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03
1. 멀리함과 호모 포비아(또는 동성애 공포증, 성정체성 차별주의, 뭐가 됐든.)
(안경을 안 쓰고 모니터를 보려니 불편하다. 어느새 이렇게까지 익숙해진 걸까. 나안 시력 1.5를 자랑하는 주제에. 책을 읽을 때는 별로 불편한 줄 모르겠는데 모니터를 대하면 불편하다. 안경이 있었으면 싶다.)
한때 잠시 한팀이었다가 곧 팀이 나뉜 사람이 있다. 내가 사무실에서 사무적이지 않은 일로 떠들자고 찾아가는 사람은 그 한 사람뿐이다. 팀장 아줌마하고는 거리도 너무 가깝고 세월도 너무 오래되어서 그냥 서로 사생활을 대략 침범하면서 그러려니 하고 있다. 그러니까 팀장은 빼고. 팀장은 뭐 내가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도 숨기기 어려우니.
오늘 그 사람 자리에 잠깐 갔는데 잠깐 가서 얘기하면서도 마음이 곧 초조해지고 불편해졌다. 회사를 떠난 그녀의 전 상사와 같이 만나자는 얘기를 하고 대략 서둘러 내 자리로 돌아왔다.
점심 먹을 약속을 특별히 하지 않으면 혼자 남게 된다. 한동안은 주로 팀장 아줌마와 밥을 먹었다. 요즘에는 연말연시라 그런지 아줌마가 매일 약속이 있다. 그래도 뭐 별로 불편하지는 않다. 오늘은 좀 불편했다.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헤매다가 점심 시간의 밥집 분위기에 눌려서 떡국을 먹었는데… 짰다. 게다가 밥집 아줌마가 반찬을 버리기 아까워서 재활용하는 장면을 보고 말았다. 밥맛이 딱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떡국 한 그릇은 싹싹 비워 먹었지만. 입 천장 데어가며. 아직도 쓰리다.
점심 시간에 약속이 일주일 내내 있으면 기분이 별로 안 좋다. 중간쯤에는 혼자서 밥을 먹고 싶기도 하고 그렇다. 대개는 팀장도 약속이 없고 나도 약속이 없으면 둘이 자주 먹었다. 팀장과의 관계도 어떤 분수령을 넘었는지 이제는 내가 피할 때도 있고(약속 없어도 있는 척하고 나간다), 내가 피하다 보니 가끔은 팀장도 피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직장에서 맺는 인간관계의 어떤 분수령을 넘었다는 사실에는, 둘 다 입 밖으로 내진 않아도 동의하는 분위기다.
(어느 날, 외주처의 사정으로 일이 일찍 끝난 어느 날, 같이 늦은 저녁을 먹고 걷기 시작한다. 배도 부르고 운동 부족이 심해서 잠시 걷기 시작한다. 두 정거장쯤 걷는다. 한 정거장만 더 걸으면 팀장의 버스가 있다. 거기까지 같이 걸어가면 연애다, 라는 생각이 든다. 팀장이 알건 모르건 그건 나에게는 사귀는 사람에게 해 줄만한 짓이다. 그만 가겠다고 한다. ‘나를 배신하고 혼자만 가겠다고?’ 이런 반응은 상투적인 걸까? 물론 팀장이 나에게 마음이 없다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가끔 헷갈리기도 한다. 어느 시점에선가 부자연스러운 선을 긋는 아줌마를 보면서, 저렇게까지 사리지 않아도… ㅋㅋ… 나는 이성애자도 귀찮고 결혼한 사람은 더 귀찮은데… 말이지.)
(어느 시점에서, 어떤 면에서, 부자연스럽게 선을 그으려고 한다. 아, 우리가 때로 지나치게 침범하는 건 사실이지… 긋고 싶을 만도 하다. 나도 자주 그러고 싶으니까. 그 사람이 상사고 내가 맺고 끊는 면이 없어서 그렇게 못할 뿐이다. 누구 하나라도 그어야 한다는 자각을 행동에 옮긴다면 다행이지.)
퇴근길 버스 안에서 우리 팀 신입 사원을 만났다. 나는 집으로 그녀는 강남역으로, 우연히 한 버스를 탄 것을 나중에 알았다. 뭐라뭐라 말을 하면서 그녀의 팔을 두 번쯤 쓰다듬는 척 했다. 사실은 살짝, 겉옷을 한 번 스치는 정도. 그럴 때의 나는 나 같지 않다. 뭐가 그렇게 안타까운 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답답하다. 모든 사람에게 빚을 진 듯한 나의 이런 태도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무적인 일 없이 가서 말을 붙이는 사람은 딱 한 명이다. 그것도 가물에 콩 나듯이.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은 그녀의 독특한 성격 – 매우 점잖다. 그녀를 만나고 점잖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고 할 정도로, 그러면서도 매우 솔직하다 – 에서 비롯되었다. 점잖음과 솔직함이 그렇게 잘 조화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정말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일할 때는 성실하고 연애할 때는 귀엽고 몸매는 오동통하다.
그렇게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 없는 그녀인데, 훨씬 더 가까워도 될 그녀에게조차 대개 아주 먼 거리에 있는 나를 봤다. 그녀는 나보다 다섯 살 어리다. 그녀가 늘 어울리는 또래 동아리는 따로 있다.
일도 바쁘고 사람들과 어울려봤자 재미도 없고 해서 여태까지는 나의 이런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사람들과 어울려봤자 재미도 없고’
아마 이 때문이겠지. 이성애를 전제한 대화는 재미 없다. 거짓말이 아니면 침묵을 강요할 뿐이다. 내가 커밍아웃을 하기 전에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회사 안에 그 어떤 동아리도 없는 내 모습이 오늘은 좀 불편하게 느껴졌다. 처음엔 나의 호모포비아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나 자신에게 커밍아웃한 이후로 나는 여자 친구들과 멀어졌다.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다면 좀 먼 것이 마음 편하다. 왠지 모르겠는데 나는 늘 언젠가 이들이 나에 대해 알게 될 순간이 걱정된다. ‘아, 그때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했는데 그게 혹시…?’ 이런 소리를 들을까봐 극도로 걱정이 된다. 오바인 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된다. 나뿐 아니라 상대도 얼마든지 오바할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결벽증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을 할 사람들은 대개 정말은 내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약간 자아도취적인 사람들일 공산이 크다. 그런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하건, 남이 어떻게 하건, 말릴 수 없다.
약간의 호모 포비아와 대화의 중심이 될 수 없는 심심함, 재미 없음, 뭐 이런 것들이 얼기설기 얽혀서 오늘날 나의 모습이 되었나 싶다.
어쨌든 나의 오동통한 그녀와는 좀 더 친하게 지내야지.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과도 늘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는 거는 좀 서글프다… 뭐 꼭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아. 뽀, 안심해도 될 것 같아… 마음 놓고 만나 봐. 좋아하면서. (연애하자는 것도 아니잖아? ㅎㅎ)
씻고 자야겠다. 체력이 모자라서, 실은 거한 저녁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아까부터 뭐가 자꾸 먹고 싶어서, 씻고 일찍 자는 게 낫지 싶다. 나오미 얘기는 내일…
2. 나오미를 위하여
1. 멀리함과 호모 포비아(또는 동성애 공포증, 성정체성 차별주의, 뭐가 됐든.)
(안경을 안 쓰고 모니터를 보려니 불편하다. 어느새 이렇게까지 익숙해진 걸까. 나안 시력 1.5를 자랑하는 주제에. 책을 읽을 때는 별로 불편한 줄 모르겠는데 모니터를 대하면 불편하다. 안경이 있었으면 싶다.)
한때 잠시 한팀이었다가 곧 팀이 나뉜 사람이 있다. 내가 사무실에서 사무적이지 않은 일로 떠들자고 찾아가는 사람은 그 한 사람뿐이다. 팀장 아줌마하고는 거리도 너무 가깝고 세월도 너무 오래되어서 그냥 서로 사생활을 대략 침범하면서 그러려니 하고 있다. 그러니까 팀장은 빼고. 팀장은 뭐 내가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도 숨기기 어려우니.
오늘 그 사람 자리에 잠깐 갔는데 잠깐 가서 얘기하면서도 마음이 곧 초조해지고 불편해졌다. 회사를 떠난 그녀의 전 상사와 같이 만나자는 얘기를 하고 대략 서둘러 내 자리로 돌아왔다.
점심 먹을 약속을 특별히 하지 않으면 혼자 남게 된다. 한동안은 주로 팀장 아줌마와 밥을 먹었다. 요즘에는 연말연시라 그런지 아줌마가 매일 약속이 있다. 그래도 뭐 별로 불편하지는 않다. 오늘은 좀 불편했다.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헤매다가 점심 시간의 밥집 분위기에 눌려서 떡국을 먹었는데… 짰다. 게다가 밥집 아줌마가 반찬을 버리기 아까워서 재활용하는 장면을 보고 말았다. 밥맛이 딱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떡국 한 그릇은 싹싹 비워 먹었지만. 입 천장 데어가며. 아직도 쓰리다.
점심 시간에 약속이 일주일 내내 있으면 기분이 별로 안 좋다. 중간쯤에는 혼자서 밥을 먹고 싶기도 하고 그렇다. 대개는 팀장도 약속이 없고 나도 약속이 없으면 둘이 자주 먹었다. 팀장과의 관계도 어떤 분수령을 넘었는지 이제는 내가 피할 때도 있고(약속 없어도 있는 척하고 나간다), 내가 피하다 보니 가끔은 팀장도 피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직장에서 맺는 인간관계의 어떤 분수령을 넘었다는 사실에는, 둘 다 입 밖으로 내진 않아도 동의하는 분위기다.
(어느 날, 외주처의 사정으로 일이 일찍 끝난 어느 날, 같이 늦은 저녁을 먹고 걷기 시작한다. 배도 부르고 운동 부족이 심해서 잠시 걷기 시작한다. 두 정거장쯤 걷는다. 한 정거장만 더 걸으면 팀장의 버스가 있다. 거기까지 같이 걸어가면 연애다, 라는 생각이 든다. 팀장이 알건 모르건 그건 나에게는 사귀는 사람에게 해 줄만한 짓이다. 그만 가겠다고 한다. ‘나를 배신하고 혼자만 가겠다고?’ 이런 반응은 상투적인 걸까? 물론 팀장이 나에게 마음이 없다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가끔 헷갈리기도 한다. 어느 시점에선가 부자연스러운 선을 긋는 아줌마를 보면서, 저렇게까지 사리지 않아도… ㅋㅋ… 나는 이성애자도 귀찮고 결혼한 사람은 더 귀찮은데… 말이지.)
(어느 시점에서, 어떤 면에서, 부자연스럽게 선을 그으려고 한다. 아, 우리가 때로 지나치게 침범하는 건 사실이지… 긋고 싶을 만도 하다. 나도 자주 그러고 싶으니까. 그 사람이 상사고 내가 맺고 끊는 면이 없어서 그렇게 못할 뿐이다. 누구 하나라도 그어야 한다는 자각을 행동에 옮긴다면 다행이지.)
퇴근길 버스 안에서 우리 팀 신입 사원을 만났다. 나는 집으로 그녀는 강남역으로, 우연히 한 버스를 탄 것을 나중에 알았다. 뭐라뭐라 말을 하면서 그녀의 팔을 두 번쯤 쓰다듬는 척 했다. 사실은 살짝, 겉옷을 한 번 스치는 정도. 그럴 때의 나는 나 같지 않다. 뭐가 그렇게 안타까운 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답답하다. 모든 사람에게 빚을 진 듯한 나의 이런 태도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무적인 일 없이 가서 말을 붙이는 사람은 딱 한 명이다. 그것도 가물에 콩 나듯이.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은 그녀의 독특한 성격 – 매우 점잖다. 그녀를 만나고 점잖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고 할 정도로, 그러면서도 매우 솔직하다 – 에서 비롯되었다. 점잖음과 솔직함이 그렇게 잘 조화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정말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일할 때는 성실하고 연애할 때는 귀엽고 몸매는 오동통하다.
그렇게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 없는 그녀인데, 훨씬 더 가까워도 될 그녀에게조차 대개 아주 먼 거리에 있는 나를 봤다. 그녀는 나보다 다섯 살 어리다. 그녀가 늘 어울리는 또래 동아리는 따로 있다.
일도 바쁘고 사람들과 어울려봤자 재미도 없고 해서 여태까지는 나의 이런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사람들과 어울려봤자 재미도 없고’
아마 이 때문이겠지. 이성애를 전제한 대화는 재미 없다. 거짓말이 아니면 침묵을 강요할 뿐이다. 내가 커밍아웃을 하기 전에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회사 안에 그 어떤 동아리도 없는 내 모습이 오늘은 좀 불편하게 느껴졌다. 처음엔 나의 호모포비아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나 자신에게 커밍아웃한 이후로 나는 여자 친구들과 멀어졌다.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다면 좀 먼 것이 마음 편하다. 왠지 모르겠는데 나는 늘 언젠가 이들이 나에 대해 알게 될 순간이 걱정된다. ‘아, 그때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했는데 그게 혹시…?’ 이런 소리를 들을까봐 극도로 걱정이 된다. 오바인 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된다. 나뿐 아니라 상대도 얼마든지 오바할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결벽증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을 할 사람들은 대개 정말은 내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약간 자아도취적인 사람들일 공산이 크다. 그런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하건, 남이 어떻게 하건, 말릴 수 없다.
약간의 호모 포비아와 대화의 중심이 될 수 없는 심심함, 재미 없음, 뭐 이런 것들이 얼기설기 얽혀서 오늘날 나의 모습이 되었나 싶다.
어쨌든 나의 오동통한 그녀와는 좀 더 친하게 지내야지.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과도 늘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는 거는 좀 서글프다… 뭐 꼭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아. 뽀, 안심해도 될 것 같아… 마음 놓고 만나 봐. 좋아하면서. (연애하자는 것도 아니잖아? ㅎㅎ)
씻고 자야겠다. 체력이 모자라서, 실은 거한 저녁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아까부터 뭐가 자꾸 먹고 싶어서, 씻고 일찍 자는 게 낫지 싶다. 나오미 얘기는 내일…
2. 나오미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