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이 질기다 한들 새발의 피만도 못하구나

따듯한 겨울 밤이다.
회사 관두고 아홉 달째다.
회사 안 다니는 게 보약인지 겨울인데도 전처럼 아프지 않다.
어제오늘처럼 따듯하면 마치 봄날 같은 느낌도 있다.

사는 건 팍팍하다.
일정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 생활을 꾸린다는 건 쉽지 않다.
그래도 일이 있다는 게 어딘가! 고마운 노릇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78세라고 한다.
작년에 [맘마미아]에서 떨리는 청춘을 보여준 메릴 스트립은 환갑이라던가.
내 꿈은 늙도록 일하면서 사는 것이다.

……
나는 구제불능 소시민이다.
명바기가 대통령을 하면 수그리고 기어서 이 세월을 견뎌내리라, 마음 먹고 있었다.
미네르바가 최소 3개월치 생필품을 쌓아놓으라고 하면
쌀 사고 설탕 사고 국수 사고 기름 사고 간장 사고 화장지 사고 세제 사고 생리대 사고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으려고 준비를 했다.
수그리고 기어서라도 이 세월을 견뎌 내리라,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자존심 버린지는 이미 오래라.
희망이 없어도 새 날은 밝는 거고, 설마 4년 후에는 그래도……

용산에서 참사가 일어나니
선진국은 무슨, 개도국은 무슨, 세계 경제 규모 11위 국가라고?
졸부도 이런 졸부가 없다.

그리고 나는 과연 수그리는 것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걸까?

나는 아직도 매일 닥친 일을 하기 바쁘고
애인과 데이트하기가 촛불 들고 나서기보다 바쁘고
내 건강을 위해서 수영장에 나가기가 바쁘다.

그런데 나는 수그리다 못해 엎어지고 자빠지고 포복한다 하더라도…
과연… 살아서 4년 후를 볼 수 있는 건가?
그리고 4년 후에 희망이 있는 걸까?
기다려야 하는 걸까?

의문이 든다.
수그려 살아서 남은 거라곤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된 고통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과연 원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뿐이다.
외쳐 본 적도 목소리를 높여 본 적도 없는
목구멍이 포도청 구제불능 소시민에게
이토록
참여를 요구하는 정부에
과연 고맙다 해야 할까…
적어도 내가 아직 시체가 되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니까.

나는 아직 시체가 아니다.
목숨이 질기다 한들 새발의 피만도 못하다는 걸,
사람의 목숨을 새발의 피만도 못하게 여긴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니,
이제 내가 시체가 아닌 걸 알겠다.
아직은 시체가 되길 원치 않는다는 것도 알겠다.

반성조차 아까워하는,
사과조차 할 줄 모르는,
뭘 지켜야 하는지 도통 모르는,
모르고자 하는 정권 앞에,
수그리고 기어서라도 살아남고자 했던 소시민의 꿈은 무참하다.
살인정권의 오명이 그렇게 기꺼운가.

일반
빠알간 뽀 4

댓글 4개

리도님의 코멘트

리도
힘내삼.

뽀님의 코멘트

고맙삼 ㅠㅠ

겨울님의 코멘트

겨울
옳소..

L & Kira님의 코멘트

L & Kira
힘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