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시작…이 될까?

2006-11-26

머시깽이 같은 인생에 몸까지 아파주니 아주 박자 맞춰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나…

몇 달 전에 야근한다고 사무실에서 밥을 시켜 먹는 자리에서 나한테 ‘나 말 잘 들을 자신 있는데’했던 부장이 어제는 저녁 회식 자리에서 ‘뽀 씨는 나한테 관심이 아주 많은 것 같아’했던가? 아님 ‘뽀 씨는 나한테 특별한 감정이 있는 거야, 맞지?’ 했던가? 그것도 아님 ‘뽀 씨는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 했던가…

몇 달 전에 밥을 시켜서 둥그런 탁자에서 먹고 있는데 누가 ‘뽀 씨는 어떤 사람이 좋아요?’라고 물었다. 필시 ‘어떤 남자가 좋아요?’라고 물었겠지. 나는 결연하게 ‘내 말을 잘 들어야 해’했다. ‘나랑 같이 살려면 내 말을 잘 들어야 해.’ 뜬금 없이 ‘나 말 잘 들을 자신 있는데, 나는 어때요?’라고 물어본 사람이다.

‘에이, 왜 이러세요?’ 했을까? 그 때는 같이 일을 하기 전이라서 그렇게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 대답을 못하고 그냥 넘어갔다. 나한테 질문을 던졌던 나보다 젊은 애기 엄마가 같이 밥을 먹던 청일점 직원에게 ‘차장님은 이런 대화를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그 질문에도 기가 막혔던 기억이 난다.

그 후에 말 잘 들을 자신 있다던 그 여자와 임시로 같이 일하게 되었다. 일하는 솜씨 깔끔하고, 뭐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일은 워낙 잘 하기로 소문난 여자였다. 내가 감동받은 부분은 직원과 자신의 구별을 확실히 해서 니가 할 일과 내가 할 일이 명확하다는 점이었다. 직원의 바람막이는 확실히 하고 있었다. 직원을 무리하게 밀어붙이지도 않았다. 자기자신은 매일 제일 늦게까지 야근을 하면서도 팀원들이 체력이나 인내심이 한계에 부딪혀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아, 뭐, 딴 소리가 길다. 머리가 아프다. 겨울이 되니 허리도 다시 아프고 몸도 삭신이 다 아프다. 기력이 떨어져서 한 가지를 다면 다른 일은 못한다. 일중독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일이 재미없어서 이렇게 불행한 걸 보면 일중독인 모양이다. 나처럼 일하기 싫어하는 인간이 일중독이라니… 하지만 열정 없이 일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참을 수 없다…

나는 술도 거나하게 취했고 그 여자의 그런 말이 불편하게 들려서 뭐라뭐라 ‘아니, 내가 언제 좋아했다는 거에요’라든가 여튼 뭐라뭐라 했다. 그 여자는 다시 ‘저것 봐, 그냥 넘어가면 될 걸, 계속 아니라고 하는 걸 보니 더 수상해’ 그렇게 나오니 더 이상은 뭐라고 할 수도 없어서 대화는 거기서 끊어졌다.

저녁 식사를 다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그 여자가 또 무슨 말인가 했다. 나는 대답을 하면서 내 뒤에 선 여자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내내 잡고 있었다. 딱히 에로틱한 느낌은 없었다. 그저 다정한 제스쳐였다. 들이대는 직원이 만만한 상사에게 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는 뿔뿔이 헤어졌다. 2차도 없었다. 너무 피곤했다. 나는 요즘 전반적으로 많이 힘이 빠져 있다. 여러가지로 힘이 빠질 일만 생긴다.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실망과는 별도로 혼란스러움도 느낀다. 나는 누구일까?

오늘은 느지막이 일어나서 빨래와 설거지를 하고는 완전히 뻗어버렸다. 낮부터 오후 내내 아파서 드러누워 있다가 밤 9시에 일어나서 여태 티비를 봤다. 나중엔 눈이 아팠다. 화가 난다.

그 여자는 뭘까? 그 여자는 평소에도 그런 농담을 잘 한다. 친한 직원에게는 곧잘 하는 편이다. 나한테 ‘나 말 잘 들을 자신 있는데’했을 때는 나랑 별로 친하지도 않을 때였다. 그 여자는 상사니까 혼자서 편하게 느꼈는지도 모르지. 나야말로 속마음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친근한 체 하니까.

농담 잘 하는 일반을 두고 내가 이렇게 골머리 썩고 있는 거라면 정말 인생 허무하십니다… 사실 그 여자는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다. 지금 어떤 느낌이냐면… 남자가 나한테 도끼질했을 때 느꼈던 멀뚱함, 생경함, 이건 뭐지…?하는 느낌… 남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내 스타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여자는 여자이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건가, 라는 고민.

내 스타일이라는 것들은 대개 이기적이고 모자란 것들이었기 때문에(ㅋㅎㅎㅎ), 것들이기 때문에(ㅠㅠ),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닌 이런 사람이 나에게는 도리어 맞는 사람일까 하는 혼란스러움까지 덧붙여져서… 내 마음은 온통 괴롭다.

조제와 손이 스쳤을 때 슬쩍 피하는 조제의 손가락을 확 당겨잡은 츠네오의 건강함이 자꾸만 떠오른다. 내가 정말 원한다면 그 여자가 일반일까, 이반일까 고민하는 것은 어리석지 않나? 나도 이반이라서 메롱과 사귀었던 것은 아니다.

머리가 아프다. 혼란으로 가득한 내 삶, 일 한 가지가 재미없어서 이렇게 여러가지로 마음이 한꺼번에 흩어지는구나. 그러니까 나는 정말 재밌는 일을 해야 해. 목숨 걸 일이 없으면 금방 타락하고 말 인생이다.
일반
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