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이전과 이후 동성애 현주소
[주장] 본격 동성애 인권운동 13년의 성과... 하지만 중진국 수준밖에는 안 돼①
노형근 기자
올해는 '한국 동성애자 인권 운동 협의회'가 발족 한 지 13년이 되는 해다. 정확히 말하면 오는 6월 26일이 딱 13주년이 되는 날이다.
아직 5달이나 남았는데 기자가 왜 이런 말을 난데없이 할까 의아해 할 독자들이 많을 것으로 안다. 그것은 2007년 하반기 이슈 중 '동성애'가 항간에 이목을 받아왔고 지금도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4일 정부가 '성(性)적지향' 등 7개 항목을 삭제한 채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면서 성적지향에 해당하는 동성애가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특히 2월에 있을 국회 심사를 앞두고 보수기독교 단체와 진보기독교 단체 간의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 여기에 성소수자 단체와 시민사회단체까지 가세해 진보기독교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1995년 이전의 동성애 인권은 어땠는가?
1980년대 후반부터 에이즈(AIDS)에 관심을 기울인 우리나라는 에이즈에 의한 사회병리현상의 매개로 동성애자를 지목했다. 이후 동성애자를 금기시 하는 것을 넘어 사형수처럼 숙청의 대상으로 여기는 편견의 잔재들이 계속 이어져 오는 것. 군사정부가 몰락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정부가 세워졌지만 대다수 국민들 의식은 편견에서 쉽게 깨어나지 못했다.
결국 1995년 사회적으로 왕따를 당한 동성애자들이 들고 일어나 조직을 구성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한국 동성애자 인권 운동 협의회'다.
물론 '한국 동성애자 인권 운동 협의회'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미 동성애자 인권단체가 결성되었다. '친구사이' 전신인 '초동회'(1993.12)와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전신인 '끼리끼리'(1994.11), 연세대학교 동성애자 모임 '컴투게더'(1995.4), 서울대학교 동성애자 모임 '마음001'(1995.4) 등의 동성애자 인권단체들이 그것이다. 아울러 1992년 8월 23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게이, 성의 두 얼굴'을 통해 동성애를 다루는 등 작은 움직임이 조금씩 있어왔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동성애자들의 헐떡이는 숨통을 터주는 산소호흡기 역할을 하진 못했다. 따라서 동성애자들은 다수의 이성애자들에게 멸시와 학대를 받으면서 어둡고 좁은 벽장 속으로 더 비집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당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동성애를 다루지 않았더라면 공개적으로 극심하게 피해를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정치사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실현으로 화창한 1990년대를 맞이했지만 동성애자들은 어두운 1990년대 초반을 보냈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은 사회를 향한 울부짖음을 멈추지 않았다. 1994년 2월 초동회를 격상시켜 한국 남성 동성애자 인권운동 단체 '친구사이'를 조직, 같은해 12월 '친구사이' 회원들이 직접 쓴 수필집 <이젠 더 이상 슬프지도 부끄럽지도 않다>(도서출판 장자못)를 발간하는 등 어두운 환경에서도 결집력을 보여줬다.
'한국 동성애자 인권 운동 협의회' 출범 후 동성애 인권은?
그 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결성된 동성애 연대인 '한국 동성애자 인권 운동 협의회'는 동성애인권운동의 지평을 열었다. 동시에 우리 사회 '인권'에 대한 인식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의식주 해결이 인권'이 아닌 '삶과 질, 권리의 추구가 인권'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제안한 것이다.
'한국 동성애자 인권 운동 협의회'는 인권이라는 개념정의 자체의 부재 속에서 금기시 해오던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새로 썼다. 또 인권의 정의를 새롭고 명확하게 규정함으로써 국민 의식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 했다.
<한국 동성애자 인권 운동 협의회>가 선언한 동성애 인권
1. 동성애에 대한 모든 인격적 모욕과 비난을 중지하고, 이들이 가진 성적 지향성을 해악시하고 부정하는 모든 의학적, 법률적, 교육적 관행을 중단하라.
2. 언론 매체는 동성애와 동성애자의 인권을 무시한 그간의 보도 관행을 반성하고, 동성애자에 대한 관용적이고 민주적인 태도를 견지하라.
3. 자신의 동성애적 성적 지향성을 밝힌 동성애자들에게 가해지는 모든 종류의 정치적, 경제적 침해와 모욕을 중지하라.
4. 에이즈를 동성애자의 역병으로 호도하는 사이비 의학적 선전을 중단하고, 에이즈 예방과 치료에 관련된 사회적 방역체계에서 동성애자를 특별히 격리하고 규제하여 온 그간의 시도를 중단하라.
5. 동성애인권운동에 대한 사회적이고 공적인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동성애에 대한 관용적이고 민주적인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라.
'한국 동성애자 인권 운동 협의회'는 성적 지향성을 부정하고 동성애자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금기시만 할 뿐, 말 한마디 하지도 않는 사회의 묵묵부답형을 비판한 것이다.
아직도 차별금지법에서 성적지향이 삭제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와는 확연히 다르게 국민 여론은 물론 정부에서도 동성애자들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다만, 동성애를 인정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보장해 주는 것에서는 국민 여론과 정부의 인식 수준이 미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 동성애자 인권 운동 협의회'는 1995년 이전 언론 매체들에 대해 '동성애자들의 공동체를 패덕과 난행의 공간으로 호도하고 모멸하였고 동성애자 개인에게 동성애 공포증을 호도하는 보도를 했다'고 성토하였다.
1995년 이전까지 언론은 '동성애=변태'로 낙인 찍었었다. 또 동성애 공포증을 유발시켜 국민 여론을 진보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수구보수적으로 정체시키는 왜곡을 일삼았던 게 사실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동성애를 소재로 드라마, 영화, 뮤직비디오 등이 출시되고 언론에서도 객관성을 띤 보도를 하려고 애쓰고 있다. 다만, 2005년 7월 MBC <뉴스투데이> '현장 속으로 이반 문화 확산' 보도에서 10대 동성애를 비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성숙된 국민 의식과 많은 일반 인권단체까지 MBC의 보도 행태를 규탄하면서 동성애를 옹호하는 여론이 형성되어 동성애를 무조건 배척하던 10여 년 전의 분위기와는 다른 모습이다.
관련기사 - 동성애를 바라보는 군대의 눈은 후진...
2008.01.08 09:16 ⓒ 2008 OhmyNews
[주장] 본격 동성애 인권운동 13년의 성과... 하지만 중진국 수준밖에는 안 돼①
노형근 기자
올해는 '한국 동성애자 인권 운동 협의회'가 발족 한 지 13년이 되는 해다. 정확히 말하면 오는 6월 26일이 딱 13주년이 되는 날이다.
아직 5달이나 남았는데 기자가 왜 이런 말을 난데없이 할까 의아해 할 독자들이 많을 것으로 안다. 그것은 2007년 하반기 이슈 중 '동성애'가 항간에 이목을 받아왔고 지금도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4일 정부가 '성(性)적지향' 등 7개 항목을 삭제한 채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면서 성적지향에 해당하는 동성애가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특히 2월에 있을 국회 심사를 앞두고 보수기독교 단체와 진보기독교 단체 간의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 여기에 성소수자 단체와 시민사회단체까지 가세해 진보기독교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1995년 이전의 동성애 인권은 어땠는가?
1980년대 후반부터 에이즈(AIDS)에 관심을 기울인 우리나라는 에이즈에 의한 사회병리현상의 매개로 동성애자를 지목했다. 이후 동성애자를 금기시 하는 것을 넘어 사형수처럼 숙청의 대상으로 여기는 편견의 잔재들이 계속 이어져 오는 것. 군사정부가 몰락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정부가 세워졌지만 대다수 국민들 의식은 편견에서 쉽게 깨어나지 못했다.
결국 1995년 사회적으로 왕따를 당한 동성애자들이 들고 일어나 조직을 구성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한국 동성애자 인권 운동 협의회'다.
물론 '한국 동성애자 인권 운동 협의회'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미 동성애자 인권단체가 결성되었다. '친구사이' 전신인 '초동회'(1993.12)와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전신인 '끼리끼리'(1994.11), 연세대학교 동성애자 모임 '컴투게더'(1995.4), 서울대학교 동성애자 모임 '마음001'(1995.4) 등의 동성애자 인권단체들이 그것이다. 아울러 1992년 8월 23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게이, 성의 두 얼굴'을 통해 동성애를 다루는 등 작은 움직임이 조금씩 있어왔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동성애자들의 헐떡이는 숨통을 터주는 산소호흡기 역할을 하진 못했다. 따라서 동성애자들은 다수의 이성애자들에게 멸시와 학대를 받으면서 어둡고 좁은 벽장 속으로 더 비집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당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동성애를 다루지 않았더라면 공개적으로 극심하게 피해를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정치사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실현으로 화창한 1990년대를 맞이했지만 동성애자들은 어두운 1990년대 초반을 보냈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은 사회를 향한 울부짖음을 멈추지 않았다. 1994년 2월 초동회를 격상시켜 한국 남성 동성애자 인권운동 단체 '친구사이'를 조직, 같은해 12월 '친구사이' 회원들이 직접 쓴 수필집 <이젠 더 이상 슬프지도 부끄럽지도 않다>(도서출판 장자못)를 발간하는 등 어두운 환경에서도 결집력을 보여줬다.
'한국 동성애자 인권 운동 협의회' 출범 후 동성애 인권은?
그 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결성된 동성애 연대인 '한국 동성애자 인권 운동 협의회'는 동성애인권운동의 지평을 열었다. 동시에 우리 사회 '인권'에 대한 인식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의식주 해결이 인권'이 아닌 '삶과 질, 권리의 추구가 인권'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제안한 것이다.
'한국 동성애자 인권 운동 협의회'는 인권이라는 개념정의 자체의 부재 속에서 금기시 해오던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새로 썼다. 또 인권의 정의를 새롭고 명확하게 규정함으로써 국민 의식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 했다.
<한국 동성애자 인권 운동 협의회>가 선언한 동성애 인권
1. 동성애에 대한 모든 인격적 모욕과 비난을 중지하고, 이들이 가진 성적 지향성을 해악시하고 부정하는 모든 의학적, 법률적, 교육적 관행을 중단하라.
2. 언론 매체는 동성애와 동성애자의 인권을 무시한 그간의 보도 관행을 반성하고, 동성애자에 대한 관용적이고 민주적인 태도를 견지하라.
3. 자신의 동성애적 성적 지향성을 밝힌 동성애자들에게 가해지는 모든 종류의 정치적, 경제적 침해와 모욕을 중지하라.
4. 에이즈를 동성애자의 역병으로 호도하는 사이비 의학적 선전을 중단하고, 에이즈 예방과 치료에 관련된 사회적 방역체계에서 동성애자를 특별히 격리하고 규제하여 온 그간의 시도를 중단하라.
5. 동성애인권운동에 대한 사회적이고 공적인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동성애에 대한 관용적이고 민주적인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라.
'한국 동성애자 인권 운동 협의회'는 성적 지향성을 부정하고 동성애자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금기시만 할 뿐, 말 한마디 하지도 않는 사회의 묵묵부답형을 비판한 것이다.
아직도 차별금지법에서 성적지향이 삭제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와는 확연히 다르게 국민 여론은 물론 정부에서도 동성애자들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다만, 동성애를 인정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보장해 주는 것에서는 국민 여론과 정부의 인식 수준이 미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 동성애자 인권 운동 협의회'는 1995년 이전 언론 매체들에 대해 '동성애자들의 공동체를 패덕과 난행의 공간으로 호도하고 모멸하였고 동성애자 개인에게 동성애 공포증을 호도하는 보도를 했다'고 성토하였다.
1995년 이전까지 언론은 '동성애=변태'로 낙인 찍었었다. 또 동성애 공포증을 유발시켜 국민 여론을 진보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수구보수적으로 정체시키는 왜곡을 일삼았던 게 사실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동성애를 소재로 드라마, 영화, 뮤직비디오 등이 출시되고 언론에서도 객관성을 띤 보도를 하려고 애쓰고 있다. 다만, 2005년 7월 MBC <뉴스투데이> '현장 속으로 이반 문화 확산' 보도에서 10대 동성애를 비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성숙된 국민 의식과 많은 일반 인권단체까지 MBC의 보도 행태를 규탄하면서 동성애를 옹호하는 여론이 형성되어 동성애를 무조건 배척하던 10여 년 전의 분위기와는 다른 모습이다.
관련기사 - 동성애를 바라보는 군대의 눈은 후진...
2008.01.08 09:16 ⓒ 2008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