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사랑하고 싶었다

태평천국의 난에 관한 책을 한 권 찾았는데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하기 전에 번역이 어떤지 보고 싶어서 종로 영풍문고에 갔다. 책이 너무 두꺼워서 서문 정도만 읽었다. 잘 모르는 분야에 관한 책이라 그런지 서점에서 대충 훑어보기가 힘들었다. 어쩐지 갈수록 힘은 떨어지고 인내심이란 것도 바닥에 달라붙은 느낌이다.

주변 서가를 좀 서성서성 거리다가 종로 쪽 출구로 나오는데 조립식 미니어쳐 고가구들이 보였다. 나는 잠시 서서 뚫어지게 전시된 가구들을 쳐다봤다. 분명 내가 ‘그녀’에게 사준 것도 이중 하나일 것이다…

고가구의 디자인이나 종류는 그 때보다 별로 달라지지도 늘어나지도 않은 것 같았다. 거의 다 전에 봤던 것들이었다.

작은 가구들, 손으로 만들어야 하는 가구들을 보면서,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싶어했다’ 또는
나는 너를 사랑하고 싶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만난 그녀는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테디베어를 손바느질로 꿰매서 만들었다고도 했고 쿠션도 만들었다고 했다. 사무실에 작은 화초를 키운다고도 했다. 그 모든 행동이 그저 같은 사무실에 있는 다른 여자와 함께 있기 위한 시간을 만들기 위한 일이었든, 그 여자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일이었든, 그 여자가 특히 좋아하는 일이었든 간에, 예전의 그녀라면 별로 할 것 같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테디와 쿠션을 본 적이 있던가?

테디와 쿠션은 보지 못했지만(못한 것 같지만, 테디는 확실히 못 본 것 같고, 쿠션은 잘 모르겠다. 내 기억력은 기본적으로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분명히 말할 수가 없다.) 나와 사귀는 동안 그녀는 미니어쳐 고가구를 조립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서점에 나갔던 길에 하나 사다 줬다. 그녀는 조립만 하고 색을… 칠했던가? 색은 칠하지 않은 것 같다. 조립한 미니어처를 집에 가져갔던가? 아마도 가져가지 않았던 것 같다. 전에 살던 집, 넓고도 쓸모 없는 베란다에 있던 것을 언젠가 확 쓸어서 버린 기억이 난다. 근데 정말 만든 미니어처 가구도 있었나? 아니면 그걸 만들고 남은 물감과 기타등등 부자재였나?

잠시 전시된 고가구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너와 나는 정말 비슷하구나. 너도 뭔가를 손으로 만들어야 하는 ‘팔자’가 있었구나. (그녀는 종이접기에도 빠져 있었다. 색종이를 접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큰 종이를 정교하게 접어서 용이나 뭐 그런 걸 만들었다.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본을 인쇄해서 나르는 돼지가 움직이는 카드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좀 더 자유로워져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그녀를 정말 사랑하고 싶었다.

홍길동을 보려고 엄마집에 갔다. 밤이 늦었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그녀의 이름이 떴다. 전화기 밧데리를 뺐다.

나는 밤에 통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그 전화기를 붙잡고 웃거나 말을 할 힘이 없었을 뿐이다. 우리는 이미 식상한 사이일 뿐이다. 감정의 홍수 속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머물렀고, 제대로 사춘기를 거치지 못하고 늙어버린 아이들이 되어 서로에게 지나치게 칼을 휘둘렀고, 헤어진 후에도, 시간이 지난 후에도 솔직해질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식상하다. 용건이 없었을 뿐이다.

아… 내가 밥을 한 번 사기로 했는데, 까먹고 있었다. ‘잊음’은 요즘 나의 생활을 지배하는 유일한 것인 듯… 나는 모든 것을 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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