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다

토요일. 아침. 지난 밤에 또 불을 켜고 씻지 않고 잠든 바람에 새벽같이 깼다. 늦잠 잘 수 있는 토요일 아침이건만.

이번 주 무슨 요일이었는지 아침 출근길에 박인환 시집을 들고 나갔다.
중간에 포스트잇을 붙여 놨길래 펼쳐 읽었다.

행복

노인은 육지에서 살았다.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시들은 풀잎에 앉아
손금도 보았다.
차 한 잔을 마시고
정사(情死)한 여자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을 때
비둘기는 지붕 위에서 훨훨 날았다.
노인은 한숨도 쉬지 않고
더욱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성서를 외우고 불을 끈다.
그는 행복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거저 고요히 잠드는 것이다.

노인은 꿈을 꾼다.
여러 친구와 술을 나누고
그들이 죽음의 길을 바라보던 전날을.
노인은 입술에 미소를 띄우고
쓰디쓴 감정을 억제할 수가 있다.
그는 지금의 어떠한 순간도
증오할 수가 없었다.
노인은 죽음을 원하기 전에
옛날이 더욱 영원한 것처럼 생각되며
자기와 가까이 있는 것이
멀어져 가는 것을
분간할 수가 있었다.


‘목마와 숙녀’라는 시에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 구절이 읽고 싶어서 시집을 샀다. 목마와 숙녀 외에 박인환의 다른 시들은 별로 들어 본 적이 없다. 옛 말투도 낯설고 1940~50년대의 정서도 낯설어서 조금 읽다가 내려 놨던 시집이다.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자리는 거기까지 읽었다는 표시일까?
아니면 전에 읽을 때도 이 시가 이렇게 마음에 와 닿았던 걸까?
기억이 없다.

시가 마음에 와 닿았다. 심금(心琴)을 울린다.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후에 처음으로 ‘지금이 제일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 오늘이 내 인생 최고의 날, 지금이 제일 좋다….

마음은 언제나 흔들린다.
한 치 앞도 모르면서 100살을 살게 될까 두려워한다.
인생은 그런 것, 산다는 건 그런 것.
걱정해 무엇하고 마음 졸여 무엇할까….
내게 없는 것을 아쉬워해 무엇하고, 내가 아닌 것을 아쉬워해 무엇하겠는가.

매일 밤, 손과 발을 씻고, 이를 닦고,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도 못하는 날이 많지 않나.
일반
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