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을 하려고 하는데 언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로 고민을 전해 주셨습니다, 익명님.
먼저 상담이 지연되어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려야겠네요.
담당 요일 상담원이 해당 상담 연계 중 상담을 누락해
이와 같이 상담이 지연되어버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상담을 올려주실 때 닉네임을 '익명'으로 해주셨는데
워낙 동명이인이 많은 닉네임이라 먼저번 상담에서 이어 상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일단 올려주신 내용만으로 상담을 간략히 진행해 보려 합니다.
상담을 올려주신 날로부터 날짜가 많이 지난 것도 그렇고,
화이트데이에서로부터 날짜가 훌쩍 지나 버려서
어떻게 고백은 하셨는지, 아직 고민 중이신지 궁금합니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고백하고 싶은 마음과,
그 마음을 표현하는데 있어서의 어려움,
예상하기 어려운 상대방의 반응에 대한 두려움까지.
여러 맘 가운데서 많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이 문제를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마도 그 친구가 동성애자에 대해 가질 생각,
동성 간의 관계에 대해 그 친구가 가질 수 있는 상상력이겠지요.
상대의 의중을 궁금해 하기도 전에 먼저
그 사람이 내가 레즈비언이어서, 내가 여자여서,
거절 당할 뿐 아니라 그 이상의 모진 혐오를 받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게 되는 건 정말 슬픈 일입니다.
고백 자체가 곧 커밍아웃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조심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몇 번이라도 그 친구와 '이런'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사전에 어떤 정보나 관련 주제들에 대한 의견을 공유해 보지 않고
무작정 고백을 하는 것은 약간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상대 역시 이런 방식의 고백(말하기)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고,
지금까지 서로 맺고 있던 관계 이외의 가능성을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을 수 있으니까요.
상대의 의중을 미리 아는 것 만큼이나,
상대의 반응을 예상할 수 있어야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님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줄 수도 있고,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할 수도 있고,
정중히 마음은 고맙지만 거절할 수도 있겠지요.
또 한 편으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지요.
그럴 때 너무 당황하거나, 상대를 곤란하게 할 수 있는 태도로
서로에게 견디기 힘든 순간을 만드는 건 또 슬픈일이 되겠지요.
님에게는 특히나 소중하고 귀한 순간일텐데.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최고의 상황과 최악의 상황에서
자신을 놔버리지 않고 잘 버텨 내실 수 있도록 여러가지 생각을 미리 해보심
어떨까 싶습니다.
또 상대 친구에게도
지금의 고백을 누구에게 알리거나 이야기 하는 것은
일종의 아웃팅(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체성을 폭로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둘러서라도 살짝쿵 이야기 해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종종 고백받은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다니는 친구도 있기도 하거든요.
물론 내가 좋아서 상대에게 고백하는 마당에 "너 소문내고 그러면 안된다"는 말을
한다는 게 참 민망하고 어려운 일일 수 있지만, 그래도 필요한 일이니,
당부를 해두시면 어떨가 싶기도 하고요.
저는 좋은 고백 방법이 무엇일지,
언제가 좋은 때인지에 대한 주제로는 이야기 하지 못하고
계속 걱정되는 부분들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네요.
아무래도 이런 고민을 먼저 하게 되는 것은 고백과 함께 드러나게 될
님의 정체성과 감정이 혹시라도 상처받게 되진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과 우려 때문인데요. 이런 상황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원망스럽습니다.
좋은 고백 방법과 좋은 때는 서로간의 상황에 따라 너무 다르고
또 구체적인 선호와 취향의 문제가 섞여 있는 것이라,
참 쉽지가 않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님께서 저보다 훨씬 상대에 대해 잘 알고 계실테니
님의 감각을 믿어 보시는 것을 어떨까 싶어요.
그래도 아무래도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의사이겠지요.
언제든 내가 좋아하는 상대이니 만큼,
상대의 의사도 그만큼 존중해 주셔야 겠습니다.
여러가지 방면에서 상대의 마음도 또 나의 마음도 다독여야 해서
더 힘든 과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좋은 소식으로 다시 게시판에 어떤 결과를 남겨주실 수도 있겠지요.
어느 쪽이 됐건 간에 소식을 꼭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자신에 대한 용기가
님의 마음 속에서 열심히 소용돌이 치고 있으니.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건 이 경험이 님에게 또 다른 시작점이 되리라 믿습니다.
지금의 과정에서도 많은 것을 얻고 있는 중일 것이에요.
부디 힘 잃지 마시고 잘 버텨내시기를 응원합니다.
이번 상담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상담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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