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나?

주말에 1박 2일로 동문 모임에 다녀왔다. 모인 곳이 스키장 콘도라 몇몇 언니가 아이들을 데려왔다. 학교 발표를 기다리는 고3과 그의 친구, 십 수년 전에 돌도 되지 않아서 꼬물거리며 기어다니던, 지금은 중2가 된 덩치, 핫~! 제일 어린 녀석은 뱃속에 들었을 때 복날 집들이한다고 제 엄마가 닭죽에 유부초밥을 싸주었던 바로 그 녀석이다. 지금은 10살, 이제 3학년이 된다.

큰 애들은 저들끼리 놀고 제일 어린 10살짜리와 스키를 타는데 녀석이 아주 점잖고 스키도 잘 탄다. 일년에 한 번 가는 내가 데리고 타기에는 곧 역부족이라 다른 언니한테 맡겼더니 오전엔 중급 슬로프에서도 설설 기던 녀석이 오후에는 상급 슬로프에서도 잘 탔다고 한다.

애 엄마가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라서, 위로든 아래로든 차이가 좀 있었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옛날 생각에 감이 잃었는지 아들한테 ‘뽀 누나’라고 나를 가르쳐 놨다. 대개는 ‘뽀 이모’라고 부르라고 가르친다. 열 살밖에 안 먹은 녀석이 누나라고 부르니 내가 도리어 어리둥절하다. 그 또래 녀석들한테는 이미 20대 때부터 아줌마 소리를 듣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이 녀석, 밤이 되니 한 술 더 뜬다. 저를 상급 슬로프에 데려가서 같이 스키를 탄 40대 언니더러 ‘뭐시기 누나’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는 아주 뒤집어졌다. ㅋㅋㅋ 그 언니를 바라보는 눈이 여신을 모신 듯 하다.

어린 녀석이 어찌나 신중한지, 처음에는 중급 슬로프도 가기 싫어하는 것을 나보다 한 살 많은 애 엄마가 윽박질러서 겨우 데리고 갔는데, 두 번 타고 세 번 타더니 올라가는 리프트에서 ‘저기요, 그런데요, 저는 중급 슬로프가 맞는 것 같아요.’한다. 하하하! 아이의 말 솜씨가 아니다. 얌전하게 생겨서는 ‘하면 하는 거지’ 그러면서 선등으로 바위를 척척 오르던 제 엄마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남편이 스키를 못 타서 아이를 데리고 스키장 올 일이 없다더니 과연!

훌쩍 커서 아주 덩치가 되어버린 중2 아들아이는 느림보로 소문이 자자했고, 고3 딸아이는 여간 해서 울지 않지만 병들고 죽어가는 동물만 보면 어디서든 주워 들고 들어와서 온 집안을 동물 양로원으로 만든다고 엄마의 푸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들 한 마디씩 참견을 하며 그 아이의 특기적성을 살려줘야 한다고 했다. 집에 두고 온 아들딸들과 씨름하며 사는 이야기가 지나간 학교 때 이야기, 요즘 먹고 사는 이야기와 끊임없이 교차되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창 밖을 보고 있자니 문득 ‘자식이 없으면 그렇게 아등바등 살 필요가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하는 걸까?’

가족도 없고 자식도 없으니까 더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건지 모르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그건 뒤에서 누가 쫓아오지 않는 이상 죽기살기로 달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당신은 죽기살기로 달려 본 적이 있나? 하지만 정말로 뒤에서 누군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는 내가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는지, 오래 달릴 수 있는지, 멀리까지 달릴 수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다. 그럴 때의 능력이란 평균 능력이나 정상 범주의 능력과는 사뭇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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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 6

댓글 6개

궁금이님의 코멘트

궁금이
빠알간 뽀님의 글을 이 곳에 와서 종종 읽어요. 그런데 궁금한 것이 생겼어요. 왜 이 홈페이지, 이 자유게시판에 글을 남기시는 건가요? 다른 곳에도 글을 남기시는 건가요?

뽀님의 코멘트

다른 게시판은 별로 이용하지 않아요. 일단 들어가볼 시간도 없고... 끼리끼리는 전부터 정든 곳이기도 하구요.

궁금이님의 코멘트

궁금이
답변 감사해요. 그럼, 끼리끼리 회원인가요?

뽀님의 코멘트

흠... 꼭 밝혀야 하나요? ^^ 저 사실 궁금이님이 누구실까 궁금했지만 '궁금이'라고만 했길래 따로 물어보지 않았어요. '궁금이'가 님이 평소에 쓰는 닉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궁금이님은 제가 끼리 회원인지 아닌지 왜 알고 싶은 건가요? 제가 누구인가에 관한 얘기는 따로 하고 싶지 않아요. 뽀의 일기에서 매일 하고 있는 얘기가 그 얘긴걸요.

취옹님의 코멘트

취옹
반갑네요.한동안은 언제 글남기시나 매일 확인했는데..어디 여행 다녀오셨나 했습니다.

궁금이님의 코멘트

궁금이
그렇군요. 뽀의 일기에서 매일 하고 있네요. 답변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