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7일 국제 동성애 혐오, 트랜스젠더/성전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이하며]

[5월17일 국제 동성애 혐오, 트랜스젠더/성전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이하며]


차라리 '동성애 혐오증'과 ‘성전환자 혐오증’을
새로운 '정신질환'목록에 포함시켜라!


 5월은 우리가 기념하고 축하해야 할 날이 많지만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역사가 있다. 바로 1990년 국제보건기구(WHO)가 정신질환 목록에서 동성애 조항을 삭제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5월 17일 국제 동성애 혐오 반대의 날 (the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and Transphobia, IDAHO DAY)이다. 동성애를 더 이상 질병으로 보지 않겠다는 이 선언은 전 세계 성소수자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얻어낸 성과이자 우리 모두가 축하해야 할 일이다. 이 날을 기억하기 위해 전 세계의 성소수자들은 2005년부터 각 나라의 동성애 혐오증과 차별, 폭력에 반대하고 항의하는 활동을 펼쳐 왔고 2010년 모든 대륙의 60개가 넘는 국가들에서 개인, 단체, 기관, 도시, 정부들이 다양한 행동(전시회, 영화상영, 토론회, 행사, TV와 라디오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이 날을 축하하고 알리고 있다. 2010년의 주제는 종교이고 종교계에 보내는 국제 호소문을 작성하고 배포하였다. 그 외 터키에서는 유럽 의회 의원들과 국제인권단체 대표단, 주디스 버틀러 등이 참여하는 호모포비아 반대 국제회의가 열린다. 또한, 스페인 5개 도시에서는 동성애혐오증호모포비아, 트랜스포비아 희생자를 기리는 촛불 미사가 열린다. 브라질 산타카타리나 주 의회는 9번째로 이 날을 ‘동성애 혐오증과 성적지향에 근거한 폭력과 차별에 맞서 싸우는 날’로 공식 인정하였다. 한국에서도 5월15일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주관 하에 서울 도심에서 게이 프리 허그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성소수자 권리를 보장하는 나라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전 세계 80여개 나라에서 동성애는 여전히 불법이며, 일부 법률은 종신형에 처하고 있다. 이 중 7개 나라에서는 사형 등 중형을 선고하고 있다. 동성애가 불법이 아닌 나라에서도 차별과 신체적 폭력이 매우 흔하다. 눈에 잘 띄는 성전환자들과 유독 드러나 보이지 않는 레즈비언들의 경우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하다. 일부 국가들에서 긍정적인 진전이 있지만 불안한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은 과연 동성애 혐오와 트랜스젠더/성전환자 혐오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종교와 윤리라는 이름아래 성소수자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폭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2007년 '성적지향'이 포함되어 있던 차별금지법 제정을 원천적으로 가로막으며 성소수자들의 존재마저 부정했던 이들이 바로 동성애 혐오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기독교 근본주의였다. 최근에는 <인생은 아름다워>와 같은 드라마나 영화에 조금이라도 <동성애 코드>가 포함되어 있으면 ‘청소년들에게 동성애를 조장한다’라는 억지논리를 부리며 집단광기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동성애 혐오는 성소수자들이 생활하는 다양한 공간에서 끊임없이 성소수자들의 삶 자체를 파괴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학교 현장에서는 이성애 중심적인 교육을 강요하며 청소년 스스로 성정체성을 결정할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가출, 자살, 우울증 등 극한의 상황에 놓인 청소년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학교는 오히려 이들을 절벽 아래로 밀어내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군대에서는 아무런 대안 없이 성소수자 사병들의 권리가 무참히 짓밟히고 방치되는 상황이며, 트랜스젠더 성전환자들은 호적정정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노동할 권리, 건강할 권리는 꿈도 못 꾸고 있다.   

동성애혐오, 트랜스젠더/성전환자혐오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명백한 사회적 범죄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20년 전에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고 선언한 국제적 기준에 뒤따라가지도 못하고 있다. 우리는 성소수자들을 비정상, 변태로 생각하고 혐오적인 집단으로 취급하고 있는 사회구성원들에게 진정으로 비정상적인 것이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성소수자들을 ‘없는’ 존재들이 아니다. 이전부터 있어왔고 지금도 존재하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오늘 5월 17일 국제 동성애자혐오와 트랜스젠더/성전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문제는 동성애자, 트랜스젠더/성전환자들이 아니다. 차라리 동성애 혐오와 트랜스젠더, 성전환자 혐오를 정신질환 목록에 포함시켜라.

하나. 모든 정치 지도자들에게 요구한다. 모든 수단을 다해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에 따른 폭력과 차별에 맞서 싸워라.

  하나. 종교 지도자들은 세계 모든 국가들에서 사람들이 성적지향이나 젠더 정체성 때문에 폭력과 배제, 낙인찍기와 편견의 대상이 되는 사실을 비판하고 이런 관행이 괴롭힘 당하는 사람들의 존엄성과 진정성을 훼손한다는 믿음을 표현해야 한다.

하나. 모든 시민들은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에 상관없이 희망과 다양성,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해 이 날을 기념하자.


2010년 5월17일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동성애자인권연대
일반
동성애자인권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