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마고님의 ‘아줌마의 포르노를 마치며.’

아줌마의 포르노를 마치며.

‘몸, 아줌마, 포르노’라는 제목으로 묶었지만 그때그때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쓰는 동안 나는 얼마나 성장했을까?

2011년 5월부터 9월까지, 2012년 4월부터 8월까지 두 번의 해피로그 시즌 동안 나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나?
해피로그를 엘상담소의 계간 소식지에 이어갈 것이란 연락을 받고서 무엇을 쓸까 생각했다. 몸, 아줌마, 포르노라는 소주제는 이만 마쳐야겠다. 새로운 주제는 ‘호모포비아적 호모 커플’이 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주제를 시작하기 전에 마무리를 먼저 하고 싶었다.

2011년, 2012년을 거쳐 지금까지도 나는 한 직장을 계속 다니고 있는 월급쟁이다. 무라카미 류는 [열 세살의 헬로워크]라는 책에 이렇게 썼다. ‘월급쟁이는 절대로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재능’이라고. 이 말을 되씹고 곱씹으며 나는 매일 직장에 나간다.

2011년 9월에 용산구에서 영등포구로 이사했다. 이사야 내 집 없는 사람에겐 일상이지만 영등포구로 이사하면서 하얀색 개를 한 마리 입양했다. 집 안에서 키우기엔 꽤 큰 8kg짜리 잡종 개는 아주 튼튼하고 활발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힘 센 개다. 이 개가 밤에 짖지 않고 잘 잘 수 있게 산책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래봤자 일주일에 두어 번이지만 그래도 내 몸을 움직이게 하는 데 이 개가 최고다. 서운하게도 산책을 전혀 안 하던 때나 지금이나 체형의 변화는 없다.

2012년 7월에는 고양이도 한 마리 입양했다. 다 큰 개를 입양했을 때와 달리 태어난 지 두 달쯤 된 새끼 고양이를 받아서 키우니 새끼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보는 것이 무척 짧았지만 감동이었다. 지금은 완전히 다 큰 고양이가 됐다. 고양이를 입양하고서 새끼라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에 강아지가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며 이불에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한동안 고생했다. 지금도 강아지는 새로 산 이불이나 빨아서 새로 깐 이불 등 제 냄새가 배어있지 않은 이불을 싫어하고 가끔 오줌을 싸서 나의 마음을 좌절과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린다. 또 다시 강아지 오줌으로 흠뻑 젖은 이불을 발견했을 때의 좌절과 절망. ‘너 이 새끼, 나가!’라고 소리지를 때의 비참함. 새로 깔 것도 없어서 젖은 이불의 한 귀퉁이에 구겨져서 오줌 냄새를 참으며 잠을 청할 때의 무력감. 이 모든 마음이 자식을 키우는 마음이겠거니, 사람 자식을 키우는 마음의 천만분의 일쯤일까 추측해 본다.

2011년 11월에 난생 처음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이란 걸 받았다. 2012년 5월에는 크리스가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았다. 아픈 몸, 병든 몸, 늙어가는 몸과 나 자신의 한계를 생각했지만… 뭐 곧 다시 무리하는 일상으로 복귀했다. 몸이 지쳐 직장을 못 나가거나 늦게 나가는 일이 종종 생긴다. 전보다 집에서 해먹는 빈도가 훨씬 줄어들었고 전에는 외식을 싫어했지만 이제는 내가 나서서 외식하자고 한다. 겨울 옷과 여름 옷을 바꾸면서 쌓인 겨울 옷 빨래감은 벌써 몇 달째 마루에 정리상자째로 있다. 몇 안 되는 친구들도 일 년에 두세 번 만나는 걸로 족한다. 이게 사는 건가.

올해 초에 ‘오마이스쿨’에서 홍기빈 선생의 강의를 들었다. 경제 강의였는데 주제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좋은 삶이란 가능한 일찍 연금저축에 가입해서 복리이자를 받기 위해 수십 년을 스스로 저당 잡히는 삶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나는 가난을 두려워했고 그래서 아마 지금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겠지만 그러나 이것만이 정답일 리는 없다. 스스로 좋은 삶을 찾아 떠나기 위해 용기를 북돋운다.

크리스와 6년째 사귀고 있다. 해마다 다짐하면서도 아직도 반지 한 짝씩도 나눠 끼지 못한 나름대로 무성의한 커플이다. 나는 귀금속을 몸에 지니면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있다. 좋은 것을 잘 갖고 있지 못하고 툭하면 잃어버리니 이제는 그저 좋은 것은 지니지 말자는 생각이 있다.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잘 해 줘도 좋을텐데. 까짓것 잃어버리면 어때, 아깝지만 하나 더 사면 되지, 라고 마음을 바꿔 먹고 싶다.

명박 다음 근혜라는 참으로 상상하기 어려웠던 선택지가 현실이 됐다. 각박한 이 세상을 어찌 살아야 할까? 라는 고민이 고상하게 들릴 정도로 상상초월의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고 있다. 대통령 수행원이 성추행을 하고 조직적으로 줄행랑을 친다거나, 대량해고로 연달아 세상을 떠나는 동료들의 넋을 위로하고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만든 빈소를 기습철거하고 화단을 만든다거나. 이 놈의 사람 목숨 파리 목숨 취급하는 국격이라니. 개망신의 끝장을 보여주는 국격이라니.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우리들 자신이 서서히 이런 ‘비정상’에 적응하고 한 눈 감고 사는데 익숙해지고 있다는 사실.

멋모르고 임보라 목사님을 좇아서 섬돌향린교회에 이름을 올렸는데, 아 이 교회는 사회선교에 사명을 둔 교회다. 막상 일원이 되고 보니 구성원들의 헌신노력이 정말 상상 이상이다. 나는 아직 주위를 맴돌며 두어 달에 한 번씩 얼굴을 내미는 정도다.

몸, 아줌마, 포르노를 마치려고 합니다. 읽어주신 분들, 공감해 주신 분들, 뜬금없다 느끼셨을지 모르는 분들, 등등 모두 고맙습니다. 일정한 주제를 의식하면서 일정한 지면에 글을 쓴다는 게 저에게는 각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엘상담소에도 고마운 말씀을 전합니다. 다시 뵙기를!

2013. 07. 24. 마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