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판!


나에게 외주를 주는 회사 사람과 한 판 했다.
으음… 내가 평소 별로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다.
나름대로 진실한 면이 없지 않으나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대화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정말 싸우기도 싫었다.
가능하면 싸우지 않고 넘어가고 싶었지만 참을 수 없어 싸웠다.
참고 넘어가는 것, 징글징글했다.
그리고 한 번 참으면 다시 언제든 참아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무력한 느낌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서
싸움을 걸었다.
그런데 의외로 빨리 상황을 이해하고 정리하고 솔직하게 잘못한 부분을 시인했다.

대화 중에 ‘궤변이다’라든가 ‘내 입장에서 생각하면 어떻겠어요?’하는 말도 했지만
(그 사람다운 표현이다.)
둘이 서로 줄기차게 자기 주장을 하는 와중에도
그 사람이 먼저 나의 문제제기를 알아 듣고 ‘그 부분은 내가 그릇이 작았다’라고 말했다.
막상 그 말을 듣고 나니 더 이상 싸울 게 없었다.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지만 그 말만으로도
마음이 풀려버렸다. 내가 관대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그 정도라도 나의 문제제기를 이해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문제에 솔직하게 대처하리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람을 믿는 마음이 전혀 없었던 거다.

오늘의 성과:
참을 수 없다고 판단한 일을 참지 않았다.
문제제기를 해서 문제를 만든/일으킨 점은 높이 산다.
나는 이전에 그 사람과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 사람의 인격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면 문제제기하지 않고 넘어갔다. 딱 한 번만 빼고. (딱 한 번도 있었군!)

오늘의 반성:
오늘 나는 그 사람만큼 솔직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을 신뢰하지 않았다.
나는 완전 방어적이었다.


나는 평소에 착한 척하는 인간이라 사실은 얼마나 신랄한 인간인지 잊어버린다. 숨길 수 없는 본성 때문에 수시로 윗입술을 말아 올려 잇몸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면서도 내가 그런 사람이란 걸 잊어버리고 산다. 편리한 인간이다.

잊어버리기만 해도 다행이다. 사실은 아예 알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애증과 세월이 첩첩 쌓인 친구가 생각난다.
나는 그 여자의 허위가 역겹고 징글징글하지만
그 여자야말로 나의 가식이 끔찍하게 싫을지 모르겠다.
나는 ‘너의 허위를 깨주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 친구야말로 ‘너의 가식을 좀 깨부숴 버리시지’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좋을까?
그저 잊어버린 것이기만 해도 다행인데
나는 편리하게도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아예 모르면서 사는 건 아닐까.

오늘 한 판 뜬 사람이 말하다가 중간에
‘내가 이 나이 먹어서 그러면 안 되는데…’하는 말을 했다.
그 나이라고 하는 것이 나랑 동갑이다.
회한과 반성이 가득 찬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하는 걸 듣자니
어쩐지 나도 함께 부끄러워졌다.
지난 일주일간 칼을 갈았건만.
너는 어째 그렇게 솔직하단 말이냐.
내가 정말 너를 몰랐나보다… 에효… 이 섣부른 것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을 참고 싸움을 걸었다는 점을 높이 산다.
이렇게 싸움을 거는 인간이라 생각하니 책임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나는 쌈을 거는 인간이다. 그러니 먼저 똑바로 살아야 하리라.
앞에선 참고 뒤에서 비웃는 인간으로는 가능한 살지 않으리라.
(가능한?)
그렇게 살려면 역시 내가 먼저 똑바로 살아야 한다.
똑바로가 뭐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래도 똑바로, 말하자면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덜 부끄럽도록.

오늘의 깨달음: 나는 굉장히 방어적, 굉장히 공격적인 인간. 맘씨 좋은 아줌마처럼 생겼다고, 남들이 그렇게 오해한다고 해서 스스로도 오해하지 말라. 잊으면 안 된다. 모르는 건 더욱 안 돼. 우우… 전투 본능…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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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 2

댓글 2개

L & Kira님의 코멘트

L & Kira
잘 지내시는거에요? ㅎ 뽀님은 맘이 넘 따뜻해서 누군가와 다툼이 있어도 금방 화해가 되실거 같아요... ^^

뽀님의 코멘트

에... 그러니까... 그게 오해라니간여 --;;; 저는 마음이 따듯해 '보이'지요. 사실 얼마간 따듯하기도 할 거예요. 문제는 보기보다는 훨씬 더 신랄하고 공격적인 인간이기도 하다는 사실이겠죠. 양쪽이 다 있는데 조명을 받는 건 한쪽뿐이니 그게 좀 불편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