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허즈번드

아침에 눈을 비비고 나갔더니 노쇠한 바퀴 한 마리가 느릿느릿
기어다니고 있다.
도마 위를... 쩝!
만날 발길에 채이던 파리채도 하필 이런 때는
한오백년을 찾아 헤매야 나온다.
손바닥만한 방구석과 부엌을 몇 번이나 뒤집어 엎고서
겨우 파리채를 들고 갔더니
바퀴는 오죽 노쇠했는지 아직도 싱크대 위에 있다.
다행히 도마에서는 내려왔다.
때려 잡았다.
화장지로 둘둘 말아서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작년에 사둔 바퀴약을 꺼냈다.
튜브형.
부착형은 한두달 지나면 거기다 바퀴가 알을 낳고 어쩌고 한다해서
튜브형을 샀더랬다.
그러고는 귀찮아서 해를 넘겨 묵혔다.
겨울에는 바퀴가 별로 나오지 않았는데
날씨가 다시 더워지고 습해지니
심심치 않게 바퀴가 출몰한다.
요놈의 바퀴는 꼭 내가 혼자 있을 때만 나온다.
어떻게 알고!

작년에는 고양이와 전화하고 있을 때 자주 기어나와서
전화하다 말고 소리를 꽥꽥 지르고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했다.
전화통을 오죽 붙들고 있었어야지.

고양이는 우리집에 오면
국을 끓이고 반찬을 해서 나를 먹여준다.
너무 구겨진 옷을 쌓아놓으면 다림질도 해준다.
구겨진 채로 입고 다니면 대충 펴지지만
고양이 말씀하시길 너무 구겨진 옷은 입지 말라고...쩝.
자기는 엄마가 다려주니깐 하는 소리지.
어쨌든 그래서 입지 못하고 쌓아놓은 옷을
하루는 다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길,
내가 하우스와이프의 일을 하니
너는 하우스허스번드의 일을 하라,
곧 벌레를 잡으라 --;;;

고양이는 벌레라면 질색을 한다.
나는 거미, 귀뚜라미는 그냥 둔다.
바퀴는 병을 옮긴다고 하니까 잡는다.
물론 보기에도 기분이 좋은 건 아니다.
개미가 줄줄이 기어다니면 집 어디선가 음식 부스러기가
썩어가고 있다는 거니까 그것도 가능하면 치운다.
개미한테는 종종 물리기도 한다.
모기에는 전자 모기향을 쓴다.
작년에는 효과가 좋았는데 올해는 효과가 없다.
벌써 내성이 생겼나.

그래서 여튼 집에 벌레가 나오면 잡는 건 내 일이다.
나는 소리를 꽥꽥 지르면서 잡는다.
귀뚜라미 정도는 그냥 두지만
그것도 고양이가 보게 되면
어떻게든 빗자루와 쓰레받이로 잡아서는
밖에다 던져 준다.
신기한 일이다. 전에는 한 번도
귀뚜라미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어쨌든 고양이가 보고 있으니
그리고 귀뚜라미를 때려잡는 일은 어쩐지
바퀴를 때려잡는 일과는 전혀 다르게 마음이 아프니
잘 잡아서 밖으로 보내주는 수밖에 없다.
없던 재주도 생긴다.
그래도 할 수 없다.
고양이한테 얻어 먹으려면.

바퀴약을 바른다.
냉장고 뒤, 싱크대 아래, 그릇장 뒤, 배수구 주변, 가스렌지 뒤...
종이에 짜서 여기저기 구석진 곳에 잘 숨겨 놓는다.
다음에 고양이가 오면 바퀴약을 놨다고 말해줘야지.
괜히 치운다고 힘들게 놓은 바퀴약에 손을 대면 곤란하다.
인체유해하다고 써 있는데
놓다가 손에 좀 닿았다고 죽진 않겠지? @.@;;;

일반
빠알간 뽀 1

댓글 1개

L & Kira님의 코멘트

L & Kira
귀뚜라미 얘기가 왜이렇게 와닿는 걸까요? ㅋㅋ 재미있네요... 그리고 바퀴약은 먹지 않는 이상 인체에 무해한 것으로 알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