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작업

2008-02-10

그림 일기 쓰겠다고 18색, 다시 세어보니 16색이다, 뒤집어 앞면을 보니 16색이라고 써 있다, 16색 사인펜을 샀는데 아직 뚜껑 하나 열어보지 않았다.

요즘 나는 아크릴 실로 수세미를 뜨고 있다. 오늘은 처음으로 앞뒤 두겹 수세미를 떴다. 음… 두겹이되 아래위가 뚫린 직사각형 모양은 여러 개 떴는데 아주 앞뒤를 꽁꽁 동여맨 동그란 꽃무늬는 오늘 처음 떴다. 저걸 써봐야 하는데… 써보고 편하면 저런 모양도 여러 개 떠 볼 텐데… 그렇다고 뜨는 족족 시험 삼아 내가 다 써 볼 수도 없고… 없을 것도 없으나…

여태까지는 실 파는 사람이 권한대로 7호 코바늘을 썼는데 수세미로 써보니 헐거워서 오늘은 5호 코바늘을 썼다. 쫀쫀하게 짰다. 수세미로는 쫀쫀한 게 나을 것 같다.

오늘의 꽃무늬는 뜨개질을 시작한 이래 가장 성공적이었다. 아, 첫날 밤에 뜬 특대형(ㅋㅋ) 모티프도 성공이었지…! 하지만 걔는 다시 풀어야 한다. 직경 20 센티는 족히 될 구멍이 숭숭 뚫린 꽃 모티프 수세미를 쓸 사람은 없다. (먼지 날리는데… 투덜투덜…)

뜨개질 몇 년 만에 꽃 모티프도 뜨고, 참… 느리다… 인내심이 없고 들이 파는 성격도 아니어서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되는 날도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푸핫!

평생을 이런 식으로 살 건가… 불평이나 낙담이 아니라 내가 사는 방식이 이렇게 될 건가 싶어서다. 내 걸음은 너무 느려서 어디에도 닿을 것 같지 않지만 늘 어딘가에 닿기는 한다. 시간이 기가 막힐 정도로 오래 걸리기는 하지. 그렇다고 아주 관두는 법도 없고, 들고 파지도 않으면서 아주 관두지도 않는다. 역시 머리가 나쁜 거다… 라기 보다는 역시 나는 몸으로 익히는 걸 더 좋아해… 하하... 낙천적이다. 이럴 때는.

요즘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객적은 소리나 지껄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누구를 의식하는가? 무엇을?

뭔가 잃었나? 내 리듬을? 내 속도를? 내 이야기를?

모르면 말으세요, 하던 거침 없음은 사라졌다. 대신에 하찮은 소리들로 가득 찼다.

심기가 불편하다. 한 마디로.

나는 뽀. 내가 누구인지 대략 숨기면서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누구에게서 숨는 걸까? 나를 아는 사람들 중 몇이나 이 사이트를 들락거릴까? 들락거린다 한들??

지금은 익명이 내게 준 자유보다 익명이 내게 준 구속이 더 짐스럽다. 이를테면 일월의 일기에서 홍콩 여행 이야기를 쏙 빼놓는다거나, 옛날에 헤어진 애인이 현재의 연애사로 상의해온 일을 쓰지 않는다거나, 속을 뒤집어 놓는 대학 동아리 70년대 학번 선배들의 횡포에 대해서 한 마디로 하지 않는다거나.

홍콩 여행: 이런 거는 한 마디로 생일처럼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바로 정체를 알릴 수 있다.

옛날에 헤어진 애인의 현재 연애사: 이런 거는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개인사를 건드릴 수 있다. 한 마디로 옛날 애인의 현재 애인이라든지. 물론 당사자인 옛날 애인도 포함.

대학동아리 선배들의 횡포: 이런 거는 상황 설명이 너무 장황하게 필요하다. 세상에, 70년대 학번이 80년대 학번을 우습게 보고 90년대 학번에게는 길들이기 들어오고 2000년대 학번(딸뻘 아니면 ‘며느님’뻘이다)에게는 우상 숭배를 받으려 하는 동아리가 흔치는 않으니까.

이런 식으로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여튼 일기가 내 마음과 다른 쪽으로 가거나 내 마음을 너무 소극적으로 드러내거나 또는 내 마음을 너무 추상적으로 너무 비밀이 많게 드러내면 그건 드러내는 게 아니다. 가리는 거지. 그래서 요즘은 어쩐지 일기를 쓰면서도 속이 터진다. 왜 뽀의 일기에마저 내 마음을 다 털어놓지 못하게 된 걸까?

털어놓지 못할 사연이 많으니 그렇지…

털어놓지 못할 사연이 쌓여서 지금 내 마음은 터지기 일보직전인가…

남의 욕을 하기는 쉬워도 내 욕을 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홍콩 여행에서 나는 쪽이 많이 팔렸다. 부끄럽기도 했고 화도 났다. 그래서 정리가 안 된다. 적어도 공개된 일기로는 정리가 안 될 것 같다.

옛날 애인의 현재 연애사는 참… 심란하다. 그리고 그녀와 나의 관계라는 것도 생각처럼 상큼발랄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연애 상담을 온 그녀를 나의 단칸방에서 재워줬는데, 그녀는 마냥 편해보였지만 나는 ‘전혀’ 편하지 못했다. 그녀의 편함이 도리어 뻔뻔하게 느껴질 정도로. 다시는 그런 대담한 짓을 말아야지, 결심했다.

헤어진 애인과는 어느 정도의 사이가 될 수 있을까? 굳이 어느 정도여야 한다고 할 것은 없더라도, 적어도 내가 원하는 거리와 그가 원하는 거리가 어슷비슷은 해야 할 것 같다.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느끼는 거리가 내게는 너무 가까워서 힘들었다. 글쎄… 현재 애인이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역시 개인차가 아닐까 싶다. 오오… 나는 정말 너무 부담스러웠어… 결벽증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없는데, 인간관계에서는 좀 다른 것 같다.

언제부턴가 일기가 내 마음의 풍경이 아니라 현재 시점 사실의 보고, 단편적인 보고가 되었다. 그게 답답했던 것 같다. 내 마음은 지금 좀 숨어 있는 모양이다. ㅠㅠ

한동안, 꽤 오랫동안 좋은 감정으로 보고 있던 사람이 사실은 나하고 의사소통하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깜짝 놀랐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내게 일말의 호기심을 느꼈고 그 호기심 때문에 말 안 통하는 나와 의사소통하기 위해서 그동안 ‘노력’해온 것이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막연히 그도 나를 좋아하나보다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노력의 소산이었다. 그리고 노력이라는 것은 호기심의 소산이었다. 왜인지는 알 수 없다. 그 ‘왜?’에 기대를 걸고 싶은 마음조차 없어질 정도로 그는 나를 질타했다. 오오… 나는 질타를 받을만하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그 사람을 향한 것은 아니다. 호기심과 좋은 감정을 구분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 정말로. 일방이 의사소통을 위해 그토록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어리석음에 화가 난다. 나는 애정만 기대했기 때문에 눈에 뵈는 게 없었던 거지. 그녀는 현실적인 사람이라 나를 아주 가끔씩 요모조모 써먹기도 했다. 그녀에게 나는 필요한 자원, 가능한 자원 이상은 아니었던 걸까?

어리석은 삼십오 년 생에서 나는 내가 이용당하기 좋은 사람이란 걸 배웠다. (오해를 피하기위해 말하자면 나도 나름 이용하는 사람이다.) 그녀를 비난하기 위해 하는 말은 아니다. 그녀는 도리어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알고 정확하게 써먹고 정확하게 사례하는 양심적인 사람이다. 무의식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계산 없이 나를 손쉽게 써먹는 인간들하고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다. 그녀에게 써먹힌다면 억울할 일은 없다. 적어도 그녀는 자기가 하는 행동의 의미를 안다. 쉽게 써먹고 순진무구한 얼굴을 들이대는, 나를 혹하게 만드는 인물들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서운한 건, 서운한 것은 아마도 그녀에게 애정을 기대했기 때문이리라. 어리석게도. 그녀가 내 언어에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서 애쓰는 동안 나는 생떼를 쓰고 있었던 거다. 그게 너무 쪽팔리다. 부끄럽다, 이런 고상한 말로는 표현이 안 된다.

나의 터무니 없는 어리석음 때문에 나는 요즘 좀, 맥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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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 2

댓글 2개

lime님의 코멘트

lime
잼나게 읽고 있습니다 .

빠알간 뽀님의 코멘트

빠알간 뽀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