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 님께

소현 님, 상담소입니다. 
깜찍한 사진과 함께 상담을 올려주셨네요. 
소현 님 덕분에 상담원도 미소를 머금으며 상담을 시작해요. 
이렇게 상담소 찾아와 주셔서 반갑고, 
고민을 안고 오셨음에도 오히려 
상담원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 주셔서 고마워요. 
상담을 통해 소현 님도 좋은 기운 얻어가시길 바랍니다. 
 
소현 님께서는 현재 중학교 3학년이시라고요.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를 좋아하게 되면서 
‘내가 여자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하는 자각이 생기게 되었고, 
지금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많이 받아들이게 된 단계이군요. 
한 친구를 좋아하면서, 그리고 그 친구와 멀어지면서 참 많이 힘드셨을 거예요. 
게다가 친구와 멀어진 이후에도 동성의 상대에게
계속 이끌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많이 혼란스러우셨을 테고요. 
그런 어려운 시간을 거쳐 이제는 자신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니, 
정말 다행이고 기쁜 일이에요. 
상담원도 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앞으로 님과 같은 정체성의 친구도 많이 사귀고 
또 시간이 흘러 언젠가 교제도 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할게요. 
 
소현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도 맨 처음 정체성을 받아들이던 때가 생각났어요. 
처음으로 제 자신의 레즈비언 정체성을 어렴풋하게 느끼며 
그걸 받아들여야 할지, 맘을 고쳐먹어야 할지, 
아니, 맘을 바꾼다고 과연 그렇게 살아질지 많이 혼란스러웠지요. 
저도 소현 님과 같은 시기를 겪었고 비슷한 고민을 했었답니다.  
소현 님의 어려움을 제가 전적으로 이해할 순 없겠지만, 
소현 님께 얼마나 위로가 필요한지, 따뜻한 동감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더욱 응원을 보내고 싶어요. 
 
하지만 저의 응원과는 별개로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지지를 받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에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알리지 못해 외롭고 괴로운, 많은 분들이 
상담소로 찾아오고 계세요. 
이렇게 게시판에서 상담을 진행하는 상담원조차 사실은 
커밍아웃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하답니다. 
 
소현 님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눈을 뜬 만큼 
TV 속에서, 책 속에서, 학교의 선생님 이야기에서, 그리고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문득문득 이런 점들을 느끼실 거예요. 
어디에도 동성애자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아직도 우리 사회가 많이 닫혀 있다는 것을요. 
지금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다 털어놓을 수 없고 지지받을 수 없어서 
고민 중인 것처럼, 동성애자로서 살고자 한다면 앞으로도 소현 님은 
이런 벽에 계속 부딪히게 될지 몰라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걸 꼭 기억하셨으면 해요. 
소현 님이 이성애자든, 양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님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은 
상대가 이성이든 동성이든을 떠나 
그 자체로 아름답고 축복받아 마땅한 것이에요. 
이런 점들을 꼭꼭 마음속에 갈무리해 두고, 힘들 때 펼쳐 보세요. 
소현 님이 언제든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길 
상담원도 응원하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 부모님께 지지받고 싶은 만큼 
커밍아웃을 준비하는 것도 좋은 일이에요. 
자신의 동성애자 정체성을 오픈하는 것만큼 용기 있고 멋진 일도 없어요. 
상담원은 현재 사회 생활을 하며 피치 못하게 동성애자 정체성을 숨기고 있어요. 
이성애자인 척해야 하는 이런 위장과 가면은 항상 상담원에게 큰 슬픔이고 괴로움이랍니다. 
많은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인 척 위장하면서
자신감과 당당함과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는다고 말해요. 
때문에 동성애자들이 가능하면, 상황이 허락한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려나가는 게 좋아요. 
커밍아웃은 자신의 자긍심과,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위해 모두 좋은 일이죠. 
 
하지만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직도 우리 사회는 많이 닫혀 있어요. 
커밍아웃을 할 때는 주변 상황 등을 잘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답니다. 
만일의 위험에 대해서도 고려하셔야 해요. 
긍정적인 반응에 대해서 고려하는 만큼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가령 친구들에게 말했을 때 
따돌림이나 소문이나 그로 인해 학교 생활에 지장이 생긴다거나 할 수 있겠죠. 
부모님께도 마찬가지예요. 
이전에 드렸던 이야기는 어머니가 심각하지 않게 넘기셨지만, 
님께서 평생 동성애자로 살겠다는 결심을 진지하게 전했을 때 
어머니가 어떻게 반응하실지, 그리고 그런 상황을 님이 잘 견딜 수 있을지 
찬찬히 고려하셔도 늦지 않아요. 
상담원이 걱정되는 건, 어머니께서 너무 힘들어하실 수 있고, 
님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님에게 호되게 대하시진 않을까 하는 거예요. 
커밍아웃은 일생에 걸쳐 계속 해나가야 하는 작업이니 만큼 
너무 서두르지 마시고 어머니께 전할 말씀을 잘 정리해 보세요. 
또 어머니의 반응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요.  
지금이든, 조금 시간이 흐른 뒤든, 혹은 더 먼 훗날이 되든 
커밍아웃을 잘 해나가셨으면 하고 
잘 해나가시리라 믿어요. 
 
소현 님, 님께서 지금은 동성애자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셨지만, 
다시금 그 정체성이 흔들거리고 위태해질 때가 올지도 몰라요. 
동성애자 정체성을 받아들인 뒤에도 
인생에서 거쳐야 할 숱한 과제들이 남아 있거든요. 
지금 소현 님이 커밍아웃에 대해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동성애자로서 만나게 될 과제들은 
누가 기한을 정해 놓은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에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님의 몸과 마음이 허락하는 한에서 
차근차근 고민해 나가셔도 늦지 않아요. 
 
동성애자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때로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내가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 굳이 빠르게 이름 붙이려 하지 않아도 좋아요. 
언젠가는 스스로 이름을 선택할 수 있는 더 강한 힘과 의지가 생길 테고, 
그때엔 정말 그 이름에, 그리고 세상 그 누구도 아닌 소현 님 자신이 
그 이름을 선택했다는 것에 자긍심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상담원이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님께서는 이도 저도 아닌 것보다 
지금 내가 동성애자라서 훨씬 좋다고 적어주셨지만, 
설사 정확한 이름을 붙일 수 없다 해도
소현 님이 소중한 한 사람이라는 사실엔 변함없다는 점을
꼭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님께선 앞으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다양한 일을 겪으실 거예요. 
그런 것들이 다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 주겠지요. 
지금 동성애자 정체성을 잘 받아들이신 소현 님이 아름다운 만큼 
님이 어떤 정체성의 이름을 가지고, 어떤 고민을 겪든, 
그 고민 앞에 당당하게 마주하실 소현 님의 모습도 아름다울 거라고 믿어요. 
 
그럼 이만 상담을 마칠게요. 
궁금한 점이 있거나 고민 있으면 또 상담소 들러 주시고요. 
격려와 응원 보내요, 소현 님.

2011-n6013

 


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