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게 불편하더라도 불편하다고 말하자

2006-8-9(수)
저녁에 나이트댄스를 배우러 다닌다. 일주일에 한 번. 거울 앞에서 춤을 추다 보면 저게 누구인가 싶다. 참, 언제부터 저렇게 뚱뚱해진 거지? 원래 항상 뚱뚱하긴 했지만. 나이가 드니 살 붙는 곳도 달라지고 어릴 때 뚱뚱하던 것과는 다르다. 배, 팔뚝, 엉덩이, 아줌마 몸매가 되는 거지, 한 마디로.

댄스가 끝나고 같이 다니는 친구와 걸어간다. 대략 늦은 밤, 서울 명동에서 청계천 변까지. 나이는 동갑이지만 어쩌다가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친구이다. 나이가 동갑이면 그냥 친구먹을 만도 하건만 그게 잘 안 되는 친구다. 나에겐 위험한 친구 ㅎㅎ 나는 동생 모드로 나오는 인간들에게는 한 없이 약해지기 때문에 이런 친구는 항상 위험하다.

손가락을 깍지 껴 손을 잡는 너는 누구?

이 친구는 내 손을 잡을 때 손가락을 깍지 껴서 잡는다. 내 생전에 섹스 안 하고 손가락 깍지 껴 잡은 사람은 이 ‘손깍지’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그 전에도 같이 있으면 유난히 몸을 여기저기 부딪치게 되는 친구였다. 나도 부주의하지만 너도 오죽하다. 손깍지를 보고 있으면 약간 극단적인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내 마음에는 안 그래도 연민이 있었다. 극단적인 나 자신이란 요령 없고 어리석고 남에게 짐이 되는 나 자신이다. 순진한 인간들, 착한 인간들을 싫어하는 이유와 같다. 그런 인간들은 악의가 없다는 이유로 무슨 짓이든 해도 되는 줄 안다. 그리고 악의가 없다고 생각하는 단순한 어리석음, 그것도 그다지 믿을 것은 못 된다. 요령 없는 인간의 피해의식이 악의가 되는 건 순식간이다.

손깍지는 남자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약식이긴 하지만 선을 보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랫동안 기대했는데 약속은 너무 급하게 잡혔고 손깍지는 출근했던 복장 그대로 만나러 가게 되었다. 저 요령부득. 어쨌든 주말로 다시 잡자고 할 것이지, 자리가 마련됐다고 그날로 나간다고 하냐… 그 모습에서 다시 나의 모습을 본다. 심장이 없는 아이의 모습을 본다. 주저하고 두려워하면서 약속 장소에 나갈 시간을 늦추려고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지하철 한 번 타면 곧장 갈 곳을 손깍지는 나와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같이 가는 방법으로 하려고 이리저리 돌아가고 있었다. 나도 기본적으로 요령부득이기 때문에 첨에는 교통편이 빨리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더운 명동 거리에서 손깍지가 내 손을 잡는다. 처음이다. 손가락을 깍지껴서 잡는다. 너무 자연스럽게. 나는 속으로 ‘허거~’하지만 내치지는 못한다. 손깍지의 두려움과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 오기 때문에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도 싫으면 좀 싫다고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자신의 느낌을 무시하고 손깍지의 두려움과 떨림을 느껴버린다. 그리고 간절함도. 명동역이다. 2호선을 타면 약속장소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다는 게 그제서야 떠오른다. 왜 버스타고 돌아가? 지하철 한 번이면 금방 갈 걸? 등을 떠밀어 보낸다. 격려한다. ‘니가 간절히 바라는 일이니까 잘 되길 빌게.’

손깍지는 게이다에 딱 걸리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스타일에다 그 순진한 행동거지, 자신의 책임의 한계와 남의 책임의 한계를 스리슬쩍 섞어버리는 ‘언니’ 류의 대사를 듣고 있자면 정말 그런 얘기를 진지하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한 번 한 적 있다. 다른 누군가가 게이다에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를 손깍지 앞에서 얘기한 적이 있다. 사실은 그 얘기도 손깍지 앞에서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요령부득의 인간인지라, 전화로 얘기하던 사람에게 그 순간 임기응변을 못하고 얘기를 해버렸다. 손깍지가 묻기에 ‘그 사람이 혹시 동성애자가 아닐까 얘기했어.’했더니 손깍지 왈, ‘그 언니는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여도 사실은 아닐 것 같아요.’ 한다. 음… 나는 그 얘기를 손깍지가 자신에 대해서 내린 결론이라고 받아들였다. 결론이든 희망사항이든 뭐가 됐든.

또 얘기한 적 있다. 손깍지가 실수인 듯 부주의한 듯 자꾸만 나를 집적거려서 짜증나고 귀찮을 때 물었다. 유학할 때 누가 여자가 꼬신 적 없었냐고. 손깍지의 대답은 별로 생각도 안 나는 걸로 봐서 영양가 있는 말은 아니었던 듯 하다. 딱히 ‘노’도 아니고 딱히 ‘예스’도 아닌 뭔가 스리슬쩍 내가 싫어하는 화법으로 넘어가지 않았나 싶다. 사실을 묻는 질문에 의견을 말했다든가 남의 얘길 했든가 그랬겠지.

슬쩍 떨어지자마자 다시 와서 달라붙는 너는 누구?

명동부터 청계천 변까지 걷는다. 걸으면서 다시 손깍지는 내 손을 잡는다. 또 깍지를 낀다.불편하면서 왜 불편하다고 말을 못하는지? 청계천 다리 난간에 기대 선다. 날으는 하얀 물고기들이 청계천 위에 있다. 아이들은 참방참방 아예 물 속에 들어가서 놀고 있다. 저 물 깨끗할까를 고민하는 나는 역시 삽십대. 덥다. 더위에도 불구하고 손깍지는 다리 난간에 기댄 팔뚝을 내 팔뚝에 꼭 붙이고 서 있다. 옆으로 슬쩍 떨어져 섰다. 슬쩍 떨어지자마자 다시 와서 달라붙는다. 나는 좌절한다. 그냥 서 있는다. 정말 이런 인간은 나를 좌절하게 한다. 정말 너는 누구니? 니가 누구든 나한테 꼭 달라붙지 말란 말이야! 난 싫어, 싫다구. 애인도 아닌데 그렇게 붙어 서는 거 정말 싫어!!

다음에 손깍지를 만나면 나는 선을 좀 그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첫째, 언니라고 부르지 말 것. 둘째, 말끝에 ‘~요’를 붙이지 말 것. 셋째, 니 목이 마르다고 내 물을 다 마셔버리지 말 것!!

어리석고 요령부득인 순진하고 이기적인 인간을 본다. 언제나 손해보고 사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밖에 모르는 인간, 언제나 실수 연발, 요령부득의 탓도 있지만 평소에 말 못하는 적개심일 수도 있다. 남을 생각 못하고 이기적인 실수를 연발하기 때문에 자신도 지쳐버려서 미안하다는 말도 입에 발린 소리로 밖에는 나오지 않는… 나보다 아주 조금 멀리 나가버린 나 자신…

선을 그어야지. 선을 그어야지. 선을 그어야지. 다시 내 손을 깍지 끼면 ‘이렇게 잡는 거 불편해’라고 똑바로 말해야지. 다시 내 옆에 꼭 붙어 서면 ‘이렇게 붙어 서면 불편해’라고 말해야지. 말 해야지. 말 해야지. 참고 있다가 후려치지 말고 -.-;;; 말로 하자. 말로. 꼭 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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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