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만나게 될 당신에게

사람을 살게 하는 건 무엇일까. 그 답이 알고 싶어서, 그리고 비슷한 질문을 할 누군가를 돕고 싶어서 이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나를 살게 하는 건 무엇일까. 상담하다 보면 내가 내담자를 돕는 게 아니라, 내담자가 나를 도와준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다. 이 사람과 이 말을 주고받기 위해 여기까지 왔던 거라고 생각한다면 지금까지의 내 삶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 그 말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고, 이 말을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최근에 교육분석을 받기 시작했다. 내담자로서 상담받는 게 오랜만이라 긴장됐다. ZOOM으로 상담을 진행하기로 해서 노트북 앞에 앉아 시작 시각을 기다리는데 손끝이 차가워지고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렸다. 그 감각을 잘 기억해 두고 싶었다. 나를 만나러 오는 내담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할 테니까. 

동종 업계 친구를 통해 소개받은 분석가 선생님은 연세가 지긋하신 여자분이었다. 첫 회기라 선생님은 내게 어쩌다 교육분석을 받기로 결심했는지를 물어보셨다. 나는 천천히 많은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레즈비언이며, 가족들에게는 죽을 때까지 이 사실을 밝힐 생각이 없다는 말을 꺼냈다. 그걸 들으시더니 “그 부분이 당신이 느끼는 근본적인 외로움과 관련되나요?”라고 질문하셨는데,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눈물이 차올라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외롭다는 단어를 그 전에 한 번도 쓰지 않았는데도, 꺼내 보인 말 속에서 내 마음을 정확히 짚어 주신 거다. 눈물은 참 정직하다. 평소 한껏 허세를 부리고 다녔지만, 사실 나는 지독하게 외로웠다는 걸 새삼 알았다.

두 번째 회기에서 선생님은 나에게 다른 치료자를 소개해 줄 테니 그분도 한 번 만나보라는 제안을 해주셨다. 그 제안이 ‘내 정체성과 관련된 거절’로 느껴지지 않기를 바라시며 아주 신중하고 사려 깊게 말하시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자신도 충분히 내 외로움을 들여다보고 다뤄가는 작업을 함께 해줄 수 있지만, 자신보다 퀴어 주제에 통달한 분석가를 찾아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더불어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두 명 이상의 치료자를 만나본 후 어느 분과 상담을 진행할지 최종적으로 결정 내리는데, 우리나라가 너무 권위적인 분위기라 그런 과정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며 비판하셨다. 그 정도 경력을 쌓으셨는데도 자신의 부족한 면을 기꺼이 인정하면서 내담자가 최대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 주시는 선배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 큰 울림을 줬다. 심지어 2회기치 상담비는 안 받겠다고 하셨다. 세상에. 

나도 언젠가는 그 정도로 멋있게 리퍼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날 선생님이 보여주신 말과 행동을 기억에 새겼다. 그중에 요즘 갈 길을 몰라 헤매던 내게 큰 이정표가 된 말이 있다. 한국에는 아직 퀴어 이슈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전문가가 부족한데, 나라면 될 수 있을 거라고 해주신 부분이다. 한국에서 내가 앞으로 할 일이 참 많을 거라며 고개를 끄덕이시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결과적으로는 그때 소개해 주셔서 만난 두 번째 분석가 선생님과 교육분석을 지속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만나게 될 누군가를 떠올리며 오늘도 이 지독한 외로움을 기꺼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나도 당신도 서로 함께 말을 나눌 수 있어 다행이라고 느끼기를 바라며. 

Joe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