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2007-06-22
어제는 퇴근길에 친구들을 만나서 오랜만에 별 뜻 없는 수다를 나눴다. 별 뜻 없는… 후후… 학교를 졸업한지 오래된 지금, 다니는 직장이 달라져 버리고 업종이 나뉘어 버리니 우리의 수다는 이제 별 뜻이 없다. 그저 서로의 안부를 전하는 수준이다. 그래, 나 잘 살고 있어. 응, 너도 잘 버티고 있구나… 별 뜻 없는 수다를 나눌 사람이 귀하다는 것이 요즘 살이인 듯.

집에 수박을 한 통 사들고 들어갔다. 작년에 못 먹은 수박, 원을 풀리라. 올해는 최소 열 통은 먹어줘야지! 쩝쩝!

2007-06-25
요즘 계속 드라마틱한 꿈을 꾼다.

흡혈귀에게 피를 빨리면서 부작용으로 기억을 잃고 있다. 흡혈귀를 피해다닌다고는 하나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자꾸만 흡혈귀와 마주치고 자꾸만 피를 빨린다. 소설과 다르게 죽지도 않고 내가 흡혈귀가 되지도 않는다. 단지 기억을 계속해서 잃어간다. 아는 사람들을 만나서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쓴다. 친구들인지 직장 동료들인지를 만나서 자꾸만 내가 누구인지 깨우치려고 한다. 하지만 어렵다. 피를 빨리는 동안은 계속 기억을 잃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 잊게 된다. 너무 슬프다. 슬프고 무섭다. 그나마도 기억이 있는 동안 슬프고 무서우리라 생각하니 더 슬프고 더 무섭다. 기억을 잃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심정이 된다.

이게 도대체 무슨 꿈일까? 너무 우스워서 머리맡 공책에 적어놓았다. 머리맡에 공책을 계속 굴리다가 일주일이나 열흘쯤 후에 다시 읽었다.

흡혈귀는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다. 또는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며 버는 돈일 수도 있다.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월급이 다달이 들어온다는 사실에, 작년보다 조금 오른 연봉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사는 오늘의 생활일지도. 대리가 되었다는 기쁨인지도. 몇몇 회사 동료들과는 마음이 통한다는 느낌인지도. 그리고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고 월급에 목매달면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 조금씩 잊어버리고 있다…

2007-06-26
비 오는 저녁 자전거를 탄다. 물론 비를 맞으면서 나간 건 아니고.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맞았다. 어릴 때 야외 수영장에서 비를 맞으며 수영하는 것처럼. 나이 들고 몸은 늙고 맘은 지치고, 더 이상 어릴 때 야외 수영장에서, 모처럼 찾아간 수영장에서 비가 올 때, 장대비가 쏟아지는 게 아니라 여름 가랑비가 오면 더 놀기 좋아서 선물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던 그런 기분은 아니지만, 그런 기분은 아니지만 여하튼 집에 돌아와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탄다. 그리고 그 어쩔 수 없는 와중에 희미한 기쁨을 느낀다… 비록 철없던 어린 시절과 같을 수는 없을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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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