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상담원입니다. 연애 경험 속에서 고민되는 부분을 상담소 게시판을 통해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통해서만은 내담자분의 상황이나 고민을 온전하게 알아차리기는 어렵지만 써주신 내용들에서 생각되는 점들에 대해 얘기 나눠보면 좋을 것 같네요.
일단 내담자분께서는 본인이 썸을 타는 과정에서 느끼는 흥미나 ‘좋다는 감정’이 관계가 본격 시작될 무렵이되면 금방 사라지는 점이 고민이신 것 같아요. 관계를 지속하면 나는 관심이 적어져서 상대를 무신경하게 대하게 되고, 하지만 상대에게는 계속 본인을 신경 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고 그게 잘 되지 않으면 서운하고 슬픈 감정을 느끼시는것 같네요. 이런 관계가 반복되면서 과연 내가 “정상적인” 사랑을 할 수 있을지 고민되고, 본인의 로맨틱 지향을 어떻게 정의내려야 할지도 함께 고민이신 걸로 느껴집니다.
설레는 마음과 연애 감정에 대해서
‘설레다’라는게 어떤 것일까 저도 궁금해서 사전에서 찾아보니 “마음이 가라앉지 아니하고 들떠서 두근거리다”라는 뜻이더라구요. 사람마다 연애에서 설렘을 느끼는 정도는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쉽게 잘 설레고 작은 행동이나 말에도 마음이 들 뜰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상대적으로 덤덤하게 연애의 과정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살아온 삶의 배경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다들 다른 내면 세계를 갖고 있기에 꼭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셀레는 마음’ ‘미칠것 같이 좋은 마음’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연애를 통해 기대하는 것이 ‘셀레는 마음’이 전부는 아닐테고요.
우선 드리고 싶은 말씀은 ‘설렘’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너무 고민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친밀한 관계에서 느껴지는 안정감,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마음, 편안함과 믿음 때문에 연애 관계를 유지하기도 하고 실제로 오래된 관계에서는 설렘보다 앞서 말씀드린 감정이 관계를 유지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정상적인 사랑”이란 것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마다 또 관계마다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매체에서 비춰지는 사랑의 모습은 대중들의 욕구에 맞게 지나치게 낭만화되어 묘사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현실의 상황이나 감정보다 드라마틱하고 강렬해야 사람들이 좋아하고 또 찾아서 볼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왜곡이 있을 거에요. 꼭 매체에서 재현되는 사랑과 현실의 내 감정을 비교해서 내 감정이 잘못됐다 판단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솔직한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고 본인의 로맨틱 지향에 대해서 고민하시는 내담자분의 노력은 매우 의미있는 과정이라고 생각되고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 내담자분이 상담글에 적어주신 상대방과 멀어졌을 때 드는 느낌, ‘연락 안되면 기분 나쁘면서도 걱정되고 또 서운하고’ ‘나한테 신경 써줬으면 하는 느낌’ ‘상대방 생각 많이 나고 되게 슬프고 다시 전 처럼 지내고 싶은’ 마음 또 그리운 마음, 슬프고 울고 상처받는 마음 역시 연애 과정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설레고 좋은 감정 뿐 아니라 관계가 생각대로 되지 않았을 때 느끼는 슬프고 서운한 감정도 중요한 감정이니까 연애감정, 좋아하는 마음의 일부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의견을 드려봅니다.
로맨틱 지향
로맨틱 지향에 대해서는 글로 설명해주신 상황만으로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말씀해주신대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로맨틱한 끌림을 느끼지만 막상 친해지고 나면 더이상 끌림을 느끼기 어려운 ‘프레이 로맨틱’, 그리고 로맨틱한 끌림을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끼는 ‘그레이 로맨틱’ 모두 내담자분께서 공감을 느낄만한 부분이 있겠다고 느껴집니다. 아마도 각각의 정체성에 대한 설명들을 읽고 가장 ‘나에게 잘 맞는 것 같다’하는 느낌은 내담자분 본인이 가장 잘 아실거라고 생각돼요! 본인이 가장 편하게 느끼고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정체성에 대해 좀 더 알아가보시면 로맨틱 지향을 정의내리는데 도움이 될 거에요. 또 로맨틱 지향을 정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향은 언제든지 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내담자분의 감정을 계속해서 찬찬히 잘 살펴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연애 관계에 대하여
로맨틱 지향도 궁금하시겠지만 아마도 앞으로 연애 관계가 무엇보다도 가장 고민이 되실것 같아요. 그래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내가 연애관계에서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로맨틱한 끌림을 약하게 느끼면서도 ‘연애’라는 것을 왜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애’관계라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하고 필수적인 관계는 아닙니다. 친구들과의 느슨한 관계를 통해서 더 편안함을 느끼신다면 굳이 상대에게 관심이 잘 가지 않는데도 ‘연애’관계를 만들어가야할 필요는 없을 거에요. 이렇게 생각해봐도 내담자분께서 연애관계를 원하신다면 본인에게 ‘연애’가 왜 필요한지 한번 생각해보면 좋을것 같습니다.
만약에 아주 긴밀하고 친숙한 1:1 관계를 원해서 연애를 하고싶다고 생각이 드신다면, 설레다가 조금 관심이 식고 덤덤해지더라도 긴밀한 관계 유지를 위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관계를 잘 가꾸어 나가는 노력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아니면 꼭 강렬한 감정이 아니더라도 ‘안정감’을 기대하는 것 같다고 깨닫게 된다면, 꼭 설렘이 없더라도 연애관계가 지속되면서 안정감을 느낀다면 ‘설렘이 없고 관심도 줄어서 이 관계가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되기 보다는 ‘이 관계에서 안정감이 있기 때문에 나는 충분히 기대하는 것이 충족됐다. 그렇기때문에 이 관계가 소중하고 만족스럽다’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연애의 초기 단계에서 강렬한 끌림을 느끼기 어렵다고 하셨지만, 어쩌면 연애 초반의 두려움이나 실망들을 지나 조금 더 둘 만의 시간이 쌓이게 되고 깊은 관계가 되어 친밀함이나 결속감이 강해졌을 때 지금과는 또 다른 감정, 다양하고 풍부한 감정들을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나는 “제대로 된” 연애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미리 불안해하시기 보다는 조금 더 다양한 상황에서 ‘나의 감정’들을 살펴봐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해봅니다.
상대가 소홀해졌다고 느끼거나 연락이 잘 안되어서 서운한 마음이 들 때, 나의 감정들을 잘 살펴보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추천드려봅니다. 상대방에게 왜 내가 서운했는지, 어떤 것들이 슬픈지 생각해보고 이것을 그냥 슬픔으로 끝내기 보다는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얘기해보는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요. 처음에는 내 감정을 솔직하게 직면하고 상대에게 얘기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관계에서 실망한 것들, 더 원하는 것들을 얘기하고 적극적으로 관계를 이어나가는 방법도 관계에 새로운 국면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담자분께서 적어주신 몇 가지 상황만을 듣고 여러가지 방법들을 제안해 보았는데요, 그래서 어쩌면 Myagmyag04님에게 꼭 맞지는 않다고 느끼는 점이 생길 수도 있고 또 더 궁금한 점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담글을 읽으시고 더 하고 싶은 애기가 있다면 언제든지 게시판에 글을 남겨주세요.
‘틀린 감정’이란 것은 없고 또 반대로 ‘정상적인 감정’이란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Myagmyag04님께서 관계를 만들어나가면서 스스로의 감정들을 존중하는 모습을 응원하고요!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일이 항상 내 자신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슬픔을 주기도 하지만, Myagmyag04님께서 잘 헤쳐나가고 그 안에서 성장해나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답변이 스스로의 삶에 대해 진지하고 중요한 고민을 해나가고 계시는 Myagmyag04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그럼 이만 상담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궁금하거나 추가로 얘기 나누고 싶은 부분이 생기신다면, 언제든 편안하게 다시 상담소를 찾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