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나라로 도망쳤다] 2. 버텼다.

2. 버텼다.

백수가 된 나는 영국으로 떠났다. 

새로운 삶을 위해 100kg에 가까운 짐을 들고 영국 공항에 도착했다. 캐리어 두 개와 가방 두 개. 혼자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무게였다. 대중교통은 엄두도 나지 않아 우버를 불렀다.

하지만 히스로 공항은 생각보다 훨씬 거대했다. 택시 승강장을 찾는 것만으로도 한참을 헤맸다. 그때 우버 프로필 사진과 비슷하게 생긴 남자가 다가와 “택시 예약했냐”고 물었다. 긴 비행에 지쳐 있던 나는 별다른 의심 없이 그의 차에 짐을 실었다.

그 차는 내가 부른 우버가 아니었다.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는 내가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 짐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나를 뒤로 하고 그는 원래 요금의 다섯 배에 가까운 금액을 결제했다. 나는 숙소에 도착 후 결제 내역을 확인하고 사기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영국에 도착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100만 원이 사라졌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나라에서 한 번쯤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앞으로 좋은 일만 있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영국에서의 첫 번째 미션은 장기 숙소를 구하는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부동산에 가서 예산을 말하면 몇 군데를 보여준다. 하지만 영국은 달랐다.

먼저 집주인에게 자기소개 편지를 보내야 했다.

“한국에서 개발자로 일했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입니다. 집을 깨끗하게 사용하며 공용 공간을 소중히 생각합니다. 집이 정말 마음에 들어 뷰잉을 하고 싶습니다.”

취미와 직업, 생활 습관까지 적어 보내면 집주인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만 뷰잉 기회를 준다. 집을 보러 가는 것조차 선택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첫 번째 집은 중국인들만 사는 플랫이었다. 방은 마음에 들었지만 계약 기간이 한 달뿐이었다.

두 번째 집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돌아가고 싶었다.

세 번째 집은 집주인이 너무 활발했다. 좋은 사람이었지만 하루 종일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없었다.

네 번째 집에서는 왠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네 번째 뷰잉 후 챗GPT를 붙잡고 물었다.

“집주인이 나를 좋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챗GPT는 쉬려고 영국에 왔다고 말하는 편이 여유 있어 보일 거라고 했다. 그리고 면접을 보듯 대답만 하지 말고, 나도 집과 플랫메이트에 대해 적극적으로 질문해 보라고 조언했다.

그 조언을 그대로 따라 했다.

“너네는 밥을 같이 먹니?”

“나는 조용한 편이고 집순이라서 아마 집에 자주 있을 것 같아”

“나중에는 개발일도 구하고 싶긴 한데, 지금은 조금 쉬려고. 영국 온지 얼마 안되서 그냥 요새 즐기고 있어!”

그렇게 다섯 번의 뷰잉 끝에 지금의 집을 구했다. 영국에 온 지 한 달 만에 첫 번째 미션을 끝냈다.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돈을 버는 것.

CV를 들고 주변 카페와 음식점을 하나씩 들어갔다.

“혹시 사람 구하시나요?”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같았다.

“지금은 채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카페에서 트라이얼을 제안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일은 시작되지 않았다. 사장은 일 이야기보다 남자친구가 있는지, 가볍게 만나는 관계를 좋아하는지 같은 질문에 더 관심이 많았다. 어딜가나 남자들은 징그럽구나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만 버블티 가게에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영국에서 첫 직장을 구했다. 하지만 기대와 현실은 달랐다. 위생 상태도, 사장님의 태도도, 급여 관리도, 스케줄 관리도 엉망이었다. 출근할수록 ‘여기서는 오래 버티지 못하겠다’는 생각만 커졌다.

결국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한국 마트에도 CV를 보냈다. 마침 지역 매니저가 한국인이었다.

“다음 주부터 일할 수 있나요?”

영국에 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합격 연락이었다.

그렇게 버블티 가게를 떠나 한국 마트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마트에서 일하며 생활은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직원 할인으로 장을 볼 수 있었고, 덕분에 생활비도 꽤 아낄 수 있었다. 처음으로 한 달 동안 번 돈이 쓴 돈보다 많아졌다. 

영국에 와서 처음으로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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