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문자님, 상담소에서 답변을 드려요.
누구에게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또 내가 아끼는 사람에게
나의 솔직한 모습을 알려주고, 인정받고 싶은 때가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올려주신 글을 읽어보니
입문자님께서 과거부터 여성을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며
생각했던 바들을 바탕으로 커밍아웃을 준비하고자 하시는 것 같습니다.
갑작스럽지 않게, 섣부르지 않게
아주 차분하고 신중하게 준비하시려는 것 같네요.
원하시는 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상담소에서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커밍아웃은, "나 레즈비언이야" 하는 한번의 선언뿐 아니라,
그 선언을 시작으로 해서
타인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받고 싶다는 점을 알리고
또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달라는 요구를 하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에게 나에 대해 알리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누구입니다"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과 지속되는 관계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때로는 행동으로 보여주고, 때로는 말로 설명해야 하지요.
만약, 나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바와 타인이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면
그 오해를 풀기 위해 또 많은 대화를 합니다.
커밍아웃은 바로 그 과정과 비슷한 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님의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기대하고 생각하는 님의 모습은
님께서 스스로가 생각하고, 예상하는 님 자신의 모습과
어느정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더해서, 님의 친구, 가족들이 어렴풋이 알고있는 레즈비언의 모습과
님께서 받아들이는 레즈비언의 모습에도 차이가 있겠지요.
물론 대부분의 경우, 그 차이는 차이라기보다 편견이나 오해에 가깝습니다.
동성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쨌거나 이성애와는 전혀 다를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
TV에서 그려지는 왜곡된 모습들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
뭔가 특이하거나 유별난 취향이라고 상상하며
그것을 마치 사실인 양 받아들이는 사람들,
자신이 동성애자에게 열려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편견과 오해를 가진 사람들이 아직까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커밍아웃에는 일상적으로 나를 소개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이러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를 '알아듣게' 설명해야 할지
준비하고 공부하는 과정도 필요하고,
그 때 그 때 재치있게 반응할 수 있는 어느정도의 용기도 필요합니다.
커밍아웃을 한 나를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는,
나의 정체성을 이성애자들의 편견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또, 내 앞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매너들, 예들 들면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동의 없이 말하고 다니지 않기
이성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과도하게 하며 나를 소외시키지 않도록 하기
내 사생활이나 내 파트너에 대해 시시콜콜 묻지 않기(아웃팅이 될 수 있으므로) 등등
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이 점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려면 아마도 오랜시간이 필요할 수 있겠지요.
내게 매우 소중한 사람이라면, 간혹 불쾌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인내가 필요할 수 있고요.
물론, 이런 에너지를 최소화 할 수 있게끔
가장 신뢰가 가는 사람, 즉
내 정체성을 오해 없이 받아들여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내 허락 없이 남에게 함부로 알리지 않을 사람에게 선택적으로
커밍아웃을 하는 것도 좋겠지요.
사람들은 내가 커밍아웃을 하면
대게는 당황스러워하거나 연락을 피하기도하며, 못들은 척 딴소리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 다시 설명을 해야 할 수도, 혹은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서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또, 커밍아웃 당시에는 마치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는 식으로 말하면서도
시시때때로 내가 보이는 행동을 관찰해가며 '네가 정말 레즈비언이야?'
하는 식으로 의문스러워 하기도하며,
"그런데 결혼은 안하니?" 하며 동성애가 마치 일시적인 것이라는 편견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혹은 커밍아웃의 상대가 동성이라면,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고민을 하며 괜히 경계하기도 하고
극단적으로는 (친한 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거북해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들을 미리 예상해보시고 이럴 때 해줄 수 있는 조언들,
소개해 줄 수 있는 책이나 함께 볼 수 있는 영화 등을 준비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담소 자료상자에 있는 자료들이라도 읽고, 또 님
나름대로 이해한 바를 사람들에게 알려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상대의 성별을 떠나 사람이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은
너무 자연스럽고 소중하고 떳떳한, 그리고 너무도 멋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점을 그저 몇마디 말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몇몇 사람들에게 동성애라는 성향은
그들이 살아온 맥락에서, 그들이 배우고 자란 맥락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무조건
나는 레즈비언이며 나는 당신의 친구(가족)이기 때문에
무조건 나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요하며,
그러지 못하면 비이성적이라거나, 말이 안통하는 사람이라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동성애나 레즈비언에 대해 가질 수 밖에 없는 생각,
그리고 자신의 친구나, 자신의 가족이 동성애자일 경우 느껴질 충격을
조금은 공감하고, 이해하는 선에서 대화를 진행해보셨으면 합니다.
사람들이 님의 커밍아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할 때에는
당신들의 편견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그런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을 때 내가 어떤 생각이 드는지,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당신에게 이 얘기를 꺼내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당신이 내게 어떤 존재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건지,
나를 솔직하게 인정한다는 게 나를 얼마나 편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지,
이런 식의 이야기를 주로 해보셔도 좋겠습니다.
커밍아웃을 받아들이는 가족이나 친구들 또한 누군가에게
'내 딸이..', '내 친구가...' 하며
2차, 3차적으로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님뿐 아니라 그들 또한 동성애자의 친구, 동성애자의 부모로서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리고 천천히 긍정해나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겠지요.
입문자님,
님께서 긍정적이고, 떳떳한 마음가짐으로,
그리고 올바른 정보를 가지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님의 마음 뿐 아니라 그들의 마음도 조금이나마 헤아려주려는 노력과 함께
진심을 다해 커밍아웃을 준비하신다면
짧은 시간이나마 답답하고 어려운 시기가 닥치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이해받고 지지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만 드렸지만
가깝게 지내온 친구일수록
당연하게, 혹은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쿨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잊으시면 안될 것은,
주변 사람들이 설사 좋지 않은 말을 하거나
실망스런 표정을 짓는다 해도
그 원인은 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잘 되지 않을 때에는,
님께서 한 발 물러나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줄 수도 있습니다.
표현에 있어서,
'난 레즈비언이야' 라고 직접적으로 할 수도 있지만,
'요즘엔 여자한테도 마음이 좀 가는 것 같아' 하며 에둘러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친구들이 보이는 반응에 따라 '난이도'를 조절해나갈 수 있겠지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철저히 준비하고 모든 반응을 예상하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님께서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시고,
잘 되지 않더라도 님 자신을 탓하지 않도록
항상 스스로 다독이는 시간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혹시라도 더 궁금한 점이나 어려운 점이 생기신다면
그 때 다시 이야기해보면 좋겠습니다.
2011-Y
댓글 1개
입문자님의 코멘트
입문자와 답변 감사합니다.
지금은 누구에게 어디까지 말할 지를 추리고 있어요. 근데 막상 추리려고 하니 "과연 이 사람한테 말해도 될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 한 명 한 명 줄이고 있네요...
아무튼 답변 감사히 참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