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잘 맞지 않는 친구

꽤 잘 맞지 않는 친구가 있다. 둘이 다 힘들고 서러울 때, 종종 홍대 앞 커피빈에서 만나 차를 마셨다. 힘들고 서러울 때 커피빈이라니, 꽤 럭셔리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녀는 담배를 피울 공간이 필요했고, 나는 담배 연기에 질식하지 않을 공간이 필요했고, 어쩌다 둘이 일하는 동네가 대략 홍대와 가까웠고, 또 원래 수입이 일정치 않으면 씀씀이가 헤퍼지는 법이다. 다른 얘기긴 하지만 요즘에도 가끔 그때 돈 쓴 것을 생각하면 부아가 치밀 때가 있다. ㅋㅋㅋ 많고 적고는 둘째 문제고 도대체 개념 없이 썼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가 난다. 지난 일은 고만 노여워하고.

꽤 맞지 않는 친구…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서로 맞춰가며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나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는 친구가 필요하거든. 그녀도 친구가 필요하다. 우리가 꼭 필요로 하는 친구가 우리 서로가 아닐지라도, 우리가 서로에게 최선의 친구는 아니라 해도, 그래도 함께 있어주는 친구는 역시 그 친구이니까. 그러니까 너무 오래 불평하지는 말자.

영화 취향도 대략 맞고 식성도 대략 맞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사랑해서 사귄 사람과도 식성이 안 맞아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ㅋㅋ 고마운 일이지.

왜 이렇게 인생에 친구가 없을까???

이러다가 꽤 안 맞는 그녀와 사귀고 싶어지진 않을까? 우리는 지금도 이상형이 너무 달라서 말만 꺼내면 서로 웃고 ‘그래, 우리 둘이 싸울 일은 없겠다’고 농담을 하지만…

엊그제 게시판 링크를 따라 친구사이 커밍아웃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박장대소했다. ‘이쁘지도 않으면서 게으른 것들’이라는 말에 어찌나 찔리던지. 하하하하 ^_________^

사실 그 친구는 매우 강경한 독신주의자다. 레즈비언 독신주의자. 그러니까 내가 눈에 뭐가 씌인다고 해도 그녀가 날 받아줄 리 없다는 생각은 든다. 왜냐면 그녀는 정말 강경하거든… 나 못지 않은 똥고집? 하지만 독신주의 이런 것을 고집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건 삶의 방식에 대한 중대한 ‘결정’이니까.

내가 ‘내 말 잘 듣고 요리 잘하고 집안 일 잘 하고 돈 잘 벌어오고 아이들도 좋아하면서 [플라워 오브 라이프]의 쇼타같이 생긴 남자가 있으면 결혼해서 애도 낳고 알콩달콩 살아보겠다’고 한번씩 생각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여튼 한동안 그녀를 만날 때마다 그녀가 하는 것도 내가 그녀에게 대하는 것도 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힘들었는데, 요즘은 그녀의 존재가 고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저 있어준다는 것이. 나와 놀고 싶어한다는 것이. 아직도 나와 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ㅠㅠ 고맙다. 아아… 너 정말 인간이 되어가는 거냐…? 근데 이게 인간이 되어가는 거면 인간이 되어가는 거는 왜 이케 비참한 여정이어야 하냐…

사실은 우울하다. 회사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나는… 나는 가능하면 싸우지 않고 이기자 주의지만 일단 싸움이 나면 지고는 못산다 주의이기도 하다.

임전무퇴, 결사항전, 필승… 고로 나에게 싸움을 건 너는 이제 죽었다… ㅠㅠ
어떻게 전쟁 없이 넘어갈 수 없을까 주말 내내 고민했는데 답이 영 없다.
물론 나는 가능한 최선을 다해서 치사하지 않은 방식으로 승리를 추구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전투에는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희생 없이 승리 없다.

내가 인정하는 맞수도 아니고 한낱 어리고 어리석고 연약하고 강퍅한 것에 시달려서 싸워야 하다니, 이러니 대략 비참하다. 그러나… 싸우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를 넘어서도 너무 넘어선 거지…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뭔가 뜻있는 싸움이 될까?
희생은 피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뜻 있는 싸움 따위 없는 걸까? 우스운 걸까?

평화의 심성을 키우자… 뭐 이런 소망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적이 너무 뚜렷하다. 싸우지 않고 물러서지 않고 지지도 않을 방법을 모르겠다.
너무 싸움을 걸어오는데 맞다 지쳤다. 솔직히. 지금의 심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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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