뭐라고 해도 기죽을 만큼 어리지 않았고, 내가 속한 문화권은 여성이 대다수였다. 활동가나 작가가 많아서 적어도 내가 누구이건 어떤 선택을 하건 혐오하면 안된다는 것이 무언의 약속처럼 퍼져 있었다. 게다가 나는 고집이 세고 생각과 주장이 확실한 편이어서 나의 정체성이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에 위축감보다는 일종의 오만함을 양념처럼 금세 장착할 수 있었다.

그 애는 나랑 달랐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차렸고, 아기자기한 여러 사랑을 거쳤지만, 자라는 동안 스스로를 마음껏 드러내도 좋을 친구를 만나지 못해서 혼돈스러웠다. 그 애가 속한 문화권이나 회사는 주류 남성 문화와 관료제에 장악되어 있었고, 그 안에서 그 애는 저도 모르게 드러나는 자신의 특성을 숨기려 애썼다. 혹여 드러나는 자신의 특성이 가족이나 누군가를 슬퍼하게 만들까 봐 걱정했고, 그런 모욕을 조카에게 물려주지 않으리라고 애썼다.

내가 현수막 뉴스에 불안하고 화가 나서 전전긍긍하던 날, 내가 속한 어떤 카톡방에 여러 메시지가 올라왔다. 혐오의 말이 올라간 현수막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독서모임을 하는 분들과 시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새로운 현수막을 제작해 걸었다는 내용이었다.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교육은 필요없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다시 그 거리에 붙었다.

이 글을 쓰는 계절에, 나는 이제 그 애의 소식을 알지 못하는 거리와 관계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이 글을 어떻게 끝마쳐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직 소화되지 못한 시간과 마음이 뒤범벅 소란스럽다. 다만 이 마음을 말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나처럼 늦지 않게, 스스로의 감각과 사랑을 알아챈 여러분을 존경한다고! 그리고 혹시 당신이 혼자라면, 걱정하지 말고 연결된 공간을 찾아 나서라고. 나같이 늦깎이 레즈비언도 세상에 나오니 누군가를 만나고 그들과 연결되고 배우게 되던데… 엄청난 자극을 받고 엄청난 안정감을 느끼게 되던데… 정치인들이나 이상한 혐오 선동가들이 나쁜 말을 내뱉어도 흔들리지 않고 싸울 수 있는 힘이 생겨나던데…

그리고 이 말을 전하고 싶은 사람 중에는 내가 많이 좋아했던 그 애의 과거, 십 대 때 불안해했던 그 애도 포함된다.

나는 내가 레즈비언인게 참 좋다고. 경계를 부수고, 경계를 넘나드는 트랜스젠더의 친구인 것도 좋고, 협소한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젠더의 문제이기도 하고, 권력과 계급의 문제이기도 한 이 논쟁과 평등, 사랑과 연대의 자리에 있는 게 좋다고. 그래서 너를 만나서 참 좋았다고. 그러니, 함부로 마음 다치거나 슬퍼하지 말고,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가자고. 그 애에게도 분명 손을 내밀어 줄 동료가 주변에 이미 있을 테니까, 서로를 잘 알아보자고, 그렇게 어린 그 애에게 말하고 싶다. 응원을 보내고 싶다.

실패한 글쓰기와 오지랖이 몹시 부끄럽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계속 말해보는 수밖에.

-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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