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의 이름을 빌린 ‘차별’

신의 이름을 빌린 ‘차별’
선교단체에 끌려가다

:::여성주의저널:::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기고_ 데조로
2007-02-05

<필자 데조로님은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레즈비언 활동가입니다. -편집자 주>

나는 잘못 태어난 아이였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되는지 알아버린 그 순간부터 나는 끊임없이 신에게 분노하며 한편으론 애원했다. 나는 대대로 내려오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 잘못 태어난, 저주 받은 동성애자니까.

나의 사랑은 집안의 수치였다. 나와 내 연인이었던 사람 앞에서, 우리 사이를 알아낸 어머니는 분노에 몸을 떨었다. 이성을 잃고 거칠게 숨을 몰아 쉬는 어머니에게,
“엄마, 제발 이러지 말자. 엄마, 나 엄마 많이 사랑해. 내 동생도, 아빠도. 너무너무 많이 사랑하는데 제발 이러지 마요, 네?”

“엄마도 너 사랑하니까 이 꼴 못 보는 거야. 너도 차라리 고아를 사랑하지 그러냐. 이게 얼마나 부모 맘을 무너지게 하는데. 무슨 어디서 남자랑 자고 애를 배서 오는 게 차라리 덜 놀라겠다. 쟤네 부모님에게도 못할 짓이다, 못할 짓이지. 정말로 사랑한다면 쟤 놔줘라. 헤어지라고!”

이렇게 시퍼렇게 그녀와 날 찍어 내리던 어머니는, 내 여동생이 언니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곤 실신하셨다. 온 몸으로 울부짖으시던 나의 어머니의 절규를 나는 잊을 수 없다.

“나중에 그 애가 지 남편한테 ‘너네 언니는 이상하다. 레즈비언이냐?’ 이딴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갈 텐데 넌 죄책감도 없니? 응? 부끄럽지도 않니? 동생이 불쌍하지도 않아? 그 아이에게, 그 불쌍한 애한테 그런 상처를 주니?”

며칠 뒤 어머니가 불러온 기도원 사람들이 나의 몸을 온통 헤집고 멍들게 했다. 그 때 쓰러져 있는 나를 붙잡고 “언니, 포기하지 마. 그 언니 정말로 사랑해? 그럼 포기하지 마. 언니 헤어지지 마”하며, 굳은 채 펴지지도 않는 내 팔을 주무르며 울먹이던 단 한 사람이 바로 내 동생이었다.

집안의 참을 수 없는 수치로 여겨지던 나에게 특단의 조치가 내려진 건 그 해 가을이었다. 갑자기 부모님께서 학교를 휴학하고 6개월간 선교단체에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가지 않겠다고 하면, 그녀의 부모님에게 그녀와 나의 관계를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그리고 선심을 쓰듯 그 곳에서도 내 ‘동성애증’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우리 사이를 인정해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떠난 그 곳에서 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그 곳은 목사의 자녀나 선교사를 꿈꾸는 독실한 젊은 기독교인들이 거쳐 가는 일종의 선교사관학교 같은 곳이었다. 그들에게 나는 호기심과 혐오의 대상이었다. 마치 내 등에 ‘악마의 손아귀에 붙잡힌 불쌍한 영혼’, ‘마약보다 끊기 힘든 동성애 중독자’, ‘더러운 죄를 짓는 자’ 따위의 꼬리표가 붙어있는 것 같았다.

이미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녹초가 된 나는 차라리 나를 괴물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럴 바엔 모든 괴로움을 참아내며 꿋꿋이 레즈비언 프라이드(pride)를 드러내는 것보다, 그 사람들에게 눈물이라도 뚝뚝 흘리면서 나 좀 고쳐달라고 매달리는 게 나았다. 당시 나의 한계는 딱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어느 날,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미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나를 이렇게 내버려두는 신에게 구역질이 날 정도로 분노가 차 올랐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악하게 살았다고, 왜 내가 동성애자가 되어야만 하는가! 나는 내가 동성애자이길 선택한 적이 없다. 나는 동성애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동성애자인 것이었다. 사랑이 선택으로 가능한 것이라면 그게 사랑인가?

마음 속 깊숙이 간직하고 있었던 끊이지 않는 물음들이 머리 속에 터질 것처럼 꽉 차 올랐다. 그러다 무언가 팽팽한 실이 끊어지듯 마음속에 긴장이 탁 풀어지면서 ‘그래. 내가 죄인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드니 피식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 이런 식으로 종교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구나.’

그곳으로부터 돌아와 알게 된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이 조성하는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멀쩡한 사람이 미친 사람이 되어버리는 건 정말 쉬운 일이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 때문에 힘들어하는 동성애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들이 믿고 있는 그 분은 동성애자를 죄인이라고 한 적이 없다는 것을. 동성애는 죄가 아니라는 것을. 동성애는 어떤 책의 제목처럼 “신이 허락하고 인간이 금지한 사랑”이라는 것을.

신의 이름을 빌어 타인을 죄인으로 몰고, 그 상승효과로 자신은 깨끗한 사람이라고 안도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종교는 점점 거대한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그들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전부 악마가 씌웠다고 매도한다. 그 얼마나 편리한 방법인가! 그릇된 믿음을 가진 눈 먼 자들에게 속지 말아야 될 사람은 바로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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