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H님께

LSH님, 상담소에서 답변을 드립니다.

길게 남겨 주신 글을 차근차근 읽어 내려가면서
상담원의 마음도 너무나 아팠습니다.
R님과 여자친구 분이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얼마나 괴로운 심정일는지 충분히 예상이 되기 때문이에요.

서로 많이 아끼고 사랑해서
두 분의 관계는 예쁘고 행복하게
이어져나가고 있다고 적어주셨는데요.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관계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두 분 모두에게 엄청난 용기와 힘이 필요하리라 생각이 듭니다.
이제까지 정말 꿋꿋하게 잘 견뎌 오셨다는 생각 역시 하게 되고요.

그런 두 분께 격려의 말씀을 드리면서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하고 싶어요.
두 분 정말 용감하게 지내오셨다고 말이죠.

님, 님이 동성인 친구를 사랑하고
그 친구가 님을 사랑해서
둘 다 관계를 지켜 나가고픈 마음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이상
두 분이 헤어지지 않길 바라요.

님이 애인을 사랑하고
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고
앞으로도 함께 하고자 하는 소망을 갖는 것
그건 전혀 잘못이 아니랍니다.

애초에 여자에게 끌리고
여자를 좋아하는 것 자체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어요.

여성이 여성을 좋아하는 것,
여성이 여성과 사귀는 것,
여성이 여성과 성관계 갖는 것,
여성이 여성과 함께 사는 것,
여성이 여성과 미래를 꿈 꾸는 것 등
이 모든 것들은 잘못된 것도, 이상한 것도, 하면 안 되는 것도 아니에요.

사랑과 교제와 성관계 등은
당연히 여성과 남성간에만 존재할 수 있고
여성과 남성간에만 자연스럽다는 사고방식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팽배해있지만
그러한 사고방식이야말로 부자연스러워요.

사람은 누구나 동성의 상대에게 이끌릴 가능성과
이성의 상대에게 끌릴 가능성을 갖고 있는데
이성애만 옳다는 뿌리깊은 분위기 때문에
동성의 상대에게 끌릴 수 있는 자기 안의 가능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죠.
그러므로 이상한 건 동성애가 아니라
이성애만 존재가능하다는 이성애'주의'에요.
자연스러운 걸 억지로 억압하는 것이니까요.

상담원은 님과 애인 분이 함께
동성애에 대한 좋은 정보들을 찾아 보고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비슷한 이들과 친구가 되고, 하는 과정에서
레즈비언으로서의 자존감과 커플로서의 안정감을
지켜 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가장 가까운 관계의 존재들인 가족들로부터
전혀 지지받지 못하고
그들의 혐오반응과 괴롭힘에 시달리고 계시는 만큼
두 분을 지지해 줄 수 있는 공간과 관계를 마련해 나가게 되면
그게 두 분에게 정말 큰 힘이 될 거에요.

두 분은 서로 상대방 외에 다른 이반 친구들이 있나요?
만일에 그렇다면 두 분을 이해해 주고 격려해 주는 이반 친구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만들어 나가면서 용기를 주고받으셨으면 좋겠고
이제까지 그렇게 이반 친구들과 사귀어 본 경험이 없으시다면
앞으로 차근차근 관계망을 넓혀 나가시길 권하고 싶어요.

취미, 연령, 지역 등 별로
수 많은 레즈비언 친목 모임들도 있답니다.
이런 모임들은 다음www.daum.net의 카페에 많아요.
이반, 레즈비언, 여성이반 등의 키워드로 검색해 보시면
목록들이 뜰 터인데요.

소개글들을 잘 살펴 보시고
두 분한테 잘 맞겠다 싶은데가 있으면
가입해서 활동도 해보고 그러시길 권하고 싶어요.

레즈비언 정체성이나
레즈비언 커플 관계를
평소에 잘 드러내지 못하고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에
고립된 커플들은 점점 더 그런 상황을 힘겨워하기 쉬운데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이반 친구들이 있으면
그런 고립감이나 소외감이 한결 덜 할 수 있답니다.
정신적인 안정감에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나나 나의 애인과 비슷한 고민, 비슷한 갈등,
비슷한 기쁨, 비슷한 아픔들을 느끼는 사람들이
내 근처에 나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을 받을 수 있지요.

* 그리고 가족들과의 관계는 말이지요.
지금 양쪽 집안이 다 너무나 레즈비언인 딸들에게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
그 자체가 너무나 고통스러우시잖아요.

이런 경우 생각해 봐야 할 문제로
1. 부모님에게 나의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
2. 어떻게 지금의 상황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가 있을 것인데요.

부모님 세대는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하고 살아오신 분들이잖아요.

그분들에게 무조건적으로
'동성애는 잘못이 아니야!' 라고 주장하는 것 보다는
일단은 조금 상황을 보아 가며
거짓말로 부모님을 안심시켜도 좋을 것 같아요.

어머니에게
한 때 지나가는 감정이다, 라는 말로 설득했다고 하셨는데요.
어머니를 안심시키려는 님의 마음을 격려해 드리고 싶습니다.

누구보다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안타깝고 슬플 수 있지만,
가족들의 이해를 기대하는 마음이 클수록
가족들이 보이는 적대감에
좌절과 아픔도 커질 수 있으니까요.

서로의 마음을 살피면서 하나씩 풀어 나가는 것,
그리고 지금은 어머니의 마음을 푸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보살피고 다독인다는 마음으로
가족들의 반응 하나하나에 영향받는 정도를
스스로 줄여보시기를 두 분에게 모두 권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런 가족들의 반응과 직면할 용기를
점점 더 키워 가는 과정에서
할 수 있는 만큼씩만 이해를 구하는 대화를
시도해 보시는 거에요.
아주 천천히, 조금씩 말여요.

지금의 상황이 이미 지속돼 왔지만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 동안
갈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님과 애인분
그리고 두 분의 가족들과의 관계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힘든 순간들을 만들지 않을까 예상해 볼 수 있답니다.

이건 정말 슬프고 갑갑한 일이지만
튼튼하게 마음먹고 견뎌나가면서
시간이 흐르고 가족들이 변화하길 소망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까지 해 오신 것처럼
두 분 모두 자기 생활을 성실히 열심히 하면서
일상 속에서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도록 하셨으면 해요.
슬프고 괴롭더라도 자기 생활을 탄탄하게 유지해 나갈 수 있다면
치명적으로 아파지지는 않을 수 있으니까요.
스스로의 마음 건강, 몸 건강을 잘 지킬 수 있는 건 본인 뿐이랍니다.

님, 상담원이 드린 말씀들이
님과 애인 분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맘이 크네요.
상담원은, 두 분이 아무리 많이 힘겹더라도
분명 잘 헤쳐 나가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제까지도 충분히 훌륭히 버텨 오셨는 걸요.
나이를 더 먹으면서, 사회 경험을 더 쌓아나가면서
두 분 다 점점 더 튼튼하고 강한 사람이 되어갈 거에요.
자기들 자신을 아껴주고, 믿어주세요.
두 분이 서로 더 소중히 하시고요.

언제든지 답답해지거나 의논하고 싶은게 있을 때면
다시 상담소를 찾아 주세요.
항상 님 고민을 나눌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상담을 마칠게요.
힘 내셔요!


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