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아줌마§포르노§] 제6화 몸과 정서와 의식의 싱크로/동화

제6화 몸과 정서와 의식의 싱크로/동화

크리스의 어머니와 크리스와 나, 이렇게 셋이서 1박2일로 온천여행을 갔다.
세차게 비가 내리는 밤에도 비 사이로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모텔에 짐을 풀고,
잠옷으로 분홍색 면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크리스의 어머니는 ‘예쁜 옷도 다 봤다’ 하시면서 크리스도 그런 예쁜 옷을 입었으면 하신다.
크리스는 옆에서 자기는 절대로 저런 거 안 입을 거라며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사실 우리집에서는 크리스도 아무렇지 않게 걸쳐 입는다.
내가 ‘저 비슷한 것을 보면 하나 사다 드릴까요?’했더니 좋다고 하신다.
크리스는 옆에서 ‘엄마나 입으세요!’하면서 입을 삐죽, 볼을 퉁퉁거린다.
크리스는 말하자면 어머니 앞에서는 저런 분홍색 원피스 따위 입지 않는 딸이다.
남편 대신, 아들 대신, 미국에 살기 때문에 자주 볼 수 없는 큰딸 대신,
크리스는 이 모든 사람들 대신 어머니 곁에 든든한 사람으로 있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런데 든든한 사람은 분홍색 원피스 입으면 안 돼?
 
그건 그렇고, 나야말로 언제부터 이런 분홍색 옷을 아무렇지 않게 입게 된 걸까?
한때는 분홍색 옷을 입으면 마치 옷을 입지 않고 벌거벗은 듯 부끄러웠다.
곰곰 생각하자니 ‘나는 오랫동안 무뚝뚝한 남자 아이였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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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꽤 오랫동안 무뚝뚝한 남자 아이였다.
풀어서, 나의 몸은 여자 아이, 정서는 무뚝뚝, 의식은 남자였다.
 
남자 대 여자, 정신 대 물질, 정신 대 육체, 의미 있는 것 대 부질 없는 것, 선비 대 속물,
뭐 그렇게 모든 것이 이분법으로 정의되는 세상에서 나는 남자, 정신, 의미 있는 것, 선비(얼어 죽을!)의 편에서 성장했다.  
 
명예 남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단순하게 들린다.
 
아버지는 첫째 자식이 아들이길 간절히 바랬다. 심지어 믿었다.
아무 근거 없이 그저 당신의 운명이 그러하리라 믿었다. 그리고 난 아들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름대로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난 천성이 느려터졌고 어머니는 뭘 해도 재바른 사람이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화려하게 생겨서 수수한 옷을 입어도 눈에 띄는 사람들이라면,
난 화려한 옷을 입어도 수수하게 보이는 편이다. 자학이나 비교를 해서가 아니라.
(난 나처럼 생긴 게 더 좋고 솔직히 우리 엄마나 동생처럼 생기는 건 성가신 일이라고 생각한다. 쓰고 보니 약간의 포비아가 느껴지는군. 미인박명 포비아랄까. 가부장제가 여자를 지배하는 여러 가지 기제 중 하나.) 성격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다 보니 어머니, 여동생과 내가 비슷한 사람이라고 느끼기 어려웠다.
 
그런 날 두고 어른들은 걸음걸이마저 아버지를 닮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집안 사람들이 나를 아들로 키운 것은 아니다.
화려하게 생긴 내 동생이야말로 우리집의 ‘사자’였고 ‘아들’이었다.
 
집안의 역할분담이라는 것은 묘하다.
나는 엄마를 닮지 않은 딸로, 예쁘게 생기고 성격도 솔직한 여동생을 질투하면서, 컸다.
철든 언니 역할에 나 자신을 파묻어 버리고 되도록 송곳니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속으로는 나도 귀엽고 예쁘고 연약한 여자애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는 힘이 너무 센데다 센스마저 없어서 여자 친구들하고는 뭘 같이 들 수도 없었다.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뭐든 너무 번쩍번쩍 들어버렸다.
힘의 균형이 맞지 않으니까 여자 친구들이 너는 차라리 들지 말라고 했다.
 
그럼 남자애들하고는 잘 맞았을까?
 
유감스럽게도 유년시절의 나는 아주 이성애적이었기 때문에 남자애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했다.
나는 크고 느리고 뿌루퉁한 어린애였다. 그리고 크고 느리고 무뚝뚝한 남자 아이로 성장했다.
속으로는. 겉으로는 크고 느리고 상냥한 여자 아이였다.
 
이십 대가 저물어갈 무렵이 되자
내 얼굴에 들러붙은 상냥한 여자 아이의 밝고 맑고 믿음직한 얼굴을 쥐어뜯고 싶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쥐어뜯어내고 싶다고. 겉으로 보이는 나와,
여태까지 보여주어야 한다고 믿었던 내 모습으로는 더 이상 살 수도 없고
살 필요도 없다는 걸 알게 된 나 사이의 거리는 멀었다.
 
그렇게 이십 대와 삼십 대를 거치면서
내 속의 무뚝뚝한 남자 아이는 역할 모델이 될만한 여자들을 많이 만나고,
의식화를 넘어서 감화감동하면서 조금씩 뚱뚱한 성인 여자의 몸에 싱크로/동화 되었다.
일찍 철든 척하던 정신머리는 정말로 철들어야 하는 나이를 먹어서는 도리어 퇴행했다.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보상받기라도 했을까?
서른을 바라볼 때까지도 여전히 십대처럼 책임을 알지 못했다.
 
내 앞가림은 내가 해야 하는 줄 알게 되고,
또 그렇게 하겠다고 굳게 마음 먹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린 걸까?
 
삼십 대에는 그저 어른 흉내를 내느라 바빴다.
나의 정신이 여러 가지 이유로 육체의 나이를 따라오지 못했다면, 어쩌겠는가?
이미 서른이 넘었는데. 일단은 어른 흉내라도 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제는 흉내가 몸에 붙었는지, 아니면 정신이 성숙했는지, 흉내내기에 전전긍긍하는 마음은 덜하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나의 몸과 마음과 의식과 정신 연령과 육체 연령은 맞춰지고 있는 중이다.
이 모든 것들이 딱 들어맞는 순간은 오지 않을 것 같다. 때때로 예상하지 못한 내 모습을 발견한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해봤자 나의 정서와 의식, 여태 받았던 교육, 기타 등등 속에 검열의 벽은 높다. 나는 수많은 검열의 벽, 높은 검열의 벽, 두꺼운 검열의 벽에 둘러싸여 있으며,
그 벽에 잠깐 틈이 생길 때, 잠깐 빛이 들어올 때 그 빛을 놓치지 않고자 노력한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그 사람들이야말로, 내가 공감을 하든 안 하든 내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나는 눈물을 흘리는 아줌마로 성장했다. 분홍색 원피를 입어도 아무렇지 않은 아줌마가 되었다.
옷으로 나를 드러낼 수도 있고 감출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지고 싶다.
뭘 입어도 대체로 싱크로율이 높아졌다는 건 몸과 의식과 정서가 가까워졌다는 뜻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