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성 정체성, 혼자서 끙끙 앓지 말아요

성 정체성, 혼자서 끙끙 앓지 말아요
레즈비언 상담을 배우면서

:: 여성주의저널 <일다>http://www.ildaro.com ::

_ 2006년 12월 26일
_ 가지

<필자 가지님은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회원이며, 레즈비언 상담활동가가 되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우팅’(동성애자의 성 정체성이 타의적으로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당했다. 유난히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동급생 하나가 우연한 계기로 나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되었는데, 한동안은 아우팅을 구실로 협박을 해왔다.

어머니가 교사로 계시는 학교를 다닌다는, 상당히 특이한 상황에 있었던 나는 혹시나 그 아이가 정말로 말을 퍼뜨릴까 하는 두려움에 굉장히 시달렸다. 하소연 할 친구도, 도움을 줄만한 사람도 알지 못했다. 친한 ‘이반’(異般 또는 二般, 한국 동성애자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 친구하나 변변히 없는, 갓 전학한 학교에서 모든 것이 낯설었던 나로서는 그 괴로움을 온전히 다 견뎌내는 것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적당히 그 아이 비위를 맞춰주는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그런 내가 여전히 맘에 안 들었는지 그 친구는 결국 일을 저질러 버리고 말았다. 사소한 일을 구실로 잡아 교실 모든 친구들 앞에서 “왜. 넌 이반이잖아!”라며 얄밉게 말하는 그 표정이란. 수군수군 대는 온 반 아이들 속에서 갑작스러운 공격에 어안이 벙벙해진 난 당장 그대로 교실 밖으로 도망쳤다.

아우팅 이후로도 ‘옆 반 XX가 사귄다’, ‘OO와 어디서 만난다’더라 하는 식의 악의에 찬 소문들은 계속 만들어졌다. 그런 식으로 3년 내내 시달림을 당한 나는(그래도 어머니의 귀에 들어가지 않은 것만으로 만족하며) 결국 변변한 친구하나 만드는 것도 너무나 힘든 고등학교 생활을 해야 했다.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나의 그 고단했던 시간을 말할 수 없었다. 이반 커뮤니티 활동을 했었더라면 그 고민들을 같은 이반 친구들과 나눌 수 있었을까 생각도 해보았고, 청소년 상담센터에도 가볼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나를 드러내기가 두려웠고, 나의 성 정체성에 대한 불안과 회의 때문에 나 자신이 너무 싫었던 그 때는 혼자 삭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이하 상담소)라는 단체를 알게 됐다. 어디에도 털어놓기 힘든 고민들을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주는 공간. 지금까지는 가벼운 친목 위주의 이반 커뮤니티만 알고 있었고, 그런 분위기에 적응하기 어려워 커뮤니티 자체를 멀리했던 나에게 상담소는 너무 낯설고 놀라운 곳이었다. 이반 상담센터가 있는데다가, 더구나 레즈비언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곳이라니! 정말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기뻤다.

10대 커뮤니티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소통할만한 이반 친구도 없었던 내가 느끼어 온 소외감. 그리고 성 정체성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과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에 의해 부유하고 있던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도 갖게 됐다.

상담소의 문을 두드린 건 지난 11월이었다. 사실 상담소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다른 레즈비언들에게 도움이 되자는 생각보다는, 우선은 회원 가입을 해서 내가 소통할 사람들을 갖고 싶다는 욕심에, 즉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이유에서였다.

‘나’를 정의하는 것(정체성에 대해서도 그렇다)에 서투른 나는, 나에게조차 이제껏 너무도 불확실한 존재였다. 어느새 나는 뭐든 혼자 끙끙 앓으면서도 해결은 없고, 자기만족과 자기위안에 익숙하면서도 그에 대한 불신이 뒤엉킨 뒤죽박죽인 채로 생각들을 그냥 쌓아만 두면서, 점점 안으로만 곪아가게 하는 구제불능 외톨이가 되어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모른 채 혼자 담아두는 방식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단절에서 오는 두려움과 위기감이 위험할 정도로 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타인과의 소통이, 특히 다른 이반들과의 소통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꼈다. 처음에는 그랬다. 조금씩 이 단체를 알아가면서 그런 이유들은 이제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만.

지금 나는 상담소에서 활동하기를 희망하면서, 레즈비언 상담에 대해 배우고 있다. 상담훈련을 하며 사례들을 통해 다른 레즈비언들이 힘들어 하는 상황에 나를 이입시키게 되고, 상담을 통해 답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배울 때마다 조금씩 나의 소외감은 사라지고 있었다.

나 살자고, 이기적인 생각으로 가입했던 단체인데, 이젠 나와 비슷한, 더 큰 외로움과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이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작으나마 나도 힘이 될 수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나처럼 혼자 삭히게 두진 말아야지 하는 욕심이 커지면서, 처음의 이기적인 생각은 점차 없어져간다.

조금이라도 일찍 상담소의 존재를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자주 든다. 그랬다면 이제껏 혼자 힘들어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말이다. 하지만 아쉬움은 거기서 끝. 혼자서 낑낑대던 옛날의 바보는 이제 그 언젠가의 일기 속에만 있다. 그리고 그 바보의 모습이 나의 일기 속에만 존재하기를, 내가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될 수 있기를 욕심내면서, 나는 오늘도 상담소 사무실이 있는 언덕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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