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 만나느라 샤샤샤: 퀴어-페미니스트 가능한?

농구 경기장은 소음과 섬광이 지랄스러웠다. 자극에 예민한 언니는 헤드셋을 쓴 채 가끔 눈을 감고 있었다. 여성 감독이 이끄는 여성 농구라는 말에 처음 직관이란 걸 하러 인천에 갔다.1 관객층은 다양했다. 가족 단위 관객부터 아이들, 청년, 중년에 이르렀다. 공연장이든 축구장이든, 이런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광경은 늘 생경하고 때로는 공포스럽다. 모든 시선이 단 한 곳을 향한다.

농구 경기장은 소음과 섬광이 지랄스러웠다. 자극에 예민한 언니는 헤드셋을 쓴 채 가끔 눈을 감고 있었다. 여성 감독이 이끄는 여성 농구라는 말에 처음 직관이란 걸 하러 인천에 갔다. 관객층은 다양했다. 가족 단위 관객부터 아이들, 청년, 중년에 이르렀다. 공연장이든 축구장이든, 이런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광경은 늘 생경하고 때로는 공포스럽다. 모든 시선이 단 한 곳을 향한다.

그런데 경기장에서는 묘하게도 시선이 분산되었다. 코트와 가장 가까운 그라운드석에는 우리와 어떤 남성 관객들이 있었다. 뮤뱅, 음중, 음악 방송 대기 줄에서나 봤었던, 대포 카메라를 멘 시꺼먼 남성들. 그들은 경기를 보지 않았다. 대신 치어리더들을 향해 렌즈를 고정했다.

오랜 팬덤 생활을 해오며 나는 남녀 아이돌을 가리지 않고 애교를 강요하는 문화에 늘 거부감을 느꼈다. 팬사인회에 가면 당연하다는 듯 애교를 시키고, 팬들은 눈앞에서 그 광경을 소유하려 한다. 아이돌이 애교를 거부하면 곧바로 비난의 도마에 오른다. 초심이 변했다느니, 팬에 대한 태도가 글러먹었다느니 하는 말들과 함께.

내가 이만큼의 앨범을 샀으니 넌 이걸 수행해. 내가 이만큼의 비용을 지불했으니 넌 이만큼의 대가를 나에게 줘야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논리다. 지불한 비용이 노동자의 수치심까지 구매할 권리가 된다는 착각. 애교를 수행하는 것을 진정성과 연결할 수 없다. 본인과 보는 사람 모두가 수치심을 느낀다면, 그것은 분명 부적절한 노동이다.

이렇게 대리 수치를 느끼는 노동 공간을 또 마주해버린 것이다.

성인 여성 치어리더 사이에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들이 섞여 있었다. 아이들이 왜 거기 있을까? 아이가 없다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아이들을 향한 배척은 극에 달해 있다. 일상의 공간에는 노키즈존을 붙여 오지 말라 하면서, 보여지기 위한 치어리딩 자리에는 아이들을 세운다. 보호 대상인 아이들을 누가 거기에 소품마냥 세워뒀는지 묻고 싶었다.

어린이 치어리더는 농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야구, 농구, 배구를 가리지 않고 구단과 행사 운영 방식에 따라 전방위적으로 존재한다. 국내 프로 농구에서 어린이 치어리더가 처음 등장한 건 2007년이다. 인천 전자랜드가 만 5세에서 12세 이하의 여성 어린이로 구성된 팀을 꾸렸고, 이후 여러 구단에서 어린이 치어리딩을 이어받았다. 현재까지도 여러 구단에서 어린이 치어리더가 활동 중이다. 어린이 치어리더는 초등학생에서 중학생까지의 여자 아이들로 구성된다. 성별 제한이 없다지만, 무대에 오르는 건 주로 여자 아이들이다. 한 업체는 “지원하는 남자 어린이가 적으며 치어리더는 여성이란 인식이 반영된다”고 답했다. 이미 아이들은 성 고정관념 속에서 응원은 여성의 역할이라 인식하고 있고, 주로 여자 아이로 구성된 어린이 치어리더팀이 그 인식을 강화한다.2

아이들이 무대에서 입는 옷은 짧고 타이트하다. 신체 라인이 드러나고 배와 다리를 노출하는 게 일반적이며, 진한 메이크업까지 더해지면 완벽한 성인 치어리더의 모습이 된다. 내가 봤던 경기에서는 그나마 아이들에게 펑퍼짐한 옷을 입혔는데, 성인 치어리더와 통일된 스타일이어야 한다는 불문율 때문에 성인 치어리더들이 오히려 하의실종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어느 쪽으로 맞춰도 최악이 되는 구조다.

누가 이 자리에 아이들을 세운 걸까. 구단은 “치어리더 선발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고 답하고, 이벤트 업체도 구단 몫이라 한다. 다 모르면 누가 아나. 모두가 책임 없는 어른들이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치어리딩을 시키는 방법을 묻는 부모의 질문에, 유아교육 전문가, 보육교사, 아동심리상담사라는 직함을 단 사람들이 6살부터 시작할 수 있다며 독려하는 답변을 달고 있다. 옛날 이야기도 아니고, 2025년의 이야기다. 어린이 치어리더 영상이 올라오는 채널에는 구독자가 1.1천 명이 있었다. 속이 뒤집힌다. 경기장 밖에서 어린이 치어리딩을 찾아보는 1.1천 명이 어떤 용도로 무엇을 보고 싶은 건지 묻고 싶지도 않다.

치어리딩은 본래 선수들의 응원을 이끄는 역할이다. 그런데 왜 그 응원을 위해 내 팬티보다 짧은 바지가 필요한가. 야구 치어리더의 응원단장은 선수들과 같은 긴 바지에 정식 유니폼을 입는다. 치어리더와 응원단장은 동일하게 응원을 주도하는 역할인데, 의상에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3 치어리딩이라는 종목 자체를 부정하거나 치어리더들의 노동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스포츠 선수와 관중을 응원으로 연결하는 의미 있는 노동을 하는 그들에게, 누가 그런 옷을 강요하고 있는지가 문제다. 구단의 노출 강요와 선정적 퍼포먼스 압력 같은 암묵적인 요구들이 공론화되어 비판받아야 한다.4

여성 농구에도, 남성 농구에도 치어리더는 여성이다. 여성이 경기를 뛸 때도 응원은 여전히 여성의 일이다. 애초에 논바이너리 농구는 없다. 성별 이분법이 공고하게 설계된 제도적 틀 안에서, 글이라도 써보려는 나의 저항은 늘 한계에 부딪힌다. 

나는 열심히 날아다니는 선수 언니들만큼, 치어리더 언니들도 열심히 구경했다. 언니들이 추는 춤을 따라서 췄다. 누군가를 대상화하는 나와 페미니스트로서의 자아가 충돌한다. 대상화하지 않은 척하면서 다른 이들을 욕하는 페미니스트다. 그래서 전혀 당당할 수 없다. 퀴어 페미니스트로서 늘 고뇌하게 된다. 나 또한 그 시선의 가해자이자 공유자라는 의식에서 오는 끈적한 불쾌함이 늘 존재한다. 여자 아이돌을 사랑하며 괴롭다. 그럼에도 치얼업 베이베, 좀 더 힘을 내보고 싶다.

이은새, 〈ㅗㅗ〉, 2016, 캔버스에 유채, 112.2×45.5cm ©이은새

이은새의 〈ㅗㅗ〉. 페티시 가득한 옷과 자세로 엿을 날리는 여자. 처음 봤을 때 ㅗ에 콧구멍을 찔린 것 같았다. 여자를 대상화하고 있는 내가 ㅗ를 받아서 얼떨떨하면서도 속시원했다. 이은새는 쉽게 대상화되는 인물들, 규정되거나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이미지의 피사체를 그려 나간다. 자신이 목격한 것들을 마음대로 이미지로 소비하고 작업으로 다뤄도 되는지 스스로 자문하면서.5 그 질문이 나한테도 꽂혔다. 내가 지닌 학습된 시선에 의문을 품는 것.6 경기장의 치어리더들이 관객석을 향해 ㅗ를 날려주길 바랐다. 영화 같은 상상이지만, 내가 〈ㅗㅗ〉를 보며 느꼈던 그 감정을 저들도 느끼길 원했다.

카메라로 옆 사람을 밀치고 있는 저 남성과 나는 무엇이 다른가. 그 생각을 하느라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나는 치어리더를 보고 싶어서 그곳에 간 게 아니었다. 여자 감독이 이끄는 여자 농구를 보러 갔는데, 경기 중간중간 너무나 자주 치어리더 언니들과 아이들이 나와서 춤을 췄다. 농구를 즐기려고 앉아 있었는데 내 앞에서 그 모든 게 억지로 펼쳐졌다. 상황 자체가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내가 그들을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경기장에 앉은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구조. 내가 간 곳에 이미 있었기 때문에 겪게 되는 고통들. 일상에서 마주치는 광고, 혐오 현수막, 치어리딩. 마주할 때마다 괴롭고 고통스러워지는 것들. 그곳을 지나칠 수밖에 없고, 나 한 사람이 그걸 없앨 수도 없다.

아이돌 공연장과 다를 바 없는 농구 경기장. 스포츠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치어리딩은 누구를 이끌고 있을까. 저기 춤추고 있는 어린이들의 부모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 채원

  1. 2026년 1월 10일 (토) 오후 4시, 여자프로농구 신한은행 에스버드 VS 부산 BNK썸의 경기였다. ↩︎
  2. 이진민, 「어린이 치어리더의 웨이브, 저만 불편한가요?」, 오마이뉴스, 2023 ↩︎
  3. 정소현, 「우리는 치어리더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 2023 ↩︎
  4. 최영금, 「프로야구 치어리딩 역사와 성 상품화 재해석」, 2020 ↩︎
  5. A Team, 「작가 이은새의 회화: 경직되고 고정된 상태를 뒤흔드는 일상의 순간들에 대하여.」, K-ARTIST, 2025 ↩︎
  6. 이경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이은새의 그림」, ELLE,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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