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양이와 나, 내 아버지와 나 / 가족 그리고 가족

교환 일기가 그녀에게 있다.
일기장이 없는 날, 물론 내 일기장은 따로 있지만, 뽀의 일기를 쓴다.
(라고 말하니 찔린다.
일기장이 있건 없건 나는 요즘 뽀의 일기를 상당히 게으르게 쓰고 있다.
좀 더 자주 쓰고 싶지만… 으음… 좀 더 두고 보자… )

어제 그녀는, 어제 나의 중년 고양이는 “가족을 매일 보지 못하니 이상하다.”는 말을 했다.

매일 보고 싶다는 말은 이미 여러 번 했는데,
“가족인데 매일 못 보니 이상하다.”는 말은 묘하게 여운이 남는다.

나는 내 고양이를 매일 못 봐서 이상하다는 느낌은 아직 없다.
가끔, 생각하기는 한다.
매일 저녁, 집에 돌아가서 볼 수 있다면,
그럴 때 내가 떠올리는 집은 지금 내가 사는 집이 아니다.
물론 지금 내 고양이가 사는 그런 집도 아니다.
그럴 때 내가 떠올리는 집은 그닥 구체적이지 않은
몽롱한 형태의 집이다.
몽롱한 형태의 집이긴 하나, 매일 저녁,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내 고양이가 반겨 맞아준다면.
또는 내 고양이가 문을 밀고 들어올 때
내가 집 안에 있다면.
좀 더 편하고 안정된 느낌이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한다.

지금 떠올랐는데, 몇 년 전에 이미숙과 류승범이 주연한 드라마가 있었다.
거기서 이미숙은 미혼 엄마로 꽤 큰 딸이 있으면서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고,
류승범은 훨씬 젊은 미혼 남자인데 (직업은 생각 안 나고)
이미숙을 사랑하게 된다.
이미숙이 류승범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가 납득이 안 갔던 기억이 난다.
지금 다시 보면 새로울지도.

여하튼 이미숙이 암에 걸려 살 날이 많이 남지 않은 상태에서
두 사람은 시골에 내려가 허름한 집에서 살림을 시작한다.
그 집은 정말 허름했지만 마당이 있고 주변이 아름다웠던 것 같고
작았지만 겨울이어서 난로도 때고 따듯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 집에 살라고 하면 싫겠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런 집이 생각난다.
주변이 넓고 탁 트인 곳에 있는 대충 허름한 시골집 ㅎㅎ

얼마 전에는 [안달루시아의 낙천주의자]라는 책을 읽었다.
화분의 화초란 화초는 다 죽이는 주제에
웬 시골집에 대한 로망이 있는지.

1994년에 백두대간 중에서 원주 치악산부터 설악산 구간을 걸었다.
무진장 중 하나인 장수의 골짜기에서 버려진 농가를 지나쳤다.
한 살 많은 언니가 아기 때 살던 바로 그 집이라고 했던가,
아니면 아기 때 살던 집이 그 근처라고 했던가,
장수가 고향이라고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웬 옛 생각이 이렇게 많은가.

세계 경기는 왜 이렇게 하강하며,
대한민국 주식시장은 쉽게도 반토막이 나며,
알코올 중독 아버지는 하도 앓아 누우셔서 밥도 못 드시기에
없는 돈이라도 음식 값에라도 보태라고 보내드렸더니
그 돈 받았단 말에 벌떡 일어났다 한다.
내가 벌써 딸한테 돈을 받을 수는 없다나.
그 말 듣는 날까지 알코올 중독 치료소에 들어가는 사람들 얘기를 읽고
부러워하고 있었다는데. 나도 이런 여유가 좀 있었으면 하고.
그런 생각을 했으리라 상상도 못했는데.
어지간히도 아프셨던 게지.
이제 또 오뚝이처럼 일어나서 나 혼자 극복하겠다,
AA고 상담이고 다 필요 없다 하고 계시니
나는 과연 잘 한 것인가, 못한 것인가?

마음이 심란+울적하다.

아버지 연세 예순 일곱이다.
언제 환갑이 왔나 했는데 벌써 예순 일곱이라니.
곧 해가 넘어갈 것이고
아직도 딸한테 돈을 받을 수 없어서 (아니, 내가 생활비를 드린 것도 아니건만)
앓던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는 오뚝이 같은 아버지를.

머리가 흐려지기 전에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리고 싶은데
지금은 내가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러고 버티고 있다.
어지간히도 독한 쩝…

삼개년 계획이라도 세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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