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의 변주곡 - 후편

그렇다고 내가 B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B로 보이지도 않고 스스로 B임을 주장하는 일은 더욱 없다. 절대 공개적으로 남자인 척 하지 않은 영악한 엑스 걸프렌드의 탓일까? 지금 생각이지만서두. ㅋㅋ

여튼 나는 너무 늦게(?) 이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고 이십 평생을 명예 남성으로 살았던 까닭에 충분히 남성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적이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시기적으로 먹물을 충분히 먹을 만큼 먹은 다음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F라든가 B라든가 하는 논란을 영리하게 비껴 갔다. 그리고 그 놈의 엑스 걸프렌드는 지금 (심지어 십 수년이 지난) 생각해 보면 B가 분명하건만 영악한 것이었던 까닭에 내놓고 B임을 주장하지 않았다. 아니면 그때는 말했어도 내게 들을 귀가 없었겠지. (씁쓸하오…어린 날의 어리석음… 그러나 어쩌겠소…) 그리고 나 자신의 상황, 강한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했고, 그때는 몰랐지만 여성성에는 자신이 없었고 (사실 나의 여성성에 대해서는 지금도 별로 자신이 없다. 코 밑 잔털을 밀 때마다 그 자신 없음을 느낀다. ㅠㅠ) 남성성은 나를 위험한 바깥 세상에서 지켜주는 껍데기에 불과했는데 그걸 고갱이인 줄 알고 안고 살았던 나의 상황이 나를 F냐, B냐를 따지는 논란의 바깥에 서게 했다. 여튼 그때는 그 중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게 똑똑하고 선진적인 건 줄 알았다. 아, 겉멋은 들어가지구.

엑스 걸프렌드에게서 연락이 왔다. 누군가를 만나라는데 당혹해서 물었다. ‘니 눈에는 내가 아직도 F로 보이냐?’ 나는 아닌 것 같다. 소개팅인데 서로 너무 황당해지면 안 되지 않냐…

엑스 걸프렌드가 말한다. ‘아닌가? 그래도 내 눈에는 니가 항상 그렇게 보일 거야.’

갑자기 가슴이 확 뛴다. @.@!!! 이러면 나 F 맞는 건가? 물론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ㅎㅎㅎ 엑스 걸프렌드의 한 마디에 갑자기 훈훈해졌다. 푸하하핫! 이런 걸 뭐라 그래… 내 그녀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가도 이렇게 뜻밖에 기분 좋은 소리를 들으니… 이래서 오래된 친구가 좋은 건가… 아니면 이래서 우리가 스무 해도 전에 친구가 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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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