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사람들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의 남자 친구는 오십일곱 살이다.
나의 중년 고양이도 나보다 여덟 살이 많은데 그래도 오십을 바라보는 사십대 중반일 뿐이다.
뭘 해도 꼭 나보다 한 술 더 뜨려는 싹아지 없는 년이라고 고양이 듣는데 욕을 했다.
고양이는 웃는다. 하긴 저 좋고 그 사람 좋고 내가 봐도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데 나쁠 게 뭔가.
아직도 사춘기의 꼬랑지 어디선가 헤매고 있는 것 같은 동생이 안스럽지, 그 사람은 어른으로 보여 다행이다. 나이 먹고 또 먹어도 어른 아닌 사람 많다.
우리 부모는 비현실적인 사람들이라 동생의 남자 친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같이 살지 않으니, 그저 내 앞이라 모른척하는 거라면 좋겠다. 대학생 딸이 남자 친구 집에 데려오는 것처럼 생각할까봐 걱정된다.
 
지난 주말에 온가족 총출동해서 동생과 그 남친이 하는 임시 주점을 도왔다. 동생이 속한 곳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나왔고, 일요일에는 나의 중년 고양이도 출동해서 엄마 대신 후라이판을 잡았다. 환갑인 엄마는 노점에서 사흘째가 되니 지쳐서 쉽게 후라이판을 내주었다. 한 눈에 엄마, 고양이, 동생의 남친이 들어오는 곳에서 그들을 보고 있다가 이동전화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저 엄마는 지금 두 딸의 배우자들과 함께 있다는 걸 알까?
 
동생과 나는 한눈에는 모난 사람들로 보이지 않는데 오래 사귀어 보면 모난 사람이란 걸 알게 된다. 또는 친해지면 모난 사람이란 걸 알게 된다. 어딘가 모르게 성질이 더럽고 극단적인 데가 있다.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이고 비사회적이고 살짝 꼴통들이다. 누구라도 그런 경향이 조금씩은 있겠지만. 언제나 배수진을 치고 살아온 심정이랄까, 한참 지나보면 사소한 일이었는데, 그때 당시에는 곧 죽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러면 발악을 하게 되고 악다구니를 쓰게 되고 기를 쓰게 된다. 사소한 일에 기를 쓰며 살다보면 막상 힘을 써야할 곳에는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늘 인생에 뒤통수 맞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런 사람들과 놀아주는 친구가 있다면 고맙다고 해야 한다. 오십일곱 먹은 아저씨도 나의 중년 고양이도, 우리 자매의 동아줄은 아니다. 하지만 친구다. 친구는 소중한 거다. 있을 때 소중한 줄 알고 잘 해야 한다.
 
임시 주점을 마치는 날 아저씨에게는 커밍아웃을 하고 싶었다. 그 사람도 보는 눈이 있는데, 중년 고양이가 예사로 보이지는 않았을 거다. 우리 부모에게는 아직 이름 없는 사람이지만 우리들끼리는 이름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거니까. 동생이 나에 대해서 고양이에 대해서 아저씨에게 뭐라고 얘기를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만나면 커밍아웃하려고 한다.


빠알간 뽀 2

댓글 2개

이상한님의 코멘트

이상한

오랜만에 왔다가...  글 읽고 갑니다.. 

부치 여전사님~~  화이팅!!! ^^

뽀님의 코멘트

헉... 제...제가 부치 여전사?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