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섬을 찾아서

2005-07-04

메롱과 다시 사귀기 전에도 아주 가끔씩 메롱을 만났다. 서로 시간이 맞는 날이 별로 없어서 정말 아주 가끔씩 만났다. 그렇게 가끔씩 만나서 메롱과 얘길하고 헤어지면 나는 마치 나 자신을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메롱과 얘길하고 있자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자신을 발견하는 느낌이었다.

그 날, 메롱의 차를 타고 우리 동네 어귀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을까? 나는 그런 말을 했다. ‘나도 참 외골수라서 말이야…’ 말을 하면서 퍼뜩 깨달았을까? 아니면 메롱과 저녁을 먹고 헤어지고 나서 집에 와서였을까, 알 수 없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이 꽤나 외골수라는 것을.

그 전에는 내가 외골수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어디에 내놔도 잘 적응할 아이였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내가 아는 것밖에 모르고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외골수일 뿐이었다. 독선적이기도 하고 어리석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외골수.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내가 아는 정의가 정의의 전부가 아니고 내가 아는 것은 그저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어쩔 수 없이 어리석은 외골수.

메롱을 만나면 뜻하지 않게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나 자신을 묘사할 적당한 말을 찾게 된다.

오늘은 메롱이 아는 친구들을 만났다. 모두 네 커플, 여덟 명이었다. 전에 메롱과 사귈 때 알았던 메롱의 어릴 적 친구를 빼고는 모두 낯선 사람들이었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메롱이 뭔가 나를 타박했다. 내가 말하는 방법이 맘에 안 든다고 했다. ‘니가 그냥 네 얘기를 하는 것은 괜찮아, 남들이 들어도 별 부담이 없어, 하지만 남들한테 말할 땐 조심해…어짜고 저짜고’

메롱은 날 타박하자고 한 소리였지만 내 귀에 들어온 것은 다른 얘기였다. 나 자신의 얘기를 한다. 그렇다, 나는 나 자신의 얘기를 한다. 죽으나 사나, 내가 얘기하는 것은 내 얘기다.

몇 년 전에 글을 쓰겠다고 몇몇이 모였던 적이 있다. 내 평생 취미는 읽는 것이다. 문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사실 대학 다니면서 공부한 세대는 아니다. 대학은 놀러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 착각하고- 4년을 띵까띵까했다. 하지만 평생 취미라는 것은 오래된 까닭에 나름대로 문장에 대한 선호는 있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 별로 재미를 못 느끼는 문장.

은섬의 글은 맛깔 났다. 참으로. 나는 모임에 단 한 번도 내 글을 들고 가지 못했지만 은섬의 글은 읽을 때마다 훌륭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때 계속 글쓰기를 권하는 나에게 은섬이 말했다. “나는 내 경험으로 글을 쓸 뿐이에요. 지금 글을 쓴다면 단지 대학원에 다니는 배우자를 뒷바라지하는 아낙의 글일 뿐인데, 쓸 게 없어요.” 그 때는 나도 자긍심, 자신감, 이런 말의 의미를 잘 모르던 때라, 알긴 알았겠지, 지식으로 아는 게 뭐 어려운가, 현실이 아니었던 거지, 자긍심을 느끼고 자신감을 느낀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몰랐던 거지, 여튼 그래서 그렇게 말하는 은섬에게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그렇구나, 했다.

생각해보면 난 참 어리석었던 거다. 남들 다 간다고 따라 들어간 대학에서 내가 배운 것이 무엇인가? 개인적은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개인적인 것이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것이다. 뭐 이런 것들이 아니었나? 어쩌면 나는 그렇게도 어리석고 생각이 짧았을까? 나는 은섬을 더 이상 격려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 자신이 네가 쓰는 글의 가장 좋은 소재라고.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말한다. 나의 경험을 말한다. 어리석고 어줍지 않고 때로 재미가 없다 해도 나는 그저 나 자신에 대해서 말하고 나 자신에 대해서 말할 뿐이다. 지금은 그게 내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작은섬을 찾아서. 은섬아, 너와 연락이 끊어진지도 오래되었구나. 그동안 먹고 살기 바빴단다. 너는 어떻게 지냈니? 네 애인은? 글을 써라, 그리고 삶을 살아라. 이게 언니가 지금 네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네 삶이 아무리 보잘 것 없다고 해도 우리는 그저 증거한다. 그것만으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어디에 있든지 힘내고, 이 글을 본다면 연락  줘. 지금은 누구인지 몰라도 과거에 네가 알았던 사람이니까. reddish-po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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