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식한 놈, 성깔 있는 년

나는 고지식한 놈이다. 고지식한 년이라고 해야 맞겠지만,
고지식한 놈이라는 말 속에는 ‘아버지의 딸’, ‘의리에 죽고 사는’,
뭐 그렇고 그런 지저분한 아저씨들한테 어울리는 뜻이 들어 있다.
나는 술 마시고 주정하고 냄새 나고(취하면 안 씻으니까)
지저분한(술 취하면 길바닥에서 헤매니까) 아저씨의 딸 맞다.
나이 오십을 바라보면서야 의리에 죽고 못사는 남자 친구들이 아니라,
어떻게든 뜯어먹지 못해 애간장을 태우는 어머니, 누나들이 아니라,
그저 뒷전에 두었던 마누라, 자식만이 가족임을 깨달은 남자의 딸이다.

미운 정도 정이고, 친구는 미우나 고우나 친구라고.
우리 아버지는 아직도 그런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기냐?’
늙은 아버지를 잘 보라는 투정인줄 알기에 귀엽다.
그래, 아버지는 의리에 죽고 사는 남친들과 헤어졌지만
나는 아직도 달아도 써도 친구는 친구라는 단순한 생각을
밀어 붙이면서 살고 있었다.
정 쓰면 가끔 만나면 된다.
어쨌든 힘의 한계라는 건 있는 거니까.
나도 살아야 되니까.
그래도 친구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혼잣몸일 때는 그렇게도 살 수 있었는데.

물정 없는 내 친구는 내 애인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볼 일이 있어 약속 시간에 늦었다.
내가 없었어도 둘이 인사는 나눌 수 있었다.
나이가 몇 개고 사회 생활이 몇 년인데
친구의 애인과 정식으로 인사 나눌 방법론조차 없단 말인가?
아니면 세를 과시하고라도 싶었나…? 바~보!

나이가 들면 어른인 척이라도 해야 한다.
눈물을 머금고서라도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다.
내가 어른이 안 됐으면 적어도 어른인 척이라도 해야 한다.
어떻게 쉬운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나?
가능하면 이 잔을 물러주시지요… 라고 기도는 할 수 있지만
마셔야만 한다면 그냥 마시는 거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야겠다.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무식한 남자를 벗고
성깔 있는 년, 나의 원래 모습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겉사람과 속사람의 모습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압력이 강해진다.

나는 오랫동안 안전하지 못한 집구석에서 자라다 보니
그저 약한 척, 착한 척 하는 게 몸에 배었을 뿐이다.
나는 보기보다 강하고 독하고 끈질기고 그리고 성깔 있는 년이다.

어쩌면 내가 친구들보다 낫다는 오만이 오늘의 사태를 불렀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도 자유를, 그리고 나에게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정직하게 굴 것.
잘난 척하지 말 것.
나 별 거 없다.
오래된 친구도 별 거 없다.
나를 존중하고 나를 제대로 보는 사람과 사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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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 1

댓글 1개

L & Kira님의 코멘트

L & Kira
뽀님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