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생활백서-필담-나의 경우

2005-11-09
대입을 앞둔 조카와 문자로 열나 필담을 나눈다. 눈을 땡그랗게 뜨고 있는 표정의 이모티콘을 보냈길래 무슨 뜻인지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더니 받지 않는다. 학원에서 수업이라도 듣나 싶어서 ‘이게 무슨 뜻이야?’하고 나도 문자를 보냈다. 수시전형에 지원했던 학교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김빠진 표정이었구나. 그러고 나서 필담은 계속 이어진다. 수능시험을 2주 앞두고 초조한 조카와 그 조카를 달래고 위로하는 열 다섯 살 차이 나는 이모의 대화다.

나는 집에 전화가 없던 시절도 살았고 ‘유선전화-무선전화-문자가 안 되는 이동전화-문자가 되는 이동전화’ 순서로 익숙해진 세대라 끊임없이 문자를 주고받는 필담에는 익숙하지 않다. 실은 굉장히 피곤하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하고는 절대 이런 짓을 안 한다.

한 때는 친구들과 몇 시간도 좋고 밤을 새도 좋다면서 통화를 하기도 했는데 그것도 다 옛날, 아주 옛적 얘기가 되었고, 이제는 어느 누구와 통화를 하더라도 ‘용건만 간단히’가 신조가 되었다.

그런데 이 조카는 필담을 아주 좋아한다. 한 번 문자를 보내서 답장을 하기 시작하면 그런 식으로 대화가 끊임 없이 이어진다. 여기서 오늘의 문자 개수를 확인해 보았다. 내가 받은 것이 12개다. 보낸 것도 그쯤은 될 것이다. 이 정도는 우리 조카 세대에게는 별로 많지도 않은 숫자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문자를 보내는 것도, 온 문자를 확인하는 것도 노동이나 마찬가지라 어쩔 수 없이 세대차이를 느끼게 된다.

어쨌든 문자를 주고 받으면서 나름대로 필담의 효용을 느꼈다. 조카는 전화 통화를 하려고 하면 쭈삣거리면서 말을 잘 못한다. 나도 왠지 조카와 전화로 말을 할 때는 목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 있다. 필담은 귀찮기는 하지만 그런 느낌이 없다. 서로 제한된 자수 안에서나마 실컷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좋군. 이거 참 좋은 방법이군. 그래도 역시 힘은 든다. ㅋㅋ 어쩔 수 없는 연로함인가…

모든 기술이 너무 빨리 발달하기 때문에 나이 든다는 느낌도 더 빨리 받게 될 것 같다. 앞으로 점점 더. 회사 동료가 사는 아파트에 현관문을 여는 리모콘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문화 충격을 느꼈다. 이 정도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나는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게임이란 옛날 오락실 게임이 전부다. 스타크래프트도 카트라이더도 해 본 적이 없다. 당장 사는 데 불편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계속 등한시 하고는 있지만 언젠가는 아주 대화에 끼지 못할 것이란 불안도 있다. 휴대 전화로 인터넷을 이용하지도 않고 그저 요금을 적게 쓸 생각만 한다. 그러니 위성 DMB 방송이니 하는 것은 그저 광고에서만 볼 수 있는 신기한 것일 뿐이다. 움… 움… 움… 의료기술이 발달해서 수명은 점점 늘어난다는데 기술 발전에 적응을 못하거나 그럴 만한 정신과 시간과 돈의 여유가 없어서 애저녁에 곁방 늙은이가 돼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걱정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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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