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이 부러진 우산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언제 사서 얼마나 썼는지 모를 우산은 때가 되어 버려졌다. 그 위로 금방 이것저것 쌓였다. 택배 상자에서 뜯어낸 박스테이프와 송장 뭉치들, 코를 풀었던 휴지 뭉치들, 기름 튄 벽이나 라면 국물 튄 식탁이나 먼지 쌓인 구석구석을 닦아낸 물티슈들, 씻어 말린 계란 껍데기들…. 가득 찬 쓰레기봉투를 꺼내어 가장 만만한 슬리퍼를 신고 지긋이 밟아 우겨 넣는다. 그때 무언가 옆구리를 비죽, 뚫고 나온다. 뾰족하고 길고 단단한 것. 버려진 우산, 부러진 우산살. 쓰레기봉투의 찢어진 옆구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오랫동안 고군분투했던 연구 결과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날은 차갑지만 맑은 공기에 햇살도 좋은 날이었다. 연구실 역사상 첫 번째 공동연구 성과이자 이제까지 나온 논문 중 인용지수가 가장 높은 저널이라니. 약간은 믿기지 않으면서도, 벅차오르는 성취감과 이제 됐다는 안도감이 뒤섞여 들뜬 마음이 넘실거린다. 날도 좋고 기분도 좋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버스 대신 걸어서 퇴근하기로 한다. 파란 하늘과 짙은 소나무, 길가로 쏟아질 듯한 이름 모를 나뭇가지를 눈에 가득 담는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맑은 기쁨인지, 이 맛을 조금 더 오래 누리고 싶다. 그렇게 길을 걸은지 10여 분 쯤, 갑작스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눈과 입가의 근육들은 제멋대로 들썩인다. 여긴 길이고 날이 아직 밝은데. 지금 난 너무 홀가분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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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와 시험에 사용되는 동물은 설치류가 압도적으로 많고 그밖에 어류, 조류, 토끼, 원숭이류 등이 있다. 2021년 래리 카본(Larry Carbone) 박사가 Scientific Report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미국 내 16개 대형 연구기관을 표본으로 설치류 사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마우스와 랫이 차지하는 비율은 99%에 이르렀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전역에서 1년 간 사용된 마우스와 랫의 마리 수는 약 1억 1,150만 마리로 추정됐다.1 우리나라에서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매년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운영실적 및 실험동물 사용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4년 연구와 시험에 사용된 것으로 보고된 연간 동물은 총 459만 마리였고, 그중 설치류가 406만 마리로 88%를 차지했다.2 이렇게 설치류가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이유는 사람과의 유전적 유사도가 높다는 생물학적 근거와, 사육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 새끼를 많이 낳고 번식 주기가 짧다는 경제적 효용가치 때문이다.
실험용 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털색에 따라 검정색, 갈색, 황토색, 흰색이거나 얼룩무늬가 있거나 털이 없기도 하며, 가장 작은 마우스, 그 다음으로 큰 랫, 가장 큰 기니피그 등. 그중 털이 하얗고 눈은 빨간 쥐가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는데, 이들은 본래 드물게 태어나는 알비노 돌연변이였다. 그러나 20세기 초부터 수십 세대에 걸친 선별적 교배를 통해 이제는 돌연변이가 아닌 고유한 형질을 가진 계통이 되었다. 이들은 멜라닌 색소가 없어 털이 희고, 홍채에도 색소가 없기 때문에 안구 안쪽 혈관이 비쳐서 눈이 붉게 보인다. 마우스와 랫 모두 이런 알비노 계통이 널리 사용되어 왔으며, 오랫동안 방대한 데이터가 축적되었기 때문에 연구의 신뢰성을 확보하기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마우스와 랫은 같은 설치류임에도 성격과 행동적인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마우스는 연구자를 사납게 물기도 하고, 때때로 자기들끼리 심하게 물고 뜯고 싸우기도 한다. 그럴 때면 다친 쥐를 찾아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고 케이지를 분리해주어야 한다. 분리해주지 않으면 다음 날 죽은 마우스를 발견할 수도 있다. 반면 랫은 순하디 순해 서로 싸우는 일도, 연구자를 무는 일도 거의 없다. 랫은 덩치만 컸지 순둥한 골댕이 같고, 마우스는 절대 참지 않는 치와와 같다.
생물학적 차이 역시 크다. 마우스는 체중이 약 40g인 반면 랫은 약 300g으로 랫이 7.5배 더 무겁다. 뇌 무게 또한 마우스는 약 0.4g이지만, 이에 비해 랫은 약 1.8g으로 4.5배 차이가 난다. 신경세포 수 역시 마우스는 약 7,000만 개, 랫은 약 2억 개로 2.8배 정도 더 많다.3 이에 따라 랫은 뇌가 크기 때문에 특정 뇌 영역에 약물을 주입하거나 전극을 삽입하는 수술을 할 때 정확도가 높아지고 더 많은 샘플을 얻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또한 랫은 마우스보다 지능이 높아 학습이나 기억, 중독, 사회성 등 복잡한 행동 분석이 필요한 연구에 더 적합하다. 이러한 이유로 나의 연구실에서는 주로 랫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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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를 보여주니 학생들은 제각기 신기하게 혹은 징그럽게 바라본다.
“맨 처음 보이는 이게 간, 이게 소장과 대장, 횡격막을 가르고 갈비뼈를 자르면 여기 심장이 아직 뛰고 있지.”
(우와 하는 소리.)
나는 강의실 뒤편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고작 손가락 두세 개만 한 마우스를 죽이는 모습을 볼 자신이 없었다. 쥐를 죽이고 사지를 바늘로 고정한 뒤 장기를 하나하나 보여주어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해부 따위 하지 않아도 장기의 모양과 기능은 애저녁에 배웠다. 의사의 꿈을 놓지 못해 의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던 학생들이 더러 있었지만, 합격하고 해부를 배워도 늦지 않을 것이다. 졸업하면 일자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질 학생이 태반이었고, 그 직업이 무엇이든 마우스 해부 경험은 필수사항이 아니다. 연구생으로서 연구를 하고 있던 나도 마찬가지다.
그 시절 나는 강의실 맞은 편 연구실로 출근하며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실험을 했다. 박테리아와 암세포를 키우거나 DNA, RNA, 단백질을 다루는 일은 나에게 재밌는 놀잇감이었다. 세포에서 DNA를 추출해 수천 배로 불리거나 얇게 떨어진 살점, 머리카락 등을 현미경으로 한참 들여다보며 국과수 놀이를 한다거나, 특정 염기서열을 바꾸기 위해 DNA에 착 달라붙는 DNA 조각(primer)을 디자인하는 일이나 두 개 이상의 단백질 간 결합을 연구하는 일은 마치 퍼즐 맞추기 같았다. 생명의 언어가 DNA에 쓰여 있으며 DNA에서 RNA로, RNA에서 단백질로 전달되는 과정을 상상하다 보면 어느새 밤이 됐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더라도 연구의 세계는 무궁무진했고, 해야 할 연구도 많았다. 그런 핑계로 나는 동물실험을 멀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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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랫들은 먹이를 이용한 학습 훈련을 해야 했기에 약간의 식이제한을 했다. 야행성 동물이라 낮에는 보통 잠을 자지만, 배가 고픈 우리 쥐들은 늘 잠 대신 버선발로 나를 반겼다. 케이지 뚜껑을 열면 제 키만큼 높은 케이지 모서리에 매달려 버둥거리며 빨리 꺼내달라고 아우성이다. 곧 사료에서는 맛볼 수 없는 달콤한 슈가 펠렛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이 들어온 화면을 코로 터치하면 뒤쪽 트레이로 슈가 펠렛이 나온다는 걸 랫들은 아주 잘 학습한다. 성질 급한 녀석은 화면에 불이 들어오기도 전에 터치를 하고 트레이로 달려가서 펠렛을 내놓으라는 듯 트레이를 맹렬하게 들쑤신다. 펠렛을 오물거리며 채 삼키기도 전에 다시 화면으로 달려간 녀석은 화면을 연거푸 터치한다. 먹은 슈가 펠렛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배가 차는지 먹으러 가는 속도도, 먹는 속도도 느려진다. 하지만 30분 간의 학습을 마치고 그램을 정확히 맞춘 사료를 철망에 부어주면, 방금 먹은 펠렛은 간에 기별도 안간다는 듯 앞발로 철망을 붙잡고 기다란 앞니로 사료를 갉아 먹느라 정신이 없다.
마흔여덟 마리의 훈련을 모두 마치면 실험실을 정리하고 사육실로 돌아가 사료와 물, 케이지 상태 등을 확인한다. 우리 애들 잘 있나 지켜보면 이들도 참 각양각색이다. 인간이 온 줄도 모르고 두 앞발로 사료를 꼭 쥔 채 쉴 새 없이 걀걀걀걀 먹느라 바쁜 쥐, 기척을 느끼고 움찔했으나 여전히 식사에만 집중하는 쥐, 먹을 만큼 먹었는지 벌러덩 누워서 자는 쥐, 구석에서 조신하게 웅크리고 자는 쥐. 가장 귀여운 순간은 이들과 아이컨택의 순간인데, 특히 사료 조각을 두 앞발로 꼭 쥐고 먹다가 눈이 마주쳤을 때가 압권이다. 사료를 입에 문 채 그대로 ‘얼음!’ 하는 순간, 약간 놀란 듯 멍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마스크 뒤로 입꼬리에 힘이 들어간다. “괜찮아, 얼른 먹어.”라는 말을 마음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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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로 축 늘어진 몸. 나는 가르고 자르고 부셔서 목표한 것을 얻는다.
장갑에 묻은 피는 아직 따뜻하다.
동물은 제 안의 일부를 탈취당하고, 그것은 튜브에 담겨 샘플이 된다.
헤집어진 사체는 더이상 몸이 아니며
샘플에는 얼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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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쥐를 사체통에 버렸다. 그 쥐는 샘플도, 어떤 의미도 남기지 못한 채 죽었다. 나는 그 생명에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나, 그에 대해 묻지 않고 묻어버렸다. 잊혀질 것을 굳게 믿으면서.
간절히 기다려온 시기였다. 진종일 실험하고 수없이 실패하고 늦은 밤까지 고민하느라 눈은 뻑뻑하고 피부는 푸석하지만 마음만은 넉넉한 그런 시기. 반짝이는 그 시기를 덥썩 잡고 힘껏 달렸다. 그런 시간은 사람의 의지로 맞이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나의 시간, 나의 노력, 그 어느 것도 아깝지 않았다. 유일하게 아까운 건 감상에 빠지는 시간이었다.
그 시절 나의 운 나쁜 쥐들은 피부가 곪고, 터지고, 수술 후에 깨어나지 못하고, 깨어났으나 아파하다 죽고, 괜찮아 보였는데 죽었다.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녀석은 등이 점점 굽고 털은 쩍쩍 갈라지며 죽음의 신호를 내보인다. 스스로 그루밍하지 못해 피눈물과 코피 같은 분비물 자국이 남는다. 야생 본능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실험동물조차 자신의 아픔을 능숙하게 감추지만, 밥을 먹지 못할 만큼 아프면 그렇게 티가 난다. 사료를 죽으로 만들어 주사기로 먹여주고 진통제를 놔줄 때, 이 아이는 더 이상 실험동물이 아니다. 제발 먹어. 한 입만 더 먹어. 수술을 더 잘했어야 했을까, 얼마나 아프면 죽을까, 죽음을 초래하는 고통은 무엇일까, 내가 뭐라고 이들을 죽일까. 너무 아파하면 인도적 안락사를 고려해야 하지만, 알량한 죄책감은 고통을 끝내지도 못한다.
어느 쥐는 원인미상의 사체로 발견되었다. 전날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손도 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따뜻하고 묵직해야 할 쥐는 바싹 마른 채 숨을 거둔 모양 그대로 굳어버린다. 꼬리를 잡으면 싫다고 도망가야 할 녀석이 마치 찰흙으로 빚은 것처럼 죽은 모양 그대로 댕강 들리니 그 촉감이 퍽 역겹다. 사체와 하룻밤을 보낸 쥐가 걱정되지만 특별히 이상행동은 관찰되지 않는다.
어느 쥐는 사체가 심하게 훼손되었다고 한다. 먼저 발견한 동료가 보지 않는 게 좋겠다고 나를 만류한다. 죽음의 원인을 들여다볼 책임이 있으나, 검은 비닐 안을 들여다볼 용기가 아무래도 나지를 않는다. 나를 보호하려는 듯 온 감각이 닫혀 있다. 옆구리가 어떻다는데 잘 듣지 못했다. 같은 케이지에 있던 다른 쥐는 입 주변이 붉었다. 나는 들여다보기를 포기한다. 죽은 쥐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영원히 모르고 싶다. 고통을 최소화한 안락사라고 가책이 없겠냐마는, 예기치 못한 죽음 앞에는 울컥 치미는 화와 싸르르한 슬픔이 있다.
“그래도 해야지.”
그뿐이었다. 나는 사체봉투를 치우고 그날의 실험을 했다. 케이지를 가져오고, 훈련을 시키고, 훈련이 끝나면 무게를 정확히 잰 사료를 부어주고, 케이지를 사육실로 가져다 두었다. 뚜껑을 열면 마중나오는 쥐들을 건조하게 바라보고, 훈련 중 이상행동 유무를 관찰하고, 학습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허겁지겁 사료를 먹는 쥐들에게서 무심한 시선을 거두었다.
그 시절에는 죄책감과 분노와 슬픔과 애도가 다 사치스러웠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주어진 과제에만 죽도록 매달렸다. 이 기술만 최적화하면 작은 깃발 하나를 꽂을 수 있고, 그런 다음 세상에 보고된 적 없는 연구를 해서 조금 더 큰 깃발을 꽂을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이 몰입의 시간을 좀더 오래 붙들고 싶었다. 사치스러운 감정들을 뒤로 하고 앞만 보고 내달렸고, 그러면 묻어버렸던 것들이 잊혀질 줄 알았다. 하지만 죽은 쥐들은 내 몸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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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rbone, L. (2021). Estimating mouse and rat use in American laboratories by extrapolation from Animal Welfare Act-regulated species. Scientific Reports, 11(1), 1-11. ↩︎
- 농림축산식품부. (2025. 6. 2.). 2024년도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운영실적 및 실험동물 사용실태.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 https://www.animal.go.kr/aec ↩︎
- Herculano-Houzel, S., Mota, B., & Lent, R. (2006). Cellular scaling rules for primate brain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3(32), 12138-12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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