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알렌의 애니씽 엘즈

(이 영화 얘기는 전에도 썼지만)

제목이 그랬던 것 같은데. 우디 알렌의 애니씽 엘즈.
몇 년 전에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드디어 우디 알렌도 늙었군, 다행이다(요갓따-요즘 일본 만화에 빠져서), 라고 생각했다.

우디 알렌의 사랑 얘기는 물론 재미도 있고 심금도 울리지만
평생 울궈먹으면 어디선가는 분명히 식상하게 된다.

애니씽 엘즈에서 나는 육아에 나선 우디 알렌을 보았다.
말도 안 되는 망상에 빠진 늙어 빠진 코미디 작가 우디 알렌은
이제 막 떠오르는 코미디 작가가 되려고 하는 아, 누구였더라,
그 멋진 남자 배우… 한 때 제니퍼 로페즈와 약혼했던 남자 아닌가 싶다.
찾아보시고.
여튼 그 남자를 ‘키운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주워섬기기는 하지만 어쨌든
철없고 턱없고 소심하기 그지 없는 새파란 놈을
좀 더 가능성이 있고 좀 더 말이 되는 상황에 넣어주려고
엉덩이를 뻥 걷어 차 준다. 말도 안 되게.

늙어가는 우디 알렌의 달라진 관심사가 그래서 내게는 감동이었다.
죽기 전에 지나가는 개XX(와, 정말 적합치 않은 단어를 어찌나 자꾸 쓰는지, 퍼피라고 할 걸 그랬나?)라도 한 번 키워봐야 하는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회사 생활 조금만 더 일찍 시작했으면,
아니면 체력이 조금만이라도 더 버텨 줄 수 있었으면,
나는 정말 신입 키우는 재미에 회사 관두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회사에 가면 아, 저것 좀 꼭 집어서 달달 볶아가며 키우면
키우는 맛이 있겠고만… 싶은 직원이 하나 있다.
막상 그 직원을 키워야 하는 차장은
사람 키우는 재미라곤 자기 자식에게서 밖에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안타까운 일이지.
특히 북돋움을 받아서 또는 갈굼을 받아서라도
마구마구 자라줘야 하는 연차 낮은 직원에게 안타까운 일이라고
이 연사, 감히, 외칩니다아아아….(피쉬쉬…)

나는 어딜 가든 키울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
그게 나다.
배움도 평생이고 키움도 평생이라고 믿는다.

사촌 올케는 애가 셋이다.
애 셋이 어찌나 다 다른지, 내가 오죽하면 계속 낳아보라고 하고 싶다고
농담한다. 나를 닮은 자식이란 건 뿌듯한 거지.

애들 삼촌은 그 중 둘째가 나를 많이 닮았고 그래서
내가 걔를 예뻐한다고 했다. 아, 정말?
근데 걔가 셋 중 제일 발육이 느리고 제일 몸이 작고 마르고
그런데 말도 못하고 기지도 못하는 애기일 때부터
성격은 제일 유난했던 애다.
난 완전 우량아에다가 발육도 엄청 빨라서
내 돌떡을 내가 아래 윗집에 날랐다는 전설도 있건만
무슨 소리래? 글고 난 엄청 순한 애였다구…
얼굴이 좀 닮았나? ㅋㅋ 미련을 못 버려… 쩝.

큰 조카는 아주 화려하게 생겼는데
이제 초딩 1학년이지만 덩치도 좋고 생김이 화려하다.
워낙 걔 아빠가 어릴 때 아주 예쁘장했다.
애 엄마도 (어릴 때 얼굴이야 알 수 없지만) 잘 생긴 얼굴이다.
이 애는 나서 둘째를 보기 전까지 이탈리아에 있어서
아주 어릴 때 얼굴을 몰랐는데 얼마 전에 그 집에 갔다가
고개를 빳빳이 들 수 있을 무렵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왕~! 완전 애 아빠를 빼닮았었다. 어릴 때는 그래서
아들 소리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저 정도면 정말 남자 아기의 얼굴이지 여자 아기의 얼굴은 아닌 걸.

사촌 동생이 무조건 자기 큰 딸이라더니
(말하자면 물에 세 여자가 빠지면 –엄마, 마누라, 딸-
누굴 제일 먼저 건지겠느냐, 이런 유치한 질문에)
확 이해가 갔다. 와, 나를 이 정도로 닮아주면
제일 먼저 건지는 게 문제야. 정말 눈에 넣을 수도 있겠다. 쩝~!

그래도 거기까지. 자식은 맘대로 안 되는 거다.
직원 기껏 키워봤자 딴 데로 옮기면 그만인 거다.
후배 기껏 키워봤자 동아리 나가면 그만인 거다. ㅠㅠ
(너를 사랑했던 나를 몰랐던 나를 용서해라. 이제 와서 미안하다.
여기 이렇게 쓴들 너 죽기 전에 알게 되랴만.)

뭐가 됐든, 그렇다고 키우는 걸 관둘 수 있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누구든, 인연은 만나고 또 헤어지게 되어 있다지 않은가.
키우는 일을 어찌 그만두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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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