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을 드립니다

님, 반갑습니다.

전에도 글을 남겼다고 하셨는데
어떤 이름으로 상담 받으셨던 것인지도 궁금하네요.
상담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는 말이
무척 인상 깊고, 상담원도 참 기쁩니다.

맞아요, 자기 삶의 열쇠는
바로 자신이 쥐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돼요.
상담을 통해서 함께 고민을 이어나가는 것인지,
상담원이 대답을 내려드릴 수도 없고 말이에요.

님은 최근 사귀고 있는 애인과의 관계에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겨
상담소에 들러 주셨군요.

상대의 어머니에게 관계를 들킨 적이 있는 데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학업의 부담이 커지다 보니,
서로에게 소원해진 부분이 있다고요.

하지만 대화를 통해
"각자의 길을 가자"고 결론을 내렸다고요.
헤어지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의 현실에 충실하자는 의미로군요.

서로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이,
굉장히 성숙한 방식으로 교제를 해나가고 계신 것 같고
매우 돋보이네요.

님께서는
상대와 합의한 미래에 대한 계획들이 괜찮을지
궁금하다고 적어주셨네요.
그리고 다른 레즈비언들은
어떻게 결혼하고 사는지도 궁금하다고요.

우리 사회에는 많은 레즈비언들이 살아가고 있어요.
님의 주변에도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동성에게 이끌림을 갖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동성을 좋아하고 교제하며 살아가는 일이
쉽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편견과 차별에도 꿋꿋할 수 있기 위해
많은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기도 하죠.

레즈비언 커플의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님의 경우와 비슷하게 10대 레즈비언들은
학업에 대한 부담이나 아우팅으로 인해
교제에 문제를 겪을 수도 있고,
이후에는 이성 결혼 압력이나
직업 경제적인 문제들로
교제가 어려워질 수도 있어요.
이러한 점들은
동성간의 교제를 힘들게 하는 부분이죠.

그리고 물론 사랑 자체도
오랫동안 한결같이 지속되기 어려울 수 있죠.
이것은 이성애자들도 마찬가지이죠.

사랑이 영원한 거라는 믿음이
아직 우리 사회가 강한 편이지요.
상담원은 사랑을 지속하고
관계를 안정적으로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은
참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교제 기간이 길수록
그 사랑이 아름답고 보거나
서로를 진짜 사랑하는구나 생각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답니다.

즉 상담원이 이야기하고 싶은 점은
님께서 레즈비언 간의 결혼에 대해 물으셨는데,
실제 교제 관계가 오래 지속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그것을 레즈비언들의 잘못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는 거에요.

물론 레즈비언끼리 레즈비언 바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하고
사실상 결혼 관계와 마찬가지의 삶을 살아가는 경우도 있어요.
상담원의 주변에만 해도 그런 친구가 있고요.

상담원이 님께서 세운 계획들이
옳다, 그르다 말하기 힘들어요.
사람마다 다 삶의 방식과 가치들은 다른 것이고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잣대란 없으니까요.

다만 상담원은
님과 애인분이 서로 사랑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서로 행복한 교제를 맺어가시기를 바라고
응원을 보내 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한편으로 님께서는
앞으로 많은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될 테니,
관계에 여러 변수들이 생길 수도 있고
현재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생각에
여러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어요.

그러한 것들이 다
자신을 더욱 잘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님께서 변화에 열린 사람일 수 있기를 바라고,
교제 관계 안에서 그러한 가치관과 신념들을
상대와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님께서는
애인과 님께서 서로에게 이끌렸던 것이
원래 여자를 좋아했기 때문은 아니라는
내용도 적어주셨네요.
동성인 서로를 좋아하게 되면서
스스로 레즈비언일 수 있겠구나, 생각하셨다고요.

이런 경우가 있냐고 물으셨는데
그럼요, 굉장히 많은 편이랍니다.
레즈비언이라고 해서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타고 태어나거나
아주 어렸을 때부터 깨닫고 확신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동성의 상대에게 이끌리는 감정을
아주 어린 시기에 느낄 수도 있고,
삼-사십대가 되거나
결혼을 한 이후에 경험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경험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알게 되고
레즈비언일 수도 있겠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되는 거겠죠.

사실 동성의 상대를 좋아하는 경험을
처음 겪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감정을 회피하거나 부인하기 쉬워요.
우리 사회에서는 동성애가
나쁘고 비정상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동성애는
이상하고 부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랍니다.
좋아하는 상대가 동성이라는 점에서
이성애와 차이가 날 뿐이죠.

누군가를 좋아하고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그리워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고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신 내용이겠지만,
상담원은 동성을 향해 이끌리는 님 자신을
탓하거나 미워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동성을 향한 이끌림을 부정하지 않고
상대와 교제를 맺고 갈등을 해결하면서
지금의 관계까지 오신 님의 용기에
격려와 지지 보내드리고 싶고요.

님, 이만 상담을 마쳐요.
교제 관계가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상담원은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힘들거나 고민이 있다면
언제든 상담소 찾아주시고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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