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덫

이제 저는 나이가 많아집니다.
계속 많아지고 있군요. 내일 모레면 또 생일인데 결코 스스로 세상에 존재하게 된 날을 축하할 수가 없습니다.
더 이상 청춘이라고 할 수 없는 시점이 왔습니다.

저는 아무도 없습니다.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세상의 70퍼센트가 동성애의 가능성을 갖고 있고 생각보다 세상에는 동성애자가 많고 어쩌고... 아무리 그런 글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제 주변에는 왠지 없습니다.
아마도 내가 누구고 몇 살이고 어디서 뭘 하고 살고 있으며 사랑할 상대를 원하다고 전부 까발리지 않고도 그저 살아가다가 자연스레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이란 제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전 직업 전선에서의 한 동료가 (그는 남잡니다) 술을 먹자고 하더니 제게 외로워 죽겠다고 푸념을 하는데 저는 문득 일어나 턱을 한 방 갈겨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많은 연인들을 전전하다가 한 여자와 결혼했다가 애도 몇 낳아서 누구 부러울 것도 없는 주제에 자기 성격 나빠서 다 만들어 놓은 가정 깨고 이혼하고 이혼한 2주 만에 애인이 생기더니 1년 동안 세 사람이나 연인을 거쳐간 자가 고독 운운 하는 것이 (뭐, 나름의 이유는 있을 수 있겠으나) 갑자기 속으로 미친듯이 화가 치밀더군요. 
내가 너였더라면 그 한 사람 한 사람 전부 생명을 바쳐 사랑했을 것이다 라고 외치며 머리통을 갈겨버리고 싶었습니다만 마음 속의 외침이었을 뿐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동료는 그러면서 제게 자기와 사귀어 볼 생각 없냐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웃는 얼굴로 나 같은 사람에게도 관심이 간다니  고맙다고 말을 하고는 집에 와서는 혼자 책상을 치고 문짝을 때려부수며 혼자 몸부림을 쳤습니다. 아침에 제가 해 놓은 만행을 보니 가관이더군요. 이런 짓 몇 번 더 하면 집이 남아나지 않겠다고 생각될 정도로요.
어떤 것이 더 화가 나는 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실컷 즐기며 산 사람이 고독 운운 하는 것이 화가 나는 것인지, 자신이 심심하니 한 번도 관심 가져본 적 없는 내게 그런 소리를(나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차마 입도 뻥긋 못 해본 발언들을) 그다지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당당함이 부러운 것인지, 단순히 내게는 아무런 기회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분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끝까지 이렇게 늙어가다가 죽어야 하는 것인지
마음은 단단히 준비하고 있지만 생각할 때마다 억울하고 절망스럽습니다.
어째서 나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닐까. 지금 이 때까지 세상이 오케이 사인을 날려주는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도 부단히 했었고 언젠가 바뀔거다 자기 기만도 했었고 안 해 본 것이 없었는데... 너무 피곤해서 정신이 오락가락 합니다.
가능하다면 생각 없는 동물이 되고 싶기도 합니다. 어항속에 혼자 넣어놓은 붕어가 짝이 없어도 그냥 자신을 둘러싼 것이 물임만을 감사하며 살듯, 집에서 키우는 개가 짝이 없어도 딱히 불행해 밤마다 울부짖지 않고 주인의 얼굴에 대고 꼬리를 치듯 그렇게라도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어째서 어떤 사람의 삶은 이런 것입니까?
동성애는 유전적인 것입니까?
제 형제가 동성애자입니다.
어느날 형제가 느닷없이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바람에 부모는 비참하다고 몸부림을 치고 본인과는 말이 잘 안통하니 대신 제게 매달려 울고 불고 10년을 했습니다. 그런 부모 앞에서 저는 입도 뻥긋 못 하고 지금까지 어찌어찌 부모를 달래고는 저만의 공간으로 돌아오면 화나고 슬프고 괴로워 어쩔 줄 모릅니다. 그들을 위해 스스로 참고 다스리고 일 중독에 빠지고 내게는 성욕 같은 것 따위는 있지도 않은 척, 개같은, 성자같은 생활을 해왔으나...
이제 한계가 온 것 같습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예상하건데 한 2년 지나면 자살할 용기도 날 것 같습니다.

다른 분야보다 집중력이 필요한 직업이므로 그것을 의지로 하여 가능한 정신없이 살려고 했었으나, 이제 그것도 약발이 잘 먹히지 않으니 어찌해야 좋을 지 알 수가 없군요.


나이가 듭니다 5

댓글 5개

겨울바다님의 코멘트

겨울바다
사람마다 제각기 자신들만의 삶의 무게와 짐이 있나봅니다...님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고는 못하겠지만 어느정도는 이해할수가 있네요..물론 님도  님만이 알 수 밖에 없는 님만의 아픔과 외로움으로 많이 힘드시겠지만...아직은 님에게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시면서 기다리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님만의 짝을 찾아보시는 것도 고려해보셔도 될 듯 싶은 생각이 드네요.
저도 저 나름대로 지금현재 너무 힘든 상황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지치고 힘들어서 제게 찾아온 사랑을 포기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네요.. 저에게 찾아온 사랑이 그리고 저만을 바라보며 한결같은 그 사람을 외면할 자신도 그와 같이 날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소위 말하는 소울메이트를 다시 만날 것 같지 않아 험난한 가시밭길임을 알지만 포기가 되지 않고 자신이 없으면서도 그 사람을 욕심내고 힘든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영혼이 또 다른 영혼을 사랑하는데 세상은 제약도 많고 안된다는 것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요..도대체 왜 인간이란 존재는 또다른 인간이란 존재들의 자유와 사랑을 인정해주지않고 그냥 참으라고만 하는 걸까요..왜...왜 그런 걸까요.
세상의 잣대로는 우리는 죄인입니다. 결코 사랑하면 안되는 사람들이랍니다.
그사람이 행여 저로인해 많이 아파하게 될까봐 불행해질까봐 두렵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사람도 서로를 믿고 그냥 나아가려 합니다. 세상의 손가락질과 비난까지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견고하고 단단한 마음을 다지고 또 다지며 함께 하려 준비중입니다. 그럴 수 있겠지요? 그럴 수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님은 아직 인연을 못만난 것 뿐 분명 님에게도 님만을 위한 영혼의 동반자가 곧 나타나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제약없이 그냥 자유로운 영혼의 동반자를 꼭 만나실 수 있을거에요.
힘내세요~!

쥬님의 코멘트

생일축하해요..!!

나이가 듭니다님의 코멘트

나이가 듭니다

쥬 님// 감사합니다. 저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일이니까 억지로 기뻐하는 얼굴을 보이라고 강요하는 것 보다 이름 모르는 님이 보내주는 호의적인 메시지가 오늘은 더 좋네요. 축하라기 보다 격려처럼 느껴져서요.

겨울바다 님// 조언과 위로 고맙습니다. 솔직히 제가 받는 손가락질 두렵지 않으나 제가 아닌 사람들이 저 때문에 울어야 하는 것은 감히 감수하라고 할 수가 없어 지금도 멈춰선 자리에서 돌처럼 굳은 채 계속 괴롭고 있습니다. 좋은 분 만나셨다니 놓치지 마세요. 우주 끝까지 그 분과 함께 가시며 끝까지 행복하시길.

soul님의 코멘트

soul

구구절절 저와 같은 심정이네요.
비록 아무런 위로의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하지만,
저는 님의 글에 잠시나마 위안을 받았음에 감사드리고 싶네요. 힘냅시다...

나이가 듭니다님의 코멘트

나이가 듭니다
soul 님// 고맙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감추고 올리는 비겁한 글인데도 읽었다고 대꾸해 주시는 분이 계시니 허공에 대고 마냥 소리치는 것에 비하면 참 감사한 일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