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사 년의 일기

책상 위를 정리하다가 2004년의 일기장을 본다.
2004년 가을의 일기장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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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행신동 성당에서 잠시 기도를 했다.
'너의 목소리를 찾아'
그러면 언제 부모를 편하게 해줄 수 있나요? 했더니
'부모한테는 그냥 오늘처럼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돼'라고 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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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라마 [쾌도 홍길동]에 빠져 산다.
인터넷 연결하는 김에 하나 티비까지 달아서 (부끄럽소...)
보다가 못 봤던 장면을 봤다.

청나라에 길동이와 같이 가기로 한 이녹이가 길동의 어머니 묘소에 가서 먹음직한 사과 한 알을 놓고 절을 하고 인사를 하는 장면.
어머니 묘소의 흙을 주머니에 담아서 길동이에게 주는 장면.

나는 여태 그러려고 이녹이가 주머니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 주머니는 그냥 사랑의 선물이 아니었던 거다...

남편의 가족이 되는 하나의 의식...
아아...얘기가 또 이상한 데로 빠졌는데...

사실 그 장면을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효', '효도'라고 하는 게 도대체 뭘까? 이런 장면을 서양 사람이 보면 이해가 가능할까?... 이 드라마는 수출하기 힘들겠다...까지 -.-;;; 미드나 일드를 보면서 정말 이해 안 가는 장면들이 있는데, 그것도 그들에게는 저 '이녹이가 만든 주머니의 흙'과 같은 것일까?

요점은 정말 '효'가 뭔지...

직장을 다닌 지 일년 됐을 때나 지금 관두고 나와서나 내 마음 한 켠의 무거움은 똑같다. 그리고 답도 하나다. 그냥 오늘 할 수 있는 만큼 해. 더 이상을 바라지 말라. 너는 그들에게 빚이 없다. ㅠㅠ

나는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 아마도 독하고도 모진 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독하고 더 모질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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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