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소에 인터뷰를 요청하시려는 분들께(레포트,발표,논문,취재 등)

저는 <한국레즈비언 상담소>에서 일하고 있는 간사 소윤입니다.

최근 빵빵 터지는 동성애 관련 이슈 때문인지,
상담소에 인터뷰를 요청해 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동성애자에 대한 인권에 관심을 가시시고
이와 관련한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자 상담소를 찾아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인터뷰를 요청하시는 많은 분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몇 가지 있어 이렇게 자유게시판을 활용합니다.

좀 더 정제된 단어로, 정리된 입장은 추후에 공지사항에도 올려놓겠습니다.
(물론 이 글을 읽어야만 하는 분들은 어디에 올려도 아마 이런 글에 관심도 안 가지실 거라는 거 압니다.)

1. 상담소는 레포트, 발표, 논문 등 각종 과제를 대행하는 곳이 아닙니다.

중간기말 기간이면 어김없이 상담소 메일과 전화 창구로 연락을 주시는 학생 여러분들,
상담소는 '숙제'를 대행하는 곳이 아닙니다.

(물론 가뭄에 콩나듯,
어마어마한 인터뷰 기획서와 사전 조사를 통해 준비한 양질의 질문지를
아주 조심스럽게 내밀며 "혹시라도 불편한 부분이 있다면 수정하겠다"고
정중히 인터뷰를 요청하시는 분들도 아주 간혹 있습니다.)

과제는
슨생님이 제자에게 스스로 공부 하라고 내는, 그래서 노력을 필요로 하는
하나의 학습과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레즈비언의 인권과 레즈비언상담소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다뤄보겠다는 의지가 있으시다면
적어도 레즈비언에 대해 '제대로' 언급하고 있는 책이나 논문 몇개는 들춰보셔야 한다고 생각하며,
도서관에는 이런 자료가 참 많습니다.

상담소 FAQ에도, 자료상자에도 자료는 많습니다.

물론 도서관이나 언론보도자료에는 이상한 자료도 많습니다.
만약 어쩌다가 찾은 자료가 영 맘에 들지 않는다면, 아주 좋습니다.

어디가 왜 맘에 안들고 왜 문제적인지를 비판하시는 것만으로도
레즈비언이 사회적으로 받는 수모에 대해 유추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 아무런 자료도 찾지도 않고, 동성애에 대한 기본적 지식도 없이
"레즈비언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 자유롭게 얘기해 달라"
무성의한 질문 하나로 무작성 인터뷰를 요청하시는 것은
"너희는 참 힘들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러니 어디 얼마나 힘든지 들어보자"
아주 권위적인 태도로 밖에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인권활동을 하는 단체가 놀고 먹지는 않는다는 걸 잘 알고 계시겠지요.

여기저기서 빵빵 터지는 이슈들에 주목하느라,
특히나 상담소를 찾아주시는 내담자들을 만나는 것 만으로도
활동 에너지가 아쉬운 상황입니다.

과제 관련 인터뷰를 하실 때는

1. 철저한 사전 조사: 최근의 동성애 관련 이슈(기사검색), 
                              동성애 관련 기본 용어(동성연애X,호모X) 등
2. 꼼꼼한 인터뷰 기획서: 자신의 문제의식, 관심사,
                              인터뷰 목적과 활용방법(동의없이 딴 곳 활용X) 등
3. 구체적인 질의서: 적어도 10개 이상의 질문,
                              겹치지 않는 내용 혹은 심도를 다르게(하고픈말 하세요X)

기본적으로 위와 같은 준비를 거치신 후 파일을 첨부하여
메일로 인터뷰 요청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상담소는 인터뷰를 구걸하지 않습니다.

상담소는 언론기관이나 대학 연구에 단체를 반드시 노출시켜야만 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물론 알려지면 좋겠지요. 저희도 압니다.
특히나 동성애 관련 이슈는 유명인사나 끔찍한 범죄와 관련되지 않으면
매스컴 타기가 쉽지 않죠. 알고 있습니다. 씁쓸하지요.

간혹 어떤 기자분들은
"언론 타면 너네도 좋은데 멘트 몇 마디에 까다롭게구냐"(최근 M신문)고 말씀하시는데
기획서 요청과 질의서 선공개는 절대 까다로운 절차가 아닙니다.

인터뷰를 따가 놓으시고는 말도 안되는 짜집기로 동성애 인권을 우롱하는 일을
서슴치 않는 데 앞장서는 것은 바로 언론사 기자와 작가 분들입니다.

상담소 통계 갖다가 출처도 안 밝히고, 멋대로 해석해서 이용하고(ㅎ당 국회의원).

분명히
카메라 녹화 목소리 녹음 안하기로 약속하고도 무겁게 카메라에 삼각대까지 메고 오시죠(M 방송사).

이 절차는 전적으로 신문/방송 보도에 나간 인터뷰 내용들을 되돌아 보면서
땅을 치고 후회하며 얻은 아주 "지혜로운" 방법이오니(기사 보도 후에 문제제기도 가능)
이 절차가 "귀찮으신" 분들의 인터뷰 요청은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절차를 거치셨더라도 기획의도가 동성애자의 인권과 거리가 있다고 판단되면
인터뷰에 응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터뷰 요청은 적어도 일주일 전에 해주십사 말씀도 드렸습니다.

기획서까지 보냈더니 왜 인터뷰 거절하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으신데
저희는 기획서를 보고 난 후 결정하겠다고 했지 기획서 보내주면 무조건 하겠다고 한 적 없습니다.

학생분들조차도 간혹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학생: "수강생이 200명은 족히되는 대형 강의이니
         협조해주시면 동성애자 권리 신장에도 도움 안되겠습니까?"
간사: "......."

그런 좋은 기회가 있다면, 
저희가 직접 "동성애 바로 알기"라는 주제로
출강 할 수 있으니  따로 강의시간을 주실 수 있는 힘을 발휘하시어 연락주세요.
<강의 요청>으로요.
(실제로 학기 수업 진행 중 한 타임을 저희 단체를 위해 내어주시는 슨생님들도 종종 있습니다.)


3. 동성애와 동성애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분께는 인터뷰 응하지 않습니다.

아래는 몇 일전 상담소 메일로 인터뷰 질문이랍시고 메일을 보내신 어떤 분의 질문 리스트입니다.
(토시 하나 수정하지 않은 질문리스트만 올립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만든 직격타를 날리셨지요.)

저희가 알고싶은 것은
1. 본 상담소에서 하는 일들
2. 한국 동성애자의 숫자
3. 한국 동성애자들의 문제점들과 해결책
4. 동성애자들의 강점

제가 이 자리를 빌어 이 분의 질문에 정식으로 답변하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그래서 여기서 답변을 한 번 드려보려 합니다. 보실지 모르겠네요.

저는 절대로 이 질문을 보내주신 분 개인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분이 이성애자일거라고 제 맘대로 전제하는 것은 분명 문제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분이 "이성애자 중심적 사고"를 하고 있는 분으로 상정하고 이야기를 시작해 보죠.

일단,
1번 질문은 상담소 홈페이지 첫 화면 상담소 소개에 자세히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이 질문 같은 경우에, 잘 모르실 수 있지요. 저희는 미천한 단체니까요.
더 설명이 필요하시면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2번 질문에는 "역질문"을 해볼게요. 한국의 이성애자는 몇명입니까?
저는 한국의 이성애자의 숫자를 알지 못합니다.
그걸 알고 계시나요? 그런 조사가 존재하기는 합니까?
만약 있다면 한국의 전체 인구(요즘 인구조사도 하고 있으니)에서
이성애자의 숫자를 빼면 동성애자의 숫자가 나올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게 도출된 동성애자의 숫자에는 큰 오차가 있겠지요.
이성애와 동성애 사이의 무수한 성적 지향을 지닌 분들도 있고
이성애자인척 살아가는 분들도 많으니까요.)

동성애자의 숫자라.
이런 조사가 가능한 세상이라면 아마도 동성애자가 커밍아웃하는 게 아주 편한 세상이겠죠.
그렇다면 아마도 이런 질문을 해주신 님이 굳이 학교 과제로 동성애를 주제로 삼았어야 할 일도
제가 이런 글을 쓰고 있어야할 상황도 없겠지요.

유독 동성애자의 인구에 주목하시는 이유는 뭔지, 그게 중요한 이유는 뭔지 묻고 싶습니다.

3번 질문은 정말 전화라도 해서 하고픈 말이 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한국동성애자들의 문제점과 해결책"이라니

제가 국어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 이해가 잘 안되는 건가요?
"10대 청소년 탈선의 문제점과 해결책"이라는 문장을 생각해 보면,
여기서 뜻하는 바는 10대 청소년의 탈선이 "문제"라는 얘기지요?

그렇다면 동성애자는 "문제"인 것 같은데 이런 동성애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을 동성애자 인권단체에 물으시는 건 아니라고 (제발)믿고 싶습니다.

(좋게 생각하려고 참 많이 노력을 해 본 후)
그렇담 아무리 그래도 의미상으로 봤을 때 원래 의도는
"한국동성애자들이 겪는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인 것 같은데
어떤 영역에서, 어떤 문제를 알고 싶으신지 좀 더 자세히 말씀을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동성애자로 사는 것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는 분들도 많고
동성애자들이 겪는 모든 "문제"가 항상 동성애자여서 생기는 건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인터뷰를 따가시는 분도 어떤 특정 주제에서의 동성애 문제를 알고 싶으신 걸테니
자세한 인터뷰 질문을 부탁드립니다.

4번 질문은 3번 만큼이나 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동성애자들의 강점"이라니,
이 질문은 제가 어디 워크샵에 가서 "레즈비언의 취미는 보통 뭔가요?" 라고 들었던 질문만큼이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습니다.

동성애자들 중에는 아티스트가 많죠. 창의성이 뛰어나단 증거입니다.
동성애자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비폭력적 감수성을 갖고 있습니다.
동성애자들은 평생 헤어지지 않고 서로를 잘 이해하는 아름다운 사랑을하죠.

이런 이야기....를 원하시는 건지요..
동성애자의 취미는 다양하죠. 이성애자들이 그런 것 처럼요.
사람들은 저마다 강점과 약점을 가지죠. 동성애자도 그렇습니다.
이성애자 부부 사이에서 큰 아이들은 바람직하게만 혹은 착하게만 성장하나요?
동성애자들도 연애와 사랑에 있어 이성애자들만큼이나 다양한 입장을 가집니다.

동성애자의 강점을 얘기해 달라는 것은
"동성애가 어떤 장점이라도 있어야
기존의 사회에, 제도에, 이성애자들 사이에 껴줄 수 있을 거 아니냐"는 얘기를 하는
못된 사람들의 말장난이어 왔습니다.

2번~4번의 질문은 아주 객관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 객관의 기준이 바로 "동성애 혐오(호모 포비아)"적인 전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인터뷰를 응하실 때는 적어도 이런 부분에 있어서 "조심/주의"하셔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몰라서 그렇다, 그러니까 인터뷰 하자는 거 아니냐"하시는 분들 꼭 있습니다.

그러면 문제지적을 당하셨을 땐 인정하고 사과라도 하세요.
문제지적 하는 사람도 역시 유쾌하지 않습니다.

"모른다"는 말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런 거 다 알아볼 시간이 없다"고 하는 분들도 있죠. 그럼, 저희 단체 말고 다른 데에서 하세요.)

장애인 인권 단체에 전화를 하실 때
"저는 장애를 가지지 않는 정상인이라서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라고 말씀하실 겁니까?
(설마 이 문장에서도 문제를 못찾겠다고 하시는 분들 있으신건 아니기를.)

 
이건 당신 주변에서 타는 속을 숨기고 당신을 마주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몇몇 동성애자들을 위한 충고이며
당신의 과제 혹은 업무가 조금 더 진정성을 담기를 바라는 맘에서 드리는 작은 충고이며
괜한 인터뷰 요청에 맘 상해 하며 활동 에너지를 쭉쭉 빼앗겨 버리는 활동가들을 위해
당신이 반드시 지켜줘야 하는 아주아주아주 사소한 예의입니다.

저라고 모든 인권 문제와 소수자 감수성에 모두 능통한 사람이겠습니까.
그래서 조심 또 조심 해야겠지요.
저도 실수를 하고, 문제지적 받으면 쪽팔려서 자다가도 하이킥을 합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또 실수해서 또 밤에 하이킥할 일을 저지르고 후회합니다. 
앞으로도 그러겠지요. 그러면서 배워야 하는 거겠지요.
모르는 건 당연한게 아니라,  
모르는 건 나쁜 겁니다.
모르는 건 당연하다고 믿는 건 제일 나쁜 겁니다.
(여기서 안다/모른다는 지적 수준이나 학력 이런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거 아실겁니다.
 "아는 게" 권력인 것 처럼, "모른 채 살 수 있는 것"도 권력입니다. )


인터뷰도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겁니다.

인터뷰 대상이 인권 단체라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거라는 기대는 마세요.

적어도 예의는 지켜주셔야
시간 쪼개서 누추한 단체 찾으시는 분도
시간 쪼개서 인터뷰 위해 일정 맞추는 활동가도
아직 그래도 "사람이 희망이다" 생각하고 만나서 헤어질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이 기나긴 투덜거림 때문에
레즈비언 인권과 관련된 주제로 성심성의껏 열심히 연구를 하고 계신 분들까지
상담소 인터뷰를 주저하실까 너무너무너무 걱정이됩니다.
상담소의 활동가들이 이렇게 까칠한 건 절대 아닙니다.

정중한 인터뷰 요청은 대부분 받아들이고 인터뷰에 응하고 있습니다.
(종종 상담소는 인터뷰 기피 단체라는 소문을 듣게 되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좋은 과제, 보도, 연구 성과물을 남겨주신 분들도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레즈비언 인권에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 관심가져주신 분들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길게 쓰면 아무도 자세히 읽지 않을 듯한데,
여기까지 읽어주신 이전의 인터뷰 요청자들이 있으시다면, 또 감사드립니다. 

* 이 글은 상담소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상담소 1

댓글 1개

이상한님의 코멘트

이상한
지당하신 말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