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고도 아프게

2005-12-31

“여보!”
“네~!”

아는 커플의 집들이에 갔다. 여러 사람을 불러서 대접을 하는 것이 즐거워 보인다. 음식이 조금 떨어질라 치면 나가서 더 가져오고 새로 내오고 하느라고 바쁘다. 좀 도와주려고 해도 손님 취급을 하면서 꼼짝 못하게 하고 둘이서만 부엌에서 알콩달콩 왔다갔다 한다. 한 사람이 “여보!”하고 부르면 다른 사람은 “네~!”하고 곧 달려갈 듯 대답한다. 실은 돌아서면 바로 마주칠 것 같은 부엌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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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과 손현주가 나온 드라마 [장미빛 인생]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최진실이 억척스럽게 살림과 육아에 파묻혀 사는 동안 남편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났다. 서로 죽고 못사는 사이가 되었지만 우유부단한 남편 손현주는 부인에게 이혼하자는 말을 못한다. 바람난 남녀가 붙잡고 울고불고 하는 것을 하필이면 최진실이 딱 봐버렸다. “여보, 사랑해.” “나두 사랑해.”

최진실보다 내가 먼저 흠칫 놀랐다. ‘여보’라는 말에 흠칫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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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한 가지 더 생각난다. 전에 박지윤이라는 가수가 부른 ‘할 줄 알어?’라는 도발적인 노래 가사에 이런 게 있었다. ‘나 같은 여자를 여보하게 만든 적 있어’
‘여보’라는 단어에 이런 무게, 이런 색깔, 이런 촉감, 이런 느낌이 있었구나. 누가 작사를 했는지 정말 예민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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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롱과 함께 장을 보면 메롱은 늘 더 무거운 것을 들고 집에 올라간다. 메롱이 나보다 힘이 세서 그런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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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 없는 드라마를 사는 것은 어렵다. 힘에 겹다. 때로는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각본대로 사는 것이 우리 관계에 많은 힘을 실어준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이성애자가 아니다. 우리는 각성한 또는 각성하고자 하는 레즈비언들이다. 그래서 이성애자의 혼인 각본을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뭔가 다르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대안 가족이란 대안이 될만한 각본을 만들어야만 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강박관념에, 검열에, 시시각각 시달린다.

각본 없는 드라마를 사는 것은 너무 힘에 겹다.

메롱이 무거운 것을 들겠다고 고집한다고 해서, 우리가 서로를 ‘여보’라고 부른다고 해서, 메롱이 나에게 ‘여보’라고 불렀을 때 내가 ‘네~’한다고 해서(사실 이런 장면은 아직까진 상상하기 어렵다. ㅋㅋ) 우리 중 한 명은 남자가 되고 한 명은 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꼭 그런 기대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모종의 약속, 모종의 질서, 모종의 관계, 몹시 단단하게 결속한 관계, 그런 관계이다.

이미 배워서 몸에 익힌 각본을 좀 활용한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서로 배우자로서 맺는 모든 관계에 뭔가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버려야 할 것 같다.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서로에게 배우자이길 바라고, 남은 평생을 함께 할 수 있기를 강렬하게 바라고 있는데. 뭔가 늘 다른 점을 찾지 말자. 남의 대답이 되려고 하지 말자. 나 자신의 삶의 현장, 우리들 자신의 삶의 현장에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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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