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네가 내 것인 동안만... (I)

사랑해, 네가 내 것인 동안만.


나는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나는 폭력이 판치는 집에서 자랐다.
나는 폭력이 난무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렇게 자라면서 내가 각골난망(刻骨難忘), 뼈에 새긴 것은 관계를 맺는 것, 맺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관계를 끊는 것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부모는 아직도 같이 살고 있다. 이제는 늙어서 나름대로 서로를 의지하며 살고 있다.

우리 집은 알코올 중독 가정에 폭력 가정이었지만 그래도 부모가 자식에게 무관심하거나 염치가 아주 없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나 자신을 가정 폭력의 생존자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사람이 따르고 인기가 있고 남자들과 연애도 잘 했던 동생이 혼인을 하지 않고 서른을 넘기면서부터였다. 나는 굳이 말하자면 인기도 없었고 재수도 없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왕따라는 말이 없던 시절에 원조 왕따로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동생과는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뚱하고 한구석에 처박혀 책이나 읽고 있던 어두운 나와는 달랐던 동생이었기 때문에 집에 아무리 돈이 없다고 해도, 그 동생이 혼인을 안 하고 서른을 넘긴 것은 나에게는 뭔가 생각할 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아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그 때부터 하게 됐다. 동생과 나의 공통점은 가정폭력의 생존자, 알코올 중독 가정의 생존자라는 점이었다. 우리는 둘 다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메롱과 처음 만나 연애를 한 삼년 반은 내게 우리 집의 생활을 연장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메롱은 워낙 술도 별로 못했고 더구나 힘을 쓰는 스타일은 전혀 아니었지만 말로 하는 폭력, 무관심, 눈빛도 주먹질 못지 않다. 물론 주먹질이 젤 나쁘다는 것은 두 말 할 필요도 없겠지만.

메롱과 헤어진 후에 가정폭력의 사이클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나와 메롱의 주기가 너무 딱 들어맞아 놀랐다. 나는 가해자였지만 동시에 피해자였다. 우리 관계는 그런 식이었다. 아니면 나 자신이 그저 평생 동안 훈련 받은, 폭력의 피해자였는지도 모르겠다.

삼년 반 만에 메롱과 나는 결국 헤어졌다. 찟어졌다. 오랫동안 바랬던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이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내 마음은 정말 편치 못했다. 헤어졌다 다시 만나기를 말 그대로 밥 먹듯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하나 끼게 되자 그 순간에 바로 너무 편리하게 헤어짐이 되었다. 나는 얼이 빠졌다. 그렇게 오랫동안, 그렇게 고생스럽게, 사귀고 싸우고 악다구니를 하며 버텨왔는데, 이렇게 한 방에 나가 떨어지다니.... 남 탓할 일이 아니기는 했다. 나야말로 메롱이 바람났던 상대였으니까.

일찍 혼인한 친구가 하나 있다. 친구들이 다 말리는 사람과 꽤나 일찍 혼인했는데, 그 남자의 부모가 이혼을 해서 명절 때마다 시집만 두 집을 가야한다고 했다. 그 친구가 그랬다. 너희들은 부모가 이혼한 남자랑 결혼하지 마. 이 사람한테는 이혼이 너무 별거 아니야. 툭하면 이혼하재.

신혼 초에 서로 적응하는 동안에 남들도 보따리 한두번 쯤은 싸는지 모르겠지만 부모가 이혼한 집에서 자란 그 친구의 남편은 이혼이 쉬운 일이라, 익숙한 일이라 툭하면 이혼 얘기를 꺼냈던 모양이다.

내가 지금 그 남편짝이다. 오랫동안 부모를 보면서 저렇게나 합의가 안 되는 혼인을 왜 유지하는지 궁금했던 나는 조금만 불안한 상황이 되면 바로 관계를 깨는 것으로 해결을 보려고 한다.

그것이 나의 유일하고 또 비참한 무기인 것이다.
일반
빠알간 뽀 3

댓글 3개

피네..님의 코멘트

피네..
지독하게 정확한 현실직시..맘이 내려앉는군요

겨울님의 코멘트

겨울
가정부재의 생존자...

ehks0718님의 코멘트

ehks0718
실례지만나이기몇살이신지..?나는32살남성쪽이구여.. 친구가되구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