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그렇게 좋냐?

2005-6-7(화)

도서전에 갔다가 책을 두 권 샀다. 그리핀과 사비네, 낯선 사랑을 찾아서. 김영사에서 꽤 오래 전에 나온 책들이다. 한 권에 2000원, 싸서 샀다. 싸서 샀다, 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메롱과 붙어지낸 연휴의 여파로 완전히 지쳐 있다. 이런 말을 쓸 때마다 검열등에 불이 들어온다. 메롱, 이건 너를 사랑한다는 것과는 또 다른 거라구. 너를 사랑하지만 내내 붙어있는 것은 힘들어. 쉬는 날이지만 한시도 쉬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쉬는 날이지만 한시도 쉬지 못하는 것은 메롱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나는 깨어 있기 위해서 평소보다 커피를 많이 마시고 메롱은 툭하면 누운 채로 잠이 든다. 나도 메롱도 힘들다. 머리 속으로는 생각한다. 내 시간을 좀 갖자고.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런데도 짬만 나면 메롱과 만날 계산을 두드리고 있다. 나도 못 말리겠다.

도서전에 갔다가 완전히 뻗어서 집으로 가는 길에 다시 메롱을 만날 궁리를 했다. 메롱의 회사 근처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중간에 접선을 한 다음에, 월드컵 경기장 역으로 가서 한강변을 산책하고, 각자 집으로.

시청역에서 지하철을 내려 메롱을 기다리며 도서전에서 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핀과 사비네. 이야기도 희안하지만 봉투를 열어 편지를 꺼내어 보는 책이라니!!!!

메롱은 회사에서 나오는 길에 일이 생겨서 결국 못 나오게 되었다. 다시 지하철을 집어탄다. 합정역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계속 책을 읽고 있다. 고개를 드니 홍대 입구역이다. 음, 다음에서 갈아타면 되겠군. 다시 고개를 드니 당산역이다. 아니, 이럴 수가? 기막혀 하며 지하철에서 내렸다. 메롱에게 문자를 보낸다. 메롱의 답신: 책이 그렇게 좋냐? 책이랑 사귀어라.

뭐, 나야 이미 책과 사귀고 있지. 내 평생은 책과 사귀어 왔다고 해도… 조금은 과언이지만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이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러고 있었다. 아아…

결국 오늘은 메롱을 만나지도 못했고 집에 가는 길도 멀리 헤메고 돌고 내렸다 타기를 몇 번이나 하면서 왔다. 지쳐서 산책도 못했고. 다음에는 당산역에 내려서 선유도로 산책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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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