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6-01-15

작년 2월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영화를 봤다. 개봉관에서는 다 내려온 다음이었고, 산악부 모임을 하기로 한 밥집 근처 대학에서 상영을 하고 있었다. 5시쯤 혼자 가서 봤다. 그 날이 상영 마지막 날이었다.

원작인 단편 소설은 한참 후에 읽었다. 소설은 짧았다. 해리 포터 같은 장편 소설을 짧은 영화로 만드는 것보다 단편 소설을 장편 영화로 만드는 게 훨씬 더 나은 것 같다. 일본 사람들은 단편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는 재주가 있나 보다. [철도원]도 아주 좋은 영화였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랑은 지나가는 것이라고. 인생처럼. 굳은 마침표. 변할 수 없는 결론. 인생무상(人生無常). 지나감, 유한함, 변함. 어제와 오늘이 같을 수 없는 삶을 살면서 어제와 오늘이 같기를 바라는 사랑을 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지도 모르겠다. 조제는 경쾌하게 뛰어내린다. 다리를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조리대에서 바닥으로 경쾌하게 몸을 날린다. 관절의 유연함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다. 바라지도 않는다. 아니, 바랬다. 하지만 영원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사랑하는 남자는 조제가 조리대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리지 않아도 되게끔 해주었다. 하지만 그 남자가 떠나간 후에 조제는 다시 뛰어내린다. 편안하게 경쾌하게. 사랑은 영원하지 않으니까. 사랑보다는 일상이 영원하다.

인생은 지나간다. 사랑처럼. 용기를 낼 일이다.

해가 바뀌어 서른 넷이 되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본 지도 일 년이 다 되어간다. 메롱도 그 영화를 보았다. 우리는 같은 날, 같은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았다. 시간은 달랐다. 나는 혼자 봤고 메롱은 당시에 데이트를 하던 여자와 같이 봤다. 재밌는 일이다. 어쨌든 우리 둘 다 그 영화를 좋아한다. 메롱이 그 영화를 나와 같은 이유로 좋아하는 지는 알 수 없다. 말하지 않아도 묘하게 심금을 울리는 것에 같이 감동할 때가 있긴 하다. 둘 다 아주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있다.

주중에 시간이 맞으면 만나서 저녁을 먹고 헤어진다. 주말 하루는 같이 보낸다. 몇 달에 한 번씩 짧은 여행을 간다. 장을 보러 가서 가끔 실랑이를 한다. 먹는 것은 내가 사는 편인데 조그만 살림살이라도 사게 되면, 그것도 메롱이 새로 사자고 해서 사게 되면 꼭 자기가 내려고 한다. 밖에서 사먹는 비용은 거의 메롱이 내고 나는 싼 것만 사준다. 입성이 시원치 않다 싶으면 옷도 잘 사주고 해서, 살림살이에 관한 것이나 장을 볼 때는 내가 내려고 하는데 그럴 때도 꼭 뭐뭐는 자기가 사겠다고 한다. 고집을 부리면 꺾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결국 ‘그래, 니가 내십쇼’ 이렇게 된다.

같이 사는 건 아니지만 살림에 보태려고 하거나 살림에 참여하려고 하는 마음을 알 것 같다. 하루하루, 이게 삶이고 사랑이라고 믿는다. 둘 다 모두 지나갈 것이지만, 후회 없도록 오늘, 오늘을 살자. 아쉽고 안타깝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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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