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손잡으면 징계하는 학교, 벼랑 끝에 내몰리는 청소년 동성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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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2006년 2월 20일
_ 현이유빈

손잡고 다니면 벌점 1점, 서로 안아주면 벌점 3점, 커트 머리하면 벌점 5점, 복도에 모여서 이야기 나누면 교무실 호출, 화장실 같이 가도 교무실 호출, 편지 주고받으면 압수…

도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요? 현재 한국의 중․고등학교 내에서 실시되고 있는 ‘학생지도’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친구들과 손을 잡는 것이, 친구들을 안아주는 것이, 친구들과 복도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친구나 선후배와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대관절 무슨 잘못이기에 벌점을 주고 교무실로 호출하여 훈계를 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지도 내용들은 소위 말하는 학교 내 ‘이반 검열’의 일부입니다. 이반 검열은 또 무슨 말이냐고요? 이반(異般)은 동성애자를 의미하는 단어로,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동성애자라는 말보다는 이반이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이반 검열이라 함은, 학교에서 청소년 동성애자를 ‘색출’하고 그들을 ‘교화’하기 위해 실시하는 다양하고 희한한 규율 및 규제를 의미하지요. 위에 든 사례는 정말로 그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반을 색출하기 위해 어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무기명 설문지를 돌려서 ‘이반일 것 같은’ 친구의 이름을 적어 내게 합니다. 그 설문지를 바탕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그 리스트 안에 들어 있는 학생들을 불러다 누구와 친한지 그 친한 친구들과 어디를 잘 다니는지 등등의 취조를 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그 학생들의 생활 전반에 걸쳐 감시에 들어가지요. 감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에서 알아서 판단하여 학생들을 강제로 전학을 시키는가 하면 체벌을 가하고 정학․퇴학 등의 엄청난 징계 처분을 내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검열을 실시하는 이유요? 학교와 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정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하는 건전한 이성 교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와 여자가 혹은 남자와 남자가 서로 사랑한다고 하고 서로를 애틋하게 아끼며 ‘동성연애’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아직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잘못된 길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므로 학교에서 반드시 바른 길로 지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회가 가진 동성애와 동성애자에 대한 엄청난 편견과 혐오가 청소년들을 미성숙하다고 여기고 무조건 어른들이 지도해 주어야 한다는 권위적 사고와 맞물려 학교 제도 안에 고스란히 투영된 것이지요.
하지만 학교가 진짜로 해야 할 일은 이런 식으로 학생들의 인권을 탄압하는 검열이 아닙니다. 청소년기, 자신의 정체성-성정체성 역시 포함 되겠지요-을 확립해 나가며 이것저것 고민이 많을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동성애는 비정상적인 것이고 더러운 것이라는 편견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올바른 정보를 주고 스스로 판단하고 자기 자신을 알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지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선생님들도 반드시 동성애 바로 알기와 같은 인권 교육을 반드시 받아야 할 것이고요.
청소년 동성애자들도 이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기에 스스로가 동성애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때 자기 자신 안에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동성애 혐오로 인해 엄청난 고통에 시달립니다. 게다가 사회*문화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는 온통 여자와 남자를 이야기하는 이성애 중심적인 것들뿐이니, 자신이 잘못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살까지 생각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많은 청소년 동성애자들이 괴로움에 못 이겨 세상을 버리기도 하고요. 이러할진대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학교에서 각양각색의 이반검열을 자행하고 있는 이 현실은, 그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일까요. 제대로 고민해 볼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동성애는 교화해야 할 비정상적 행태가 아닙니다. 다양한 성정체성의 한 가지이지요. 그러므로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바른’ 길로 지도해 주어야 할 잘못된 학생들이 아님은 당연한 것입니다.
언제쯤이나 되어야 학교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 견고한 편견의 벽 속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그러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청소년 동성애자들이 벼랑 아래로 떠밀려야만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