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반쯤은 독신인 채로

2005-09-15
언제나 반쯤은 독신인 채로

메롱이 추석연휴를 끼고 일본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나흘간.
메롱의 출장을 앞두고 메롱과 나는 조금은 외롭고 우울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며칠 동안.
며칠 동안 떨어져 있게 된다는 것 때문에 꽤나 다정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월요일에는 퇴근 후에 만나서 면세점 구경을 했다. 반지를 봤다. 내가 계속 반지도 안 사준다고 메롱을 구박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반지를 사려고 마음 먹은 것이다. 이럴 때도 나는 내가 별로 현실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예쁜 반지를 사가지고 와서 나에게 내밀면 좋으련만 메롱은 꼭 함께 구경을 다니려고 한다. 그렇게 반지를 ‘사는 일’에 나를 끼워넣으면 나는 불편한 생각이 들어서 차라리 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난 왜 이렇게 훈련을 잘 받은 여자인 걸까… 쫍… 맘에 안 들어.

월요일에는 면세점 구경을 하고, 화요일에는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수요일에는 점심시간에 메롱이 우리 회사 쪽으로 와서 같이 금은방을 돌았다. 면세점에서 본 은반지는 모양은 정말 예뻤지만 가격이 비쌌다. 금은방을 돌아보니 면세점의 은반지 값이면 금은방 금반지를 살 수 있었다.

그래도 ‘약속’을 하는 건데 은반지보다는 금반지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정말 보기 드문 디자인의 예쁜 은반지가 아른거려서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다.

어제는 저녁에 야근을 하고 퇴근길에 다시 메롱을 만났다. 난 저녁을 먹었기 때문에 음식점에 가서 메롱이 혼자 저녁 먹는 것을 지켜 봤다. 내가 먹을 때는 몰랐는데 남이 먹는 걸 보니 급하게 먹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너무 늦은 저녁이라 배도 고팠겠지. 천천히 먹으라고 계속 말렸다. 그러고 나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광화문 길을 산책했다. 그렇게 걷고 있자니 정말 같이 가는 쪽으로 생각해 볼 것을, 하는 후회도 들었다. 힘든 일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고 박람회 구경을 가는 것이니까, 비록 회사 사람들하고 같이 가서 좀 불편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뭐 어때, 같이 가는 쪽으로 할 걸… 하는 삐리리한 생각이 들었다. 삐리리한 이란 별로 좋지 않은.

오늘 아침에는 출근길에 종로를 급히 걸어가는데 날씨가 정말 좋았다. 햇빛은 적당히 밝고 따듯하고 바람은 선선하고. 이대로 쭉 걸어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그런 날씨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삶은, 우리의 삶은, 어쨌든 어느 정도는 독신 여자 같은 삶이겠구나. 배우자는 있지만 독신 여자처럼 산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생활 사이에 괴리를 만들어 주고 경우에 따라서는 조금 괴로운 생각이 들게 해준다. 지금은 우리가 같이 살지 않아서 그런 느낌이 더 많이 드는 것 같다. 우리는 늘 배우자가 없는 사람들, 또는 현재 배우자를 구하고 있는 사람들인 것처럼 살고 있다. 하지만 서로를 생각하거나 만나면 우리에게는 갑자기 배우자가 생긴다. 내가 나 자신을 인식하는 것, 우리를 인식하는 것, 우리의 관계를 인식하는 것, 나에게 바라는 것, 너에게 바라는 것, 우리 관계에 바라는 것 사이사이에 내가 잘 알지 못하는 틈이 늘 벌어져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혼인을 하고 주위의 기대를 받고 전과 다른 대접을 받고 요구를 받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또는 한꺼번에 감당해가면서 혼인에 적응해 가고 점점 누군가의 배우자, 누군가의 며느리, 누군가의 사위, 누군가의 동서, 누군가의 올케, 나중에는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배우고 익히고 싸우고 적응해 간다면, 나와 메롱에게는 우리 둘 밖에 없는 것과 같다. 우리의 거울에는 우리 둘만 비치고 있다. 물론 친구들이 있기는 하지만 친구와 가족의 유대는 또 다른 것이다.

서로 배우자가 되어간다는 과정은 어떤 것일까? 내게는 그것이 주로 가족의 유대 속에서 배워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친구들을 가족 삼기에는 내가 가족으로 느끼는 친구들과 메롱이 가족으로 느끼는 친구들이 아직 완전히 다른 동아리에 들어 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또 가족이나 친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가족도 결국은 마찬가지다. 나에겐 가족이지만 메롱에겐 쓰라린 사람이거나 메롱에겐 가족이지만 나에겐 쓰라린 사람이거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친구들이 서로 완전히 다른 동아리에 있는 것과 다를 게 뭐 있나? 시간이 천천히 지나서 너의 친구들이 나의 친구들로 느껴지는 때가 오고 나의 친구들이 너의 친구들로 느껴지는 때도 오겠지… 아마도…

친구들을 가족 삼는다 하더라도 역시 한계는 있다. 가족과 친구는 다르기 때문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아아… 나는 어찌나 고리타분한지… 친구들을 가족 삼을 때 현재 나의 문제는 내가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과 나의 유대가 메롱을 만난 이후에 많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친구들을 가족 삼으려면 꾸준히 그들과 상호작용을 해주어야 한다. 등지지 않아야 한다.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나는 지금 일도 바쁘고 연애도 바쁘기 때문에 다른 인간관계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반성하자.

지금은 메롱과 같이 살지 않는다. 하지만 같이 산다고 해서 ‘언제나 반쯤은 독신 여자인 듯한’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질 수 있을까? 꼭 남을 속이고 안 속이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나 자신의 마음가짐, 또는 생활의 문제인 것 같다. 몸에 익은 생활의 문제. 사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나는 반쯤은 아줌마인 듯이 살고 있다. 내가 아줌마 스피릿을 내 삶의 중요한 정책으로 받아들인 이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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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