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수립안에 대한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입장과 제안차별과 불평등해소의 가족정책 지향을 명확히 하고 생활동반자법제정을 추진하라

[논평]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수립안에 대한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입장과 제안차별과 불평등해소의 가족정책 지향을 명확히 하고 생활동반자법제정을 추진하라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공청회가 1월 26일에 진행이 되었다. 이번 계획안에서는 가족을 ‘정상적인 가족’ 대 ‘취약가족’으로 구분해 온 오랜 가족정책 패러다임의 한계를 인정하고 가족형태에 기반한 차별해소와 법률혼·혈연관계를 넘는 가족들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이번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안은 크게 4가지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 가족 구성 다양성 보장을 위한 관련 제도 개선 2) 모든 가족의 안정적 생활 여건 보장 3) 가족 다양성에 대응하는 사회적 돌봄 체계 강화, 4) 함께 일하고 돌보는 사회환경 개선 등이다. 이전 계획에서 제시한 정책들을 계승하는 정책들도 다수 있지만 기존의 가족제도로 인해서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관계들을 포함하고,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 가족 내 발생하는 학대와 폭력 등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고자 하는 정책은 이전과 구별된다. 예를 들어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민법 개정 검토, 평등법(차별금지법) 논의 지원 등은 새롭게 제시되었다. 또한 결혼제도 밖의 다양한 가족구성을 보장하고 친밀성과 돌봄기반의 대안적 관계(비혼, 노년동거 등)에서 생활, 재산 등 권리보호방안 마련을 제시했고 출생통보제 도입, 자녀의 성 결정 방식 개선, 가정폭력처벌법 적용 대상 확대 등이다. 또한 주거지원 확대, 부양의무자기준 단계적 폐지, 아동 수당 확대 등도 제시하여 가족 유형이나 관계로 인해 오히려 사회적 지원에서 배제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도 제시되었다.


위의 제 4차 개정안의 관점의 변화는 제 3차 건강가정기본계획안에 대한 비판 속에서 등장한다. 제 3차 건강가정기본계획안이 1) 법률혼·혈연중심의 가족개념을 바꾸고자 하는 제도적인 노력의 미흡으로 인해서 정책 대상을 한정하고 사회적 인식 변화를 이끌지 못했으며 2) 보편적인 가족정책이 아니라 한부모, 조손가족, 청소년한부모, 새터민 가족 등을 위한 가족유형별로 지원을 함으로써 사각지대를 만들고, 오히려 낙인을 강화해왔다는 것이 지적된 한계이다.
위의 3차 건강가정기본법에 대한 문제는 가족구성권연구소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비판해 왔고, 가족에 대한 보편적인 지원이 아니라 선별적인, 잔여적인 구도로서의 ‘맞춤형’ 지원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해 왔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나아가 보다 더 분명하게, 실질적으로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을 금지.예방하고 모든 가족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 방향에 대해서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건강가정기본법의 폐지와 새로운 가족정책 패러다임을 담은 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 15년전 제정될때부터 ‘건강하지 않은 가정’과 ‘건강한 가정’을 구분하고 정부가 나서서 시민의 삶을 ‘정상가족’과 ‘위기가족’으로 구분해온 법안을 이제라도 개정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여기에 만족할 수 없다. 특히 이 법의 목적이자 기본이념인 제2조 “가정은 개인의 기본적인 요구를 충족시키고 사회통합을 위하여 기능할 수 있도록 유지.발전되어야 한다”와 국민의 의무를 규정한 제4조 2 “모든 국민은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복지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항은 이 법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개인의 삶을 동원하고 있다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게 한다. 건강가정기본법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출산을 중심으로 한 사회재생산 기능을 국민의 중요한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며, 결국 건강가정기본법의 실제적인 개정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저출산 극복 중심의 인구정책과 가족정책 패러다임을 폐기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저출산 극복 중심의 가족정책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정부가 인정할 때, 출생을 위한 도구로서의 시민의 삶이 아니라 실제 서로를 돌보고, 다양한 친밀적 유대를 만들어가는 ‘다양한 가족들’의 삶에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4년 후에는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 ‘건강가정기본계획’이 아니라 새로운 이름의 기본계획이 나와야 한다.


둘째, 생활동반자등록법 제정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건강가정기본법이 시행된 이후 15년 동안 한국사회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만으로는 실제적인 다양한 관계성을 포착하지 못할만큼 혼자살기와 함께살기가 다양해졌고, 이미 법에서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과 무관하게 가족을 실천하는 개인들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제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이 여전히 법률혼·혈연관계를 넘어서 가족을 실천하는 사례들을 발굴하겠다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한계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다양한 가족’안의 개인들은 가족으로서의 인정과 자격의 부재로 인해서 삶의 불안정성이 강화될 수 밖에 없다.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가족에 대한 인식과 실천을 당연한 권리로 인정하고 그 관계를 지지하기 위한 중요한 정책으로서 생활동반자등록법 제정이 필요하다. 혼인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수많은 시민들, 법적 혼인을 할 수 없는 사람들, 혼인을 했다가 해소하고 다시 혼자서, 혹은 파트너와 동거하고 있는 시민들의 존재를 어떻게 존중하는가가 새로운 가족정책에서 핵심적인 변화를 제시한다. 바꾸어 말하면 이들에 대한 존중과 권리보장 없이 새로운 가족정책은 불가능하다. 이제 이 논의를 구체적으로, 본격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셋째, 차별과 불평등 해소를 위한 지향과 관점이 가족정책에 제시되어야 한다. 우리는 정상가족의 독점적 지위를 그대로 둔채 진행되어온 ‘맞춤형’지원정책이 한부모가족이나 조손가족, 청소년한부모가족, 다문화가족들에 대한 사회적인 낙인을 강화할 수 있다는 비판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유형별로 가족을 지원하는 정책의 한계는 명백하다. 한 인간은 생애과정에서 한부모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반자관계를 동시에 가질 수 있으며, 이성애 결혼 이후에 이혼을 할 수도 있고, 1인 가구로 살다가 인생의 어느시점에 동거관계나 공동체 관계를 맺을 수도 있는 유동적인 생애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상가족’ ‘위기가족’이 고정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인생에서 ‘위기’를 경험할 수 있고, 그러한 위기를 해결하는 보편적인 관점이 가족정책의 토대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접근이 가능하려면 시민들이 차별과 불평등으로 인해서 겪는 위기가 가족형태로부터 비롯되는 것만이 아니라 경제위기, 성차별, 불안정노동의 심화, 돌봄 노동에 대한 불인정 문제 등과 연결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삶의 안전망이 필요한 대상으로 한부모가족이 많이 언급되고 있지만, 실제 한부모가족여성의 빈곤율이 왜 36%가 되는지, 그리고 국가는 이토록 심각한 빈곤을 왜 지금까지 해소하지 못했는지, 왜 한부모가족지원법이 존재해 왔지만 저소득층의 삶을 공고히 해 왔는지, 그리고 왜 많은 한부모지원예산이 실제적인 주거나 삶의 자립보다는 한부모 시설 유지와 관리에 사용되어져 왔는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나 정책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족정책은 여타의 사회정책과 교차적으로 만들어지고 실행되어야 한다.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안에서 모든 가족의 생활보장이라는 관점이 들어왔다는 것은 가장 고무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결코 가족정책으로만 실현될 수 없으며, 사회적인 불평등을 가족정책안에서만 해결하고자 할때 가족정책은 고립 될 수 밖에 없다. 노동권, 주거권을 포함한 사회정책과의 교차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재생산권이나 탈시설정책과의 유기적인 정책을 만들고 실행할 때, 시민으로서 경험하는 불평등 해소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다.가족구성권연구소 또한 위에서 제안한 정책 패러다임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해나갈 계획이다. 모든 개인을 가족안으로 밀어넣거나, 개인의 권리를 가족을 통해서만 전달받도록 하는 차별적인 방식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는 가족을 넘어서도 인간다운 생존과 삶이 가능할 때, 가족 관계에서도 친밀한 결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역할은 가족유지가 아니라 친밀한 결속을 가로막는 사회경제적인 제약을 제거하는 것이다. 인간다운 삶의 유대와 다양한 친밀성과 돌봄의 관계망이 인권과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 가치 속에서 만들어지길 바란다.


2021년 1월 29일
가족구성권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